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에 이르는 묘사의 힘

영화 <책도둑>에서

by 루파고

지하실에 숨어 지내던 맥스가 리젤에게 물었다.

'오늘의 날씨가 어떻니?'라는 질문에 '잔뜩 흐려요.'라고 답했다.

맥스는 '아니! 너만의 단어들을 이용해봐. 네 눈이 말할 수 있다면 어떻게 표현할까?'라며 질문했다.

리젤은 잠시 머뭇거리나 싶더니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주 창백한 날?'

'창백, 좋아. 계속해'

'모든 게 구름 속에 갇혀있어요. 그리고 태양은 태양처럼 안 보여요.'

'그럼 뭐 같아 보여?'

'뭐랄까...... 은빛을 띤 굴이요.'

그러자 맥스는 껄껄 웃으며 미소 지었다.

'고마워. 이젠 나도 봤어.'


세월이 지나 맥스는 다시 '오늘의 날씨가 어떻니?'라며 물었다.

리젤은 주머니에서 눈덩이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글은 눈으로 본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문자로 묘사한 것이다.

리젤은 이미 묘사가 무엇인지 깨우친 거다.

묘사보다 강렬한 것은 체험이니까.

리젤에게는 누구보다 훌륭한 스승이 맥스였을 것이고 맥스에게는 최고의 제자가 바로 리젤일 것이다.

그저 잔뜩 흐린 날씨는 창백한 날로, 태양은 태양처럼 보이지 않다가, 은빛을 띤 굴로 변했다.

굴은 cave가 아닌 oyster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어쨌든 묘사는 조금씩 다듬어져 공감할 수 있는 표현으로 변해갔다.

대개 시인들이 한 단어를 선정하고 문장을 다듬어 축약시키는 과정에 있어 상당한 고뇌에 빠진다고 들었는데 글이라는 걸 쓰겠다고 덤비기 전에 그들의 고뇌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글쓰기에 있어 새롭게 눈 뜨게 만든 영화 <책도둑>

예전에 봤을 땐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들.


맥스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노트를 선물한다.

노트엔 '글을 써'라고 쓰여 있었다.

'단어는 생명이야. 리젤, 그 백지들을 네 단어들로 가득 채워.'




배우고자 하니 세상 모든 게 스승인 것 같다.

그저 재미 삼아 봤던 영화들 속에서도 배울 것들이 늘어난다.


지난 내 글엔 과연 직접 보지 않고도 본 것처럼 묘사했을까?

앞으로는 잘할 수 있을까?

난 태생적 글쟁이가 아닌 게 분명하다.

느끼고 깨우쳤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감은 증폭되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