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설친 박수는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기정이 말했던 천둥소리가 총소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지라 그들이 사는 외딴곳까지 어떤 위협이 닥쳐올지 걱정이었다. 관덕정 앞에서 본 참혹한 광경이 삼의악오름과 겹쳐 보이는 것만 같았다. 박수는 전날 삼의악오름을 지나며 이상하게 발길이 당겼던 것도 왠지 끌림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박수는 삼의악오름의 가파른 경사를 따라 올라갔다. 반쯤은 미끄러지다시피 했다. 정상 부근이 가까워지자 가슴이 시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비린내 때문이었다. 한라산 옆구리를 스치고 내려오는 산바람을 타고 피비린내가 흐르고 있었다. 피부를 타고 흐르던 땀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정상이 코 앞인데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안 봐도 뻔한 상황을 꼭 눈으로 확인까지 해야만 하느냐며 스스로를 설득하는 중이었다. 오름 정상에서 기정의 기척에 놀란 새들이 날아올랐다. 팔뚝 만한 시커먼 까마귀들이이었다. 까치도 제법 몰려 있었다.
"하아~"
박수는 저도 모르게 깊고 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너무 처참했다. 여느 오름과 마찬가지로 삼의악오름은 인근 마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조상의 묘를 쓰던 곳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정상에, 돈이 부족한 사람은 오름 아래쪽에 묘를 썼다. 사람의 죽음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곳이지만 제 발로 걸어와 죽은 적은 없었던 곳이다. 새가 날아올랐던 곳에는 원래 묏자리였는지 알 수는 없는 파다가 만 커다란 구덩이가 보였다. 그 안에는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남자들의 시신이 몇 구씩 대충 던져져 있었다. 그들은 머리에서 쏟아진 피와 뇌수가 범벅이 되어 바짝 말라 붙어 있었다. 몸은 아무렇게나 접혀 있었다. 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새들이 시신을 파먹어 피부는 성한 곳이 없었고 몇몇은 눈알도 없었다. 처참하고 잔인함에 다리가 풀린 박수는 이내 무너져 내렸다. 근처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라면 박수와 오다가다 한 번쯤은 본 사람도 있겠지만 이 상태로는 안다고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박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한 시간 넘게 넋을 놓았다. 동쪽 끝 우도 위로 떠오른 태양이 성산을 비추고 구좌를 타고 조천을 넘어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삼의악오름 정상을 빨갛게 달구기 시작했다. 빨간 태양빛이 영혼을 읽은 시신을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박수는 차라리 이 시신들을 태워 영혼과 함께 저승으로 보내주었으면 했다. 그들 영혼이 자신들의 처참한 모습을 볼 수 없었기를 기원했다.
*
이를 악물고 시신을 정리한 박수는 근처에 있는 마을로 향했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몇 개 되지도 않지만 큰 마을도 기껏 오십 가구 정도이고 대부분 열댓 가구 정도에 불과했다. 작은 마을은 아이들 전부 포함해도 오십 명도 채 되지 않는다. 마을 근처에 떨어져 외톨이처럼 사는 사람들은 열 명 남짓이다. 그런데 오름 정상에서 박수의 손으로 정리한 시신만 해도 열 명이 넘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남자였던 걸 보면 한 마을의 남자는 모두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박수는 전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을을 지나치며 심상치 않았던 느낌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돼지가 사라졌던 돼지우리도 그랬다. 만약 관덕정 앞에서 그걸 목격하지 못했다면 무자비한 산적을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해는 중천이었다. 박수는 샘을 찾아가 시신을 옮기며 묻은 피를 닦아냈다. 마을 아낙들이 물허벅(물항아리)에 물을 퍼 나르던 샘인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옷에 밴 피는 닦아냈다 해도 온몸은 피비린내로 절어 있었다. 피는 지워져도 머릿속에 각인된 잔인한 현장은 지워지지 않았다. 박수는 잊으려 머리카락을 쥐어 뜯었다.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던 박수는 전날 밤 지나쳤던 죽성큰가름 마을 입구에 닿았다. 밤에는 어두워서 못 보고 지나쳤었다. 마을은 이미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단 말인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미 전소되어 재만 남은 집도 몇 채 보였다. 타다 말았던지 아직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집도 있었다. 집집마다 올래는 전부 열려 있었고, 방문은 거의 다 열려 있었다. 고팡(곡물보관하는 방) 근처엔 곡식들이 마구 흩어져 널브러져 있었다. 집담과 밭담은 여기저기 심하게 무너져 있었다. 여간 태풍에서 무너지지 않는 돌담이 무너졌다는 건 심한 다툼이나 몸부림이 있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을 오름 정상까지 끌고 가서 죽인 게 분명했다. 마을 안에는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간신히 몸을 피한 사람들이 곡식과 중요한 걸 챙겨 급히 도망간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닭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었다.
마을을 두어 바퀴 돌아본 박수는 불안한 마음을 안은 채 집을 향했다. 근처 마을에 이런 변고가 닥쳤으니 박수의 가족도 이런 피해를 입지 않을 거란 보장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