글쓰기를 가로막는 틀
그저 그런 글만 쓸 것인가?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산다.
우리는 그 틀 안에서 이탈하려는 사람을 미쳤다고 한다.
소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그 틀을 깨고자 하는 미친 사람들이 있다.
틀이라는 것은 원래 없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두려 한다.
더 큰 문제는 그 틀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언제나 이 틀 때문에 고민스러웠다.
얼마 전 지적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내 소설들의 문장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그저 이야기를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처음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릴러를 쓴다고 한다.
그런 생각의 발원지가 어딘지 모르겠으나 인정하고 보면 나 역시 그 흐름에 준하고 있다.
나는 뭔가 좀 다를 것이라는 자만이 만들어낸 글쓰기로 그저 그런 일반적인 부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글쓰기에 창작의 고통 같은 것이 없었다.
생각이 흐르는 대로 별 기발함 없이 사고의 덩어리를 풀어 글씨로 옮겨내는 일종의 노동이었다.
그러니 글이 가벼울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누가 봐도 괜찮은 글이란 없겠지만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글이라도 쓰고 싶다.
나는 글쟁이로서의 자질은 있는 걸까?
나는 모 작가의 작품과 내 글을 비교하고는 했다.
시쳇말로 '자뻑'에 빠진 나는 그의 글보다 나은 부분도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문학에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오류이며 모순이겠지만 독자의 판단에 글의 품질은 판가름 난다.
그리고 지금껏 나의 글은 그저 그런 글 이상의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문자를 쓰는 건 그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글을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좋은 글을 쓰고픈 욕망은 품었지만 길을 찾지 못한 채 방황 속에 있다.
틀을 깨자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만 같고 하던 대로 고집을 피우자니 자괴감만 든다.
오래전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 중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성격 급한 원숭이는 덜 익은 복숭아를 따 먹고 복숭아는 떫은 과일이라 하고,
게으른 원숭이는 농 익은 복숭아를 따 먹고 복숭아는 시큼하고 물러 터진 과일이라 한다.
틀, 판단의 잣대에 기준이란 것은 없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들어 농담처럼 비유하던 것처럼 복숭아의 맛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맛이 있고 없음이 정해진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타협해 보려는 욕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