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빛깔의 가다란 천 조각들이 힘없이 나풀거린다. 태곳적부터 불어왔을 오랜 바람이 끊임없이 괴롭힌다. 천 조각들은 무지한 인간들이 숭상하던 신들을 조각한 여덟 개의 목각 기둥에 묶인 채 바람의 매질에 시달려야 했다. 어디로도 떠나갈 수 없는 결박의 매듭이다. 파란 호수가 붉은 대지 위에 자란 진한 연두색 수풀과 함께 파란색의 끝에 선 하늘의 무게에 눌려 있다. 대지는 세상의 모든 생명은 신이었을, 혹은 아직도 신이라고 믿어야만 할 존재의 위엄에 잔뜩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
절벽을 미끄러져 내리던 무언가 목각 기둥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붉은 흙이 굉음과 함께 파란 하늘 위로 솟구쳐 흩어졌다. 태곳적 풍광과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문명의 이기를 처음 맞이한 생명체들은 몸을 감추려 분주하다. 그들의 먹이사슬엔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붉은 흙을 날리며 다가온 것은 오프로드용 모터바이크였다. 목각 기둥 앞에서 속도를 줄이는가 싶던 모터바이크는 라이더에게서 내팽개쳐 쓰러지며 흙을 긁었다. 날듯이 뛰어내린 라이더는 마치 독수리의 검은색 그림자와 같았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날렵한 몸매의 X였다.
"나 이제 그만 할래!"
X가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가 절벽 사이사이를 갈르는 사이 X는 내팽개쳤던 모터바이크를 타고 떠났다. 그가 남긴 건 붉은 흙먼지뿐이었다. 그 자리엔 여덟 개의 목각 기둥만 남았다. 근접 촬영을 하던 드론은 여전히 모터바이크에 포커스를 두었지만 그를 따르지 않았다.
드론 카메라에 촬영된 영상에선 X가 광활한 바이칼 호수 쪽으로 점이 되어 사라졌다. 그뿐이었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촬영 스탭은 수풀 더미에서 X의 무전기를 발견했다. 전원은 꺼져 있었다. X는 하루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틀째 되던 날 촬영팀을 둘로 나눠 호텔과 현장에서 기다렸지만 삼일쨰 되던 낱 희망을 접고 말았다. 현지 경찰이 동원되었고 일주일 간의 수색이 진행되었다고 실종이라는 결론을 냈다. X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수색이 종료 이틀 후 바이칼 호수 건너편에서 X가 발견됐다. 야생동물에게 심장이 뜯긴 채였다. 그의 바지 주머니 속에선 과자봉투처럼 접힌 종이가 발견됐다.거기에는 기껏 몇 줄 되지도 않는 메모를 남겨져 있었다.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린 왜 이런 짓을 해왔던 걸까?
Y는 지옥에 빠졌었다.
난 Y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휠체어를 탄 Y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가깝게 지내던 모두가 X의 자살을 인정했다. X의 실종 소식을 전해 들은 Y는 눈물로 밤을 지샜다. 그에겐 이미 희망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었다. 안타깝게도 해미에겐 아무 것도 남겨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