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 열쇠를 얼마나 쪼물락 댔는지 손과 열쇠에 땀이 흥건하다. 반가움인가 긴장감인가, 해미는 벅찬 듯한 묘한 감정을 열쇠로 옮겼다. 오늘은 2023년 11월 9일이다. 3년 만에 살던 공간으로 돌아왔다. 노마드 정신으로 정처 없이 살았던 해미는 집이란 개념에 혼돈이 왔다. 한동안 그녀의 살림은 배낭 하나면 충분했다.
열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동네까지 가는 동안 없던 건물도 보였다. 처음 온 곳처럼 어색한 느낌에 집에 가고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큰길 앞에서 내린 해미는 배낭을 메고 어색해진 거리를 걸었다. 골목을 들어선 해미는 저게 과연 내 집이었던가 싶은 생각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사람이 살 거라고 보이지 않는 이층짜리 단독주택은 해미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었다. 3년 전 X를 잃었을 당시의 자신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남들 눈엔 폐가로 보였겠지만 해미에겐 집 자체가 그녀 자신이었다.
열쇠 구멍까지 녹이 슬어버린 대형 자물쇠는 아직 온전히 달려 있었다. 주머니 속 열쇠를 꺼내 녹슨 구멍 속에 끼워 넣었다. 손에 뻐근함이 느껴졌지만 어쨌거나 열쇠는 구멍 끝에 닿았다. 고약한 비명소리를 지르던 자물쇠는 드디어 고리를 벌리고 말았다. 자물쇠가 자신의 열쇠를 거부하는 게 아닐까 고민이었던 해미는 나지막이 한숨을 흘렸다. 안간힘으로 버티던 손잡이 레버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눌렸다. 대문을 밀자 날카로운 금속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해미는 문이 열릴 때까지 어깨와 목을 당겨 저항했다. 현무암 판석이 깔린 문 앞에는 3년이란 세월 동안 우체부와 누군가 던져 넣은 각종 우편물과 광고지들이 너저분했다. 햇빛과 빗물에 노출되어 흙탕이 되어 누렇게 변색된 종이들이 마치 폐가 아닌 폐가로 만들어놓은 듯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모습에 해미는 살짝 짜증이 났다. 집을 떠날 때 우체통을 뜯어 마당 안쪽에 넣었는데 차라리 그냥 둘 것을 그랬다며 후회했다. 그러고 보니 집 주변이 훼손되지 않았던 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싶었다.
잘 가꿨던 잔디는 숲이 되어 있었고 원랜 없었던 나무 몇 그루가 제법 높이 자라 있었다. 3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것 같았다. 바람을 타고 날아들었을 종이쪼가리와 빛바랜 과자봉투가 낙엽과 엉켜 굴러다니고 있었다. 현관 앞엔 흙이 잔뜩 쌓여 있었다. 바람이 불면 항상 흙이 조금씩 쌓이곤 했었는데 3년 동안 쌓이고 쌓여 꽤 높은 흙무덤이 되어 있었다. 그 위로 사람의 발자국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침입자의 흔적은 없었다는 걸 증명했다.
의외로 현관문은 새것처럼 부드럽게 열렸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이층 집은 지은 지 이십 년이 다 되었지만 현관문은 해미가 집을 떠나기 몇 달 전에 새로 설치한 거라 상태가 좋았다. 집 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해미는 현관문을 활짝 열고 어두운 집 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3년 전 집을 떠날 때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쓰던 살림들이 그 자리 그대로 얼음처럼 멈춰 있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해미는 집 안으로 들어가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었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집인데 출신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먼지들이 툴툴 떨어져 내렸다. 퀴퀴한 냄새는 조금씩 맑은 공기와 희석되어 갔다. 어쩌면 해미가 퀴퀴함에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퀴퀴함의 정체를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문득 스치고 지나친 기억 때문이었다. 3년 전부터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음식물들이 범인이었다. 냉장고 앞에 선 해미는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냉장고를 열었다. 코를 막았지만 지독한 냄새는 상상을 초월했다. 해미는 다시 냉장고 문을 닫고 집 밖으로 나왔다. 잠시였지만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냄새가 그동안 희석된 퀴퀴함을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해미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떠났던 게 후회스러웠다.
전기 공급은 이미 2년 전부터 끊겨 있었다. 네팔 카트만두에 있던 날이었다. 모처럼 텐트가 아닌 제대로 된 숙소에서 묵게 됐는데 문명 속으로 들어오자 문득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트러진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덕분이었다. 계좌에서 쓰지도 않는 것들이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걸 발견하고 그날부로 몽땅 해지 처리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왠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저 방랑자로서 걷고 또 걷고 무한 순례자의 길을 걷고자 했었다. 돌아갈 이유도 없었다. X가 없는 세상은 그저 공허함 뿐이었다.
정리하고 청소하는 데만 꼬박 이틀 걸렸다.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물을 버리는 게 제일 어려웠다. 냉장고는 냄새가 뱄는지 아무리 깨끗하게 닦아도 냄새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세월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해미는 전기를 쓸 생각이 없었다. 그냥 밤이 찾아온 시간엔 밤이 만들어준 어둠이 훨씬 편했다.
해미는 자신이 돌아왔다는 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어쩌면 집에 들어가던 해미의 모습을 알아본 오래된 이웃이 있을 수도 있다. 폐가로 인식되었을 수도 있는 집에 웬 낯선 사람이 들어가는 게 익숙한 모습이 아니었을 테니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을 수도 있다. 해미는 자신이 돌아온 걸 아무도 모른다고 확신했다. 아직은 그저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지내고 싶었다.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충동이 일면 당장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해미는 3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혼자 지내고 싶었다. 다 내려놓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