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연말까지는 그대로 나였으면 좋겠다.
제발 '내일부터', '다음에' 같은 협상을 시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속에 있는 한껏 여린 녀석은 마음이 약해서 그런지 그런 부탁을 너무 쉽게 들어주고 만다.
'알았어, 니 의지가 그런데 이해해야지. 하루 정도는 이해해 줄게.'
그 녀석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나는 좀 더 강한 놈이 그 녀석 자리를 대신해 주었으면 한다.
언제라도 틈만 보이면 놈을 갈아치우고 싶은데 고집은 얼마나 센지 비켜줄 생각을 안 한다.
불가항력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으니 마음을 접기로 하고, 무엇이 됐든 뜻한 것이 있었다면 포기하지 않고 버텨냈으면 좋겠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매년 연말에 이르러서야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언제나 반복적으로 연초에 세운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2019년을 정리하는 시점에 들자 익숙한 후회를 한다.
다이어트나 운동 같은 건강과 관련된 것들은 매시 매분 매 초마다 신경이 쓰이는 것들이니 제쳐 두자.
평생 장편소설 100편을 쓰겠다던 목표를 두고 살았으니 연초에 어떤 설정을 해 두었을 법한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딱 떨어지는 것이 없다.
이번에는 신년 계획을 출력해 벽에 붙여 두었어야 했던 걸까?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반성하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지키며 사는데 게으른 나만 항상 문제 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 이미 지나간 것을 어쩌겠나.
2020년이 되면 또 망각하고 말 어떤 다짐을 하게 되긴 하겠지.
다만, 내년 이맘때쯤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른 척 세상과 타협하며 의지의 끈을 조금씩 풀어주는 따위는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그만 반복해도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 삶의 목표가 희미해지거나 사라지거나 흩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정의 온도가 나이와 관계가 없는 거라면 식지 않았으면 한다.
몸이 낡아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신념만큼은 지키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적어도 1년 동안만이라도 말이다.
인생을 1년 단위로 쪼개어 도돌이표를 찍어 반복하더라도 매 년 이맘 때가 되면 성취하는 즐거움이라도 맛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내년부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