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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매력 발굴하기

삶의 노화는 매력을 앗아갔다

by 루파고
도깨비 같은 녀석!


이게 욕일까, 칭찬일까?

상황과 어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겠지만 도깨비라는 존재가 매우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건 사실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매력이라는 단어를 해부하면 도깨비라는 단어가 새롭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매력(魅力)

魅 = 매혹할 매/도깨비 매, 도깨비 미


"그녀는 너무 매력 있고~"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노래 가사도 있는데 가사 대로면 그녀는 도깨비의 힘을 가졌단 말인가?

매혹이라는 단어는 홀리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요즘에는 잘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도깨비에 홀리다'라는 말은 매력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라고 뭉뚱그리고 넘어가 보자.


분명히 돌 맞을 소리를 지껄여야 하니 '자뻑'이라는 신조어를 활용하여 미리 수위조절을 하고 내 이야기를 털어보기로 한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컴퓨터학원 여선생님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칭찬을 받았다.


넌 팔방미인이야!


그 자리에서 '팔방미인'이라는 뜻을 물어보면 쉬운 일인데 나는 집에 가서 백과사전을 뒤졌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라도 있었다면 당장 '팔방미인'이 무엇인지 검색했을 테지만 당시에는 그런 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어린 나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이 뜻을 이해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필요했다.

내가 왜 팔방미인이라는 평을 받은 것인지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八方美人 (팔방미인)

八 여덟 팔, 方 모 방/본뜰 방, 괴물 망, 美 아름다울 미, 人 사람 인

①어느 모로 보나 아름다운 미인(美人)

②누구에게나 두루 곱게 보이는 방법(方法)으로 처세(處世)하는 사람

③여러 방면(方面)의 일에 능통(能通)한 사람

④아무 일에나 조금씩 손대는 사람


-출처 : 네이버 한자사전 -

https://hanja.dict.naver.com/word?query=%E5%85%AB%E6%96%B9%E7%BE%8E%E4%BA%BA


지금 사전을 찾아보니 내가 알던 '팔방미인'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당시 나는 '③여러 방면(方面)의 일에 능통(能通)한 사람'의 의미만 받아들였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자뻑'이었을 수 있다.

지금의 나는 '④아무 일에나 조금씩 손대는 사람'에 가깝다.

바람으로 라면 '①어느 모로 보나 아름다운 미인(美人)', '②누구에게나 두루 곱게 보이는 방법(方法)으로 처세(處世)하는 사람'였으면 싶지만 말이다.

이걸 팩트로 받아줄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만, 시립박물관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내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그린 그림이니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나 땐 국민학교였음) 선생님께서 미술대회에 출품해 보라고 하셔서 그렸던 그림이다.

물론 상을 받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떡 하니 박물관에 걸려 있었으니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게 벌써 삼십 년도 넘은 이야기니 증명할 방법이 없다.

요즘 같으면 어린 학생일지라도 당사자에게 동의를 얻어 게시했을 것이지만 완벽한 아날로그 시대였던 당시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겠지 싶다.

아무튼 나는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고 글도 제법 쓸 줄 알았고 뭔가 만들고 조립하거나 수리하는 데에도 제법 출중했다.

게다가 운동도 꽤 잘하는 편이었고 뛰어나지는 않았어도 공부도 곧잘 하는 학생이었다.

성격도 나쁘지 않았는지 주변에 친구도 상당히 많았고 아부성 체질이 아니었음에도 선배들이 나를 상당히 좋아했다.

아쉽지만 '①어느 모로 보나 아름다운 미인(美人)'은 아니었는지 여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십 대에 벌써 삼십 대의 외모를 가졌던 나는 이십 대가 되자 다행히 노화 속도가 더뎌지면서 여자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었다.

좌절하고 살지 말라며 하늘이 도운 것이다.

살면서 여자에게 먼저 대시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로 인해 안타까운 문제도 생겼다.

로맨스 소설을 써보려 해도 인생에 밀고 당기는 로맨스가 없어 끈적한 글을 쓸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나도 속내를 표현하지도 못하고 놓쳐버리는 상황을 만들었다.

쉽게 말하자면 이성에 소심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지명이지만 아무튼 삼천포(사천)로 빠져버린 이 글맥을 다시 끄집어내서 정리를 하면 나는 '꽤 매력이 있는 놈'이었던 것이다.

위 글 때문에 엄청난 짜증을 불러왔을 수도 있지만 글이란 건 독자의 생각의 잣대에 따라 폭이 다르기 때문에 긍정 혹은 부정 혹은 육두문자 등으로 해석됐을 것이다.

하여튼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얼마 전부터 선배가 나를 두고 '도깨비 같은 놈'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문득 '매력'이라는 단어를 연상했다.

삶에 묻혀 살다 보니 나의 '매력'에 대해 별생각 없이 지냈던 나는 현재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모르고 살았던 나의 매력이 있는 건 아닐까?

위에 열거한 나의 여러 매력들은 삶의 노화로 인해 소멸되거나 지워지거나 흩어졌다.

그림도 안 그린 지 오래됐고, 당연히 여자에게 인기 없고, 선배들은 술이나 마시자 하고, 외모는 금이 갔고, 운동이야 그저 생명연장을 목표로 하는 정도이고, 글쓰기 역시 고만고만하다.

어린 시절 매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전혀 부질없는 것들로 변해버린 것이다.

대체 지금 나의 매력은 무엇일까?

선배가 말한 '도깨비 같은 놈'은 그냥 문자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도깨비 같이 황당한 놈' 혹은 '어이없는 놈'이라는 의미로 던진 말인지도 모른다.


당장 떠오르는 건 없지만, 우선은 내 매력이 무엇인지 찾은 후 즐겁고 매력적인 삶을 살면 좋겠다.


가지지 못한 것은 부러울 수밖에 없다.
지나간 젊음은 다시는 가질 수 없는 매력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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