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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Dec 09. 2019

16. 춘천에서 서울까지 스노우라이딩

눈 내린 날 로드바이크로 춘천-서울 라이딩

날이 추워지면 춘천 라이딩이 생각난다.

이상한 일이다.

춘천 출신도 아니고 춘천과 어떤 연고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춘천은 나를 당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서울의 기온은 영하 4도.

게다가 오전 9시부터 눈 소식이 있었다.

전날인 금요일 저녁, 갑자기 춘천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심을 하고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하고 라이딩하면서 마실 커피도 한 잔 내렸다.

이번에는 춘천까지 전철을 타고 가서 서울로 돌아오는 코스다.

항상 서울에서부터 타고 갔었기 때문에 역방향 주행 코스가 궁금했었는데 이번 참에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교체용 튜브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에 왕창 사둔 튜브를 벌써 다 소진한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싶어 펑크는 운에 맡기기로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는데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웬 기대심이 들어설까?

운이 좋으면 눈 쌓인 춘천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등 오만가지 상상을 하며 간신히 잠이 들었던 것 같다.


7시에 눈을 뜨자마자 잡스러운 것들을 정리한 후 자전거 의류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서는데 생각지 못했던 한기가 옷을 뚫고 들어왔다.

일부러 느지막이 나오기도 한 데다, 워낙 몸에 열이 많아 추위를 많이 타지 않는 편이라 이번에도 간편한 차림이었는데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 영하 10도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던 경험이 있어 두려움 따위는 금세 물리칠 수 있었다.

7호선을 타고 상봉역에 도착하니 엄청난 인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떼를 지어 대합실에 무리 지어 서 있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딴지를 걸 수도 없고 하니 참기로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어폰이라고 챙겨 나오는 건데 그랬다.

열차는 십 분이 넘어도 오지 않았다.

타이밍을 잘못 맞춘 듯했다.

여차하면 춘천까지 서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대합실로 차가운 바람이 부나 싶더니 이내 눈발이 말리기 시작했다.

예보대로 서울에도 눈이 내리긴 하는가 보다 싶었다.

운이 좋으면 멋진 설경을 배경으로 라이딩을 할 수 있겠지 싶었다.


경기도권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경춘선 열차 창 밖으로 설경이 나타났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었다.

MTB도 아닌 자전거로 눈길을 달리는 정신 나간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로드바이크는 바닥 상황에 매우 민감한데 눈길 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긴 터널을 몇 개 지나 몇 개의 역에 정차하면서 열차 안에 무시 못할 소음을 일으키던 사람들이 한 무더기씩 떨어져 나갔다.

조금씩 마음에 안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워낙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소음 자체가 스트레스다.

강촌역을 지나자 곧 춘천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스노우라이딩에 대한 기대가 증폭되기 시작했다.


반가운 춘천역.

시원한 맑은 춘천의 공기가 폐 속 깊숙이까지 침투하는 느낌을 감사히 받았다.

콧구멍이 얼얼해질 정도로 숨을 깊게 내리 쉬었다.

춘천역 앞 광장은 물론 주변까지 온통 눈이 덮여 있었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도시를 하얗게 덮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도로에 매린 눈은 이미 녹아, 지면을 축축하게 적셔 놓았다.

처음엔 옷에 물이 튈까 살살 달리다가 나중엔 포기하고 맘껏 달리기 시작했다.

송지호 근처에 가니 사람이 지나간 적 없는 하얀 눈밭이 보였다.

나는 얼씨구나 하고 눈 위로 자전거를 올렸다.

눈 위에서 미끄러지면 바로 낙차로 이어질 게 뻔한 상황이라 매우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는 최대한 수직을 유지했다.

중심이 흐트러지면 넘어질 우려가 컸다.


송지호 유원지에서 사진 한 장 찍어봤다.

토요일인데도 눈 좀 쌓였다고 사람이 거의 없다.

주말에 한적한 춘천의 모습을 보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또한 즐겨야 한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송암스포츠타운 언덕 꼭대기에 예쁘게 눈이 쌓인 곳이 있어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 한 장 남겼다.

짧은 업힐인데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지난겨울에도 느꼈지만 겨울이 되면 자전거는 속도가 잘 안 나더라는......


이번 겨울에도 공지천길은 폐쇄되어 있었다.

예쁘긴 한데 좁은 데크길이 조금 위험하긴 하다.

겨울에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코스라 폐쇄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나 가을에 가면 정말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의암댐 신연교를 건너다 사진 한 장 남겼다.

사진에 성의가 별로 없긴 한데 다행히 자연 자체가 그림이나 마찬가지다.

처음 그 길을 가던 기억이 났다.

여름 땡볕에 체력은 거의 고갈된 상태로 도착한 곳이다.

자전거로는 처음이라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해서 무작정 달렸다.


아무도 달리지 않은 눈 덮인 데크길.

기분이 참 묘했다.

새로운 길도 아닌데 새로운 길 같은 느낌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여행이란 역시 새로움을 즐기는 행위다.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벌써 자전거에 눈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다운힐에 살짝 부담감이 생기고 있었다.

낙차의 공포는 이루 설명할 수 없다.


눈이 좀 튀는 것 같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앞바퀴에서 눈이 튀어나와 바지와 클릿슈즈를 공격하고 있었다.

슈즈커버도 없고 해서 통기 구멍으로 눈이 녹아내린 물이 스며들었다.

발이 조금씩 시리기 시작했다.

핫팩이라도 사 가지고 올 것을 그랬나 싶었다.

머릿속에는 가평의 다이소가 스쳐 지나갔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동영상으로도 남겼다.

슈즈커버가 이래서 필요한 건가 싶었다.


북한강을 만나 강변길을 달리는데 앞뒤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강을 혼자 전세 낸 것 같았다.

혼자 꽥꽥 소리를 지르고 달려도 누구 하나 보는 사람도 없었다.

미친놈처럼 달리는 나를 누군가 보았다면 혀를 차며 손가락질했을 거다.


클릿슈즈와 바지가 엉망이다.

변속기에도 눈이 많이 달라붙었다.

다행히 흙이 아니라서 변속은 잘 된다.


강촌으로 접어드는 업힐인데 댄싱만 치지 않으면 슬립 없이 무난하게 오를 수 있었다.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도저히 발이 시려서 고통스러움을 참기 어려웠다.

강촌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발에 붙이는 핫팩을 구입하려 했으나 역시 팔지 않았다.

허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이 참에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발이나 녹인 후 출발하기로 했다.

허기진 상태로 라이딩하다가는 금세 지칠 게 뻔하니까.


강촌에서 눈의 띄는 식당을 찾아 무조건 들어갔다.

메뉴 고민할 생각도 없었다.

나의 머릿속엔 그저 끼니 때우고 발 녹인 후 출발하는 것 외엔 없었다.

선짓국 한 그릇 주문하고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평소에 밥 두 그릇 먹는 일이 거의 없던 내게는 별 일이었다.

그 밥이 다 들어가는 게 용했다.

그릇은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싹 비우고 계산을 하는데 아주머니 두 분이 내게 관심이 많다.

눈도 왔고 추운데 자전거를 타냐며 말이다.

신발 이야기가 나와 핫팩을 못 사서 그냥 갈 계획이라 했더니 아주머니 한 분이 키친타월을 몇 장 주셨다.

신발 바닥에 깔면 좀 더 낫다며 자기 신발을 보여주시는 거다.

혹시나 싶어 친절을 감사히 받아 클릿 슈즈 바닥에 깔고 발을 끼여 넣었다.

생각보다 폭신하고 따스함이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아주머니의 관심이 따스해서 그런가 싶다.


손이 시려서 사진을 많이 못 찍었는데 마침 이 길을 먼저 달려간 MTB가 몇 대 있는 듯했다.

하지만 한참을 달려가니 자전거 바퀴 자국은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동네 분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신 듯했다.

자전거 동호인은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바지와 클릿슈즈에 튀는 눈의 양이 춘천보다 많아졌다.

이러다 눈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눈이 많이 쌓이니 녹아 스며드는 물의 양은 점점 더 많아졌다.

발은 전보다 더욱 시렸다.

머릿속엔 가평의 다이소 밖에 없었다.

지난겨울에도 거기서 핫팩을 사서 붙였었는데 그게 아니었으면 춘천까지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MTB 바퀴 자국을 따라 달려간다.

가끔 하이킹을 나선 사람들이 보이긴 했지만 모두 합해도 채 열 명도 안 될 것 같다.


얼마 전 모 연예인이 투자했다던 그 리조트다.

이거 지을 때부터 궁금했었는데 옹벽도 불법이고 수영장도 무단건축이라고 한다.

아무튼 알 게 뭔가. ㅎㅎ


여긴 내가 참 좋아하는 구간이다.

가평에서 춘천방향으로 난 길인데 봄가을에 이 길을 달릴 땐 소담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주변에 펜션이 참 많다.


가평 들어서기 전 경강교를 건너 가평2교 위에서 본 북한강이다.

벌써 얼음이 얼어붙어 장관을 이룬다.

강변엔 자라섬 캠핑장이 보인다.


앞뒤로 사진도 찍어봤다.

여기에도 MTB 바퀴 자국이 있다.

대체 누굴까?

열심히 달리면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가평 시내까지 들어가 드디어 다이소에 도착했다.

2천 원에 3쌍이 들어있다.

자전거는 완전 엉망이 됐는데 이것도 털어서 이 정도다.

나는 핫팩을 두 개 뜯어 발가락 쪽에다 위아래 각 한 장씩 총 네 장을 사용했다.

하지만 발가락에 온기가 전해지지 않았다.

이미 발가락엔 감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이 정도로 동상이 걸리지 않는다는 건 이미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중간에 공사구간이 있었는데 덤프트럭이 다니는 상황이라 길 구석으로 비켜 달려야 했다.

그게 나중에 문제가 된 것 같은데......


다시 길을 달려 MTB를 추격했다.

그런데 두세 대는 되었어야 하는 MTB가 한 대로 줄어들었다.

어찌 된 일일까?

역시 생각했던 대로 지역주민의 자전거일까 고민했다.

고민도 아닌 걸 가지고 별 생각을 다 한다 싶었지만 워낙 인적이 없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반가울 것 같았다.

만나면 꼭 먼저 인사를 하리라 맘을 먹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MTB 바퀴 자국은 완전히 사라졌다.

샛길로 빠진 것이다.

지역주민이 맞는 듯했다.

그 후로는 완전히 깨끗한 눈 위로 내 바퀴 자국만 그리며 달렸다.

군부대 옆 긴 업힐도 슬립 없이 잘도 달렸다.


저 터널은 지난겨울 나를 놀라게 만들었던 곳이다.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십 미터 정도 되는 긴 빙판을 만났다.

마침 나를 앞질러 가던 MTB 라이더 한 분이 있어 생명을 건졌다.

그분이 소리 지르며 빙판을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고 바로 하차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생명까지 운운하는 건 과장이지만 로드바이크로 그 빙판을 만났다면 아찔했을 것 같다.

그냥 편평한 빙판도 아니었다.

옆면 벽에서 흘러내려온 얼음이 울퉁불퉁하게 얼어서 어지간한 실력이라 해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비 튜브가 없어서 걱정했던 것이 현실이 됐다.

펑크가 난 것이다.

머릿속이 하앴다.

기억엔 청평역만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거리를 재 보니 9km다.

클릿슈즈를 신은 상태로 어떻게 걸어가나 싶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그냥 걷기로 했다.


이 다리를 걸어서 건널 줄이야. ^&^$#(%*%))##*^*)$*&


그래도 하늘은 무심하지 않으셨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내 눈 앞에 나타난 생소한 역사.

상천역이란다. ㅎㅎ

착하게 살았던가?

잠시 과거를 되짚어 보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내게도 가끔은 운이 따르긴 하나보다.


자전거를 세우고 상태를 보니 가관이다.

본트레거 후미등에는 어떻게 물이 들어간 것인지 고장 난 것 같았다.

자전거에는 눈과 흙이 버무려져 아주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는데 마침 상천역 뒤편에 빗자루가 있어 눈에 보이는 건 다 털어냈다.

하지만 열차에 탑승하니 눈에 보이지 않던 눈이 녹아 흘러 열차 바닥을 흥건하게 적셔버리고 말았다.

청소하시는 분들께 어찌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는지......

절대 고의가 아니었으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추운데 자전거 타고 클릿슈즈로 오래 걸어서 그런지 종아리가 꽤 당겼다.

마침 친구 녀석이 약수역에 건전한 가족용 타이마사지 샵을 오픈했기에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다른 곳들과 달리 인테리어 같은데 투자 덜 하고 마사지로 승부하는 곳이다.

웃기는 일이었지만 그날 내 앞에 선 남자 손님은 변태였던 모양이다.

이상한 걸 물어보더니 친구가 "저희는 마사지 잘해요."라는 한마디에 통장이 왜 이러냐며 확인하고 오겠다고 어물쩡 거리다 사라졌다.

친구는 변태들은 다 비슷한 멘트,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했다.

이거, 광고라고 해야 하나? ^^

(PPL이 바로 이런 것이구낭. 친구랍시고 도와줄 수 있는 게 이런 정도밖에 안 되니 양해해 주세요.)

자전거 타고 오시는 분들에게는 특별 할인해준다고 약속했다.

현장에서 카카오톡 친구 맺으면 현장 할인도 해준다.

물론 나는 안 해주는 나쁜 친구다. 


마사지샵 친구 녀석과는 근처의 유명한 닭강정집에 가서 매운맛 특대 하나 사다가 맥주 몇 잔 마시고 헤어졌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마침 사촌 형도 이 집 단골이라 하더라는......

이런 식으로 홍보질인가 의심하는 분들은. 뛕!

마사지샵은 친구네지만 닭강정집은 그날 처음 가봤다는. ^^





이번 라이딩은 계획대로 마무리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눈 내린 북한강변을 달리는 기분을 언젠가 다시 느끼러 가리라.

그땐 예비 타이어 등도 잘 챙기고 보온 대비도 철저히 하리라.

다음엔 MTB로 마음 편하게 달려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자전거는 도로 사정에 맞는 종류를 타는 게 정석인 것 같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워낙에 무식하게 운동하는 스타일이라 생각이 많이 짧다.

이러면서 하나씩 배우고 늘어가는 게 인생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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