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6-천둥소리

by 루파고

집에서 멀지 않은 곶자왈 깊은 곳에 매년 봄이면 취나물이 군락으로 자라는 곳이 있다. 올봄에도 역시 기정과 달래는 취나물을 뜯고 있었다. 가족들이 일 년 동안 먹을 취나물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벌써 해가 중천으로 떠올랐지만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였다. 아이들에겐 나물 뜯는 것도 은근히 재미가 있는 놀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취나물 뜯으러 가는 길에 야생 귤나무를 발견해 늙은 귤로 배를 채웠다. 그 덕에 배고픔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볕을 많이 받지 못한 귤은 꽤 늙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껍질도 질잘 벗겨졌다. 언젠가 아방이 장에서 사다 줬던 사탕보다 훨씬 달았다. 아이들은 배가 부르도록 먹고도 이십여 개는 남아서 부모님과 할망의 몫으로 챙겼다.

"달래야. 힘들지 않아?"

무릎으로 바닥을 기다시피 다니며 취나물을 뜯던 기정이 달래를 돌아보며 물었다. 달래는 방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금 힘들긴 해! 그래도 귤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괜찮은 것 같아. 왜? 오빠는 힘들어?"

달래는 미소를 거두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정은 그런 달래가 좋았다. 항상 자잘한 것부터 오빠를 위해주는 마음씨가 그대로 표정에 드러나는 게 좋았다.

"가져온 보따리가 이미 가득하잖아. 이만하면 된 것 같아. 우리 저기 오름 올라가 보면 어떨까? 작년에 올라갔을 때 너무 멋있었던 것 같아."

기정이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취나물을 뜯던 곳은 온통 숲으로 둘러 싸여 어디가 어딘지 방향 감각을 무디게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디가 어딘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지 뭐~ 오빠 소원이라면!"

달래 역시 무릎을 털고 일어나 보따리를 동여 묶어 등에 가로질러 맸다. 익숙한 솜씨였다. 기정이 먼저 보따리를 메고 나섰다. 기정의 보따리엔 귤이 한가득이라 무게감이 있었다. 가시덤불이 억센 숲이다. 아이들이나 간신히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원래 노루나 멧돼지 같은 들짐승들이나 다니는 길이다. 아이들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숲의 지리를 익힌 터라 어디에 있어도 집을 찾아갈 수 있는 본능 같은 것이 생겼다. 동물적 본능이라고 해도 무색할 정도이다.

가끔 가시덤불에 피부가 긁혀 생채기가 나기도 하고 이끼가 낀 돌을 밟아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가파른 언덕이 시작되자 앞서 가던 기정이 발걸음을 멈췄다. 앞쪽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달래야, 앞에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웬일이지? 장사 지내러 온 걸까?"

달래는 기정의 말에 그런가 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아이는 경사진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숨 고끼키여~(숨 넘어간다)"

숨이 차오른 달래가 헉헉거리며 말했다. 억새잎으로 짜서 만든 신발이 자꾸 밀렸다. 두 발 오르면 한 발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그것 또한 꽤나 익숙한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좀 더 경사가 심하다 싶으면 기정이 달래 손목을 잡아끌었다. 달래는 가능한 자기 힘으로 오르려 애를 썼다. 기정은 그런 달래가 너무 대견했다. 어린 달래가 오빠에게 부담 주는 걸 싫어하는 게 오히려 어른스러웠다. 사람들 목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역시 장사 지내는 게 맞는 듯, 슬피 우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달래야, 우리 그냥 내려갈까? 아무래도 장사 지내는 거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기정은 요즘따라 저승에 가니 마니 하는 소리를 자주 하는 할망 생각이 났다. 아무래도 괜한 부정을 타는 게 아닌까 싶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달래가 동의하자 기정은 달래를 앞서 내리막길을 향했다. 죽성 큰가름, 죽성 새가름, 죽성 새장밧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아이들이 다니는 길과는 정반대 방향에 있었다. 그쪽 길은 경사가 완만하긴 했지만 한참을 돌아서 가야 하기에 일부러 이쪽 길을 택했는데 막상 내리막길을 가자니 위험천만이었다. 기정은 올라갈 때보다 진땀을 흘리며 발을 디뎌야 했다. 게다가 어린 달래까지 챙기며 내려가자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때, 천둥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쾅! 쾅! 쾅! 소리에 놀란 기정은 그만 발을 헛디뎌 내리막길을 구르기 시작했다.

"오빠~~~"

사색이 된 달래의 비명소리였다.

이전 05화part.5-명수의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