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세상이 어떻게 미쳐 돌아가는 것인지 박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이 명수와 함께 일본으로 도망가서 목숨을 위협받으며 각지를 떠돌 때에도 그런 생각이 들진 않았었다. 할망이 들려줬던 일본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고약한 행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뛰다 걷다 보니 그의 집이 보였다. 집 앞에 두 아이가 누이 명수를 닮은 아이와 쪼그리고 않아 나뭇가지로 땅을 긁고 있었다. 아방을 발견한 달래가 기정과 함께 박수를 향해 달려왔다. 명수를 닮은 아이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아방~ 어디 다녀오셨어요?"
달래의 질문에 박수는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런데 저 아이는 언제 깨어났니? 왜 혼자 저러고 있어? 같이 놀지 않고?"
"쟤는 말이 없어요. 말을 안 해요. 같이 놀려고도 안 하고요."
"그래……."
집담 이문간(대문간) 안으로 들어서자 정지(부엌)에서 아내 도지가 물 뭍은 손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할망은?"
"어제저녁에 기도하러 나가신 후 아직 안 돌아오셨어요."
"하긴, 며칠씩 기도하러 다녀오신 게 한두 번도 아니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수는 최근 벌어진 일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저 아이는 기력을 좀 찾았소? 밥은 좀 먹였고?"
"아뇨! 말도 안 하고 밥도 안 먹어요. 어멍이 죽는 걸 봤으니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싶은데 저렇게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신기한 일 아닌가 싶어요."
박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정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아이들이 들을 세라 목소리를 낮춰 관덕정 앞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가급적 잔인한 표현을 자제하긴 했지만 아내가 어떻게 느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도지는 사색이 되다시피 놀란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아이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이것저것 묻지 않고 그냥 보듬어주기로 했다.
해가 지고 어스름만 남을 무렵 할망의 모습이 보였다. 땅에 닿을 듯이 구부정한 허리를 짧은 오동나무 지팡이에 의지한 걸음이었다. 느린 속도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터라 기도하러 다녀오는 데만 반나절은 걸렸다. 힘에 겨운 할망은 암회색 현무암 돌담에 의지해 거친 숨조차 간신히 쉬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당장 저승사자가 앞에 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마침 통시(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던 도지가 놀란 표정으로 할망을 부축했다. 허리가 한 줌도 안 되는 할망이 아슬아슬한 몸뚱이를 돌담에 기댄 모습이 아무래도 평상시 같지 않아 보였다. 도지는 할망을 부축해 식구들이 모여있는 안거리(안채)로 들어갔다. 세 아이들은 벌써 잠이 든 채였다.
"이 아이구나."
할망은 정체도 모르는 아이를 원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주름이 너무 깊어 눈동자도 제대로 볼 수 없는 할망의 눈빛이 금세 촉촉하게 젖어드는가 싶더니 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할망도 누이의 현신이라 보시는 겁니까?"
박수가 확신이라도 가진 듯이 물었다. 할망은 대꾸를 않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명수의 현신이 아니라 신이 내려오신 거지. 박수 네가 아무리 설문대할망의 맥을 끊으려 해도 그건 사람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난 언젠가 대를 이를 아이가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럼 우리 달래는 괜찮은 거죠? 이제 이 아이가 달래를 대신할 거란 말이죠? 할망! 제 말이 맞는 거죠?"
박수는 달래를 무당의 그늘에서 꺼낼 수 있다는 생각에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할망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달래는 달래의 명대로 사는 것이고, 저 아이는 저 아이 명대로 사는 게지. 내가 설문대할망의 뜻을 어찌 알겠냐마는……."
할망은 안타까운 듯, 아쉬운 듯, 체념한 듯한 여러 느낌을 담아 말했다. 박수의 희망에 찼던 표정은 다시 어둡게 변해 있었다.
"할망하고 달래 이야기로 다퉈봐야 달라질 게 없으니 그만할게요. 그나저나 이 아이가 올 거란 걸 어떻게 알았어요?"
"어제 설문대할망이 다녀가셨지. 일만 팔천의 신들을 대동하고 말이다. 할망은 내게 명수의 자리를 대신할 아이가 올 거라고 했다. 저 아이가 그 아이인 거겠지. 명수를 참 많이 닮긴 했다만……."
할망은 아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할망의 눈동자에 전에 없던 빛이 났다. 살이 없어 바짝 말라 거친 눈두덩이 안에 까만 눈동자가 전에 없이 깊어 보였다. 왠지 눈빛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럼 저 아이는 할망의 뒤를 잇게 되나요? 달래하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는데 저 아이가 있으면 더 이상 달래는 없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거야 할망의 뜻이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닌 걸 너도 알지 않느냐? 박수 너의 못난 행동이 아니었다면 명수가 죽거나 하진 않았을 거 아니냐?
할망의 핀잔에 박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게 다 제 탓이란 말입니까?"
박수의 목소리가 커지려 하자 도지가 그의 손목을 꼭 잡아 눌렀다.
"여보, 이미 지난 이야기를 왜 또 들춰내고 그래요. 이젠 잊을 때도 되었잖아요."
박수는 언제나처럼 도지의 한마디에 화를 누를 수 있었다. 만약 도지가 아니었다면 또 할망에게 소리를 지르며 대들고 말았을 것이다. 박수는 누이 명수의 죽음이 자신에게만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얘들아. 좋지 않은 일이 시작된 모양이다. 설문대할망과 일만 팔천 신들이 눈물만 흘리시고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이상한 일이다. 여태까지 이런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할망의 기도와 신들의 주문에 대해 전혀 믿는 바가 없었던 박수였지만 할망이 신들의 계시를 받았다는 말을 믿기 시작했다. 박수는 관덕정과 삼의악오름에서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도지 역시 깊은 얘기를 듣지 못했던 터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할망은 가끔씩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흘리고 손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심지어는 눈을 까뒤집어 흰자위만 보이곤 했다. 박수는 물론 도지도 할망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기도할 때에도 저런 모습일까 싶었다. 할망은 박수가 겪었던 일을 직접 겪었던 것처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신들은 틀리지 않았어. 일본 놈들이 돌아가고 나면 일본 놈들보다 더한 놈들이 올 거라고 했었는데 그게 이것인가 보구나……."
할망은 눈을 감고 입술에 힘을 주었다. 할망의 찌글찌글한 주름만 가득한 얼굴은 하얗고 긴 머리카락 안에 싸인 오래된 감자 같았다. 가늘게 부들부들 떠는 할망의 모습은 마치 신내림을 받는 듯했다.
"하르방을 만났느냐?"
할망은 눈을 감은 채로 물었다.
"네?“
하르방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던 박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하르방 말이다."
"이상한 하르방을 만나긴 했는데 그건 어떻게 알고 계세요?"
후훗! 할망은 코웃음인 듯한 비음 섞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죽은 듯이 살고 있을 줄 알았더니 어디선가 뭔가 하고 있긴 했었군!"
할망의 혼잣말에 박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할망의 신기를 딱히 믿지 않았던 박수는 명수를 닮은 아이와 하르방을 만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믿지 않으려 했지만 믿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구죠? 할망이 어떻게 그 하르방을 알고 계신다는 거죠?"
"넌 일만 팔천의 신들을 믿지 않지 않느냐?"
할망의 비판하는 듯한 말에 박수는 입술에 힘을 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믿지 않아요. 믿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고요. 그런데 이건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할망이 그 하르방 만난 것도 알고 이 아이가 올 걸 알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예요. 정말 혼란스럽긴 해요."
박수는 빨갛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말했다.
"믿고 안 믿고는 의지에 달린 일이다. 네게는 내가 야박하게 느껴졌을 지는 모르겠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오래전에도 이런 일이 없었던 일이 아니니까 널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앞으로도 네게 믿음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하르방이 말한 것처럼 넌 네 일만 잘 수행하면 된다. 할망이 네게 원하는 건 그것밖에 없다. 그게 원래 네 임무이고 네 운명에 주어진 일이니까 말이다."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라. 지금 네 운명은 개척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명수를 데리고 갔다가 다시 돌아온 네 스스로에게 물어라."
박수는 명수 건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박수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입을 다물었다.
"박수야! 할망이 언제 명수 건을 두고 네게 핀잔을 주거나 책임을 지라고 한 적이 있었느냐?"
할망의 질문에 박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 그랬다.
"할망의 뜻은 알겠어요. 그런데 그 하르방의 정체가 대체 뭐죠?"
"글쎄다! 항상 같은 모습이 아니었으니 어떤 신인지 알 수는 없지. 어쩌면 네 아방일 수도 있고 네 하르방일 수도 있다. 오백장군이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신들께서 말씀을 주지 않는 이상 나라고 알 수는 없는 법!"
"그럼 할망은 대체 제가 설명하지도 않은 하르방을 만난 걸 알고 계셨던 거죠?"
"난 네 눈을 통해 봤단다. 관덕정에서 네가 본 걸 네 눈을 통해 봤단다."
박수는 할망의 설명에 절반은 불신, 절반은 신뢰 같은 게 공존했다. 믿고 싶었지만 너무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선문대할망은 까마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계시지. 언제 어디서든 말이야. 세상에 까마귀가 존재하는 한 말이지."
"할망은 제 눈을 통해 보셨다면서요."
"혹시 모르지 않느냐? 네가 원래 사람이 아니고 까마귀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할망의 설명에 박수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알았어요. 그냥 그렇다고 할 게요. 그나저나 할망도 그 하르방이 누군지는 알 수 없다는 거네요? 어떻게 생긴 지 알면서도 말이죠."
"생김새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신들은 변화무쌍하여 언제 어떤 모습으로 현신하시는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명수를 닮은 저 아이가 선문대할망의 현신일 수도 있다. 선문대할망께서 내게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나도 장담할 수는 없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