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막을 덮치려던 군인과 경찰들은 까마귀들의 공격으로 잔뜩 겁을 먹은 채 도망치듯 철수했다. 격노한 한라산신이 날짐승인 까마귀들을 부려 자신들을 쫓아낸 거라고 수군거렸다. 작전을 주도했던 장교는 미신이고 우연이라며 병사들을 꾸짖었지만 사실은 그 역시 겁을 먹은 상태였다. 까마귀들은 제 몸을 사리지 않고 공격했다. 까마귀들은 너무 빠르고 날쌔서 총에 맞지도 않았다. 오히려 겁먹은 군인과 경찰들이 마구 쏘아댄 총알에 토벌대가 피해를 보았다. 세 명이나 총에 맞아 죽었고 많은 대원들이 총상을 입었다. 무기를 버리고 도망친 대원도 있었다. 장교는 사령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암담하기만 했다. 게다가 가뜩이나 한국군을 무시하는 미군 사령관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날이면 자신도 모가지가 날아갈 게 뻔했다.
기정은 그날부터 산 아래쪽에서 빗개를 보기로 했다. 아이들 중 가장 발이 빠르고 지리에도 익숙한 기정이 빗개 역할로 딱이었다. 군인은 아무리 본향당신이 까마귀를 부린다 할지라도 군인들이 작정하고 화력이 센 무기를 쓴다면 절대 승산이 없을 거라고 했다.
"서중석이라고 합니다. 집은 전주입니다."
"형님 동생 하며 지내지!"
박수가 손을 내밀었다.
"형님!"
중석이 자리 머리를 긁었다. 왠지 어색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군인은 이제야 자기 이름을 밝혔다. 아마 그렇게 되겠지만 만약 죽게 되면, 자신이 허무하게 죽은 건 아니라고 부모님께 전해 달라고 했다. 박수는 중석의 손을 묶었던 결박을 풀어주었다. 중석은 아이들과 잘 어울려 주었다. 아이들도 하얀 피부의 중석을 잘 따랐다.
그날 밤 서중석은 탈영병이 된 사연을 풀었다. 박수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겪은 건 아니었지만 잔인한 현장을 몇 번이나 목격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석의 경험을 들은 후엔 생각이 달라졌다. 그저 죽고 사는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
"부모님은 평생 장사를 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할아버지가 하시던 장사를 이어받으신 거죠. 그런데 해방 후 부모님 장사가 어려워졌어요. 저야 어려서 잘 알 순 없었지만 일본인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는 이유로 인심을 잃어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수입이 줄어드니 입이라도 하나 줄여야 할 판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군인이 되기로 작정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반대를 하긴 하셨지만 표정은 제 뜻대로 하라는 느낌이었어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동생들도 건사하려면 저라도 벌어야 했으니 군인이 되면 집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부모님 동의를 받고 바로 군사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평생 공부만 했던 몸뚱이라 운동신경도 없고 체력도 딸려 동기들보다 힘들게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보시다시피 군인다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훈련을 마치고 정식 군인이 됐을 땐 자부심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정식 군인이 됐다는 긍지가 있었습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군대는 미국이 병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 사단이 난 것도 어떻게 보면 미국의 주도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은 긍지가 사라졌다는 말인가?"
박수의 질문에 중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답변했다.
"흠~ 사실 제가 군인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이젠 탈영병이 됐으니 군인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짓,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해야 하는 게 군인으로서의 긍지라면 저는 군인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중석은 지긋이 눈을 감았다 뜨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군인이 군인을 죽이는 건 전쟁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도 적군일 때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군을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탈영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전쟁도 아닌데 군인이, 그것도 아군을 죽일 일이 뭐가 있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네."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한데, 만약 저 또한 제 생각을 입에 담았다면 그들처럼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대체 어떤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군인이 군인을 죽인다는 건가?"
"이젠 공공연한 비밀일 수 있습니다. 민간인을 학살하는 건 이미 제주도 전지역에 소문이 나 있지만 상명하복의 명령 체제인 군대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행위에 염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 문제로 정신병을 앓는 군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총살을 당한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거나 이런 문제를 동료나 부하와 상의하는 등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별도봉에 일제 때 일본군이 파놓은 진지동굴이 있습니다. 가끔이지만 밤에도 출동을 하곤 했습니다. 그날도 오후 늦게 부대를 떠나 길을 나섰습니다. 우린 또 어느 마을을 소거하러 가는가보다 하고 상관을 지시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별도봉 앞에 도착했을 때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거긴 민간인 총살을 하던 곳이었는데 민간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이상한 조짐을 느끼고 수근댔습니다. 헌병대장이 우리를 호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호명된 군인들은 진지동굴 앞에 세워졌고 호명되지 않은 군인들에게 소총이 지급되었습니다. 모두 장전된 상태였습니다. 저는 호명되지 않았죠. 그때 알았습니다. 호명된 군인들을 총살하는 자리였던 겁니다. 군사재판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상관의 지시에 총살 아닌 총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사람을 쏴 죽이는 행위에 이골이 난 터라 대수롭지 않은 행위였지만 상대가 군인이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전날 밤에도 함께 잠을 잤고, 아침 식사도 같이 했는데 제 손에 죽어야 했습니다. 전우애 같은 게 있었나 싶었습니다. 총살된, 아니! 학살된 군인들의 시체는 모두 동굴 안으로 던져졌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그들이 폭도들과 내통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심한 부상까지 당하게 된 건가?"
"어떻게 보면 탈영이라고 말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부하가 있었는데 별도봉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몇 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게 화근이 된 모양입니다. 헌병대가 제 앞에 나타났고 놀랄 새도 없이 저를 끌고 갔고 저는 그들이 한눈을 파는 틈을 타서 도망을 쳤습니다."
"도망치다 총에 맞았나 보군."
"그런 셈입니다. 며칠을 숨어 지냈지만 결국 헌병대에 꼬리를 잡히게 됐고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삼 일째 되던 날 한라산 자락까지 잘 숨어들었는데 토벌대의 눈에 띄고 말았습니다.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들 눈에 정상적인 군인으로 보였을 리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의 총에 맞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살아있긴 하지만 저는 살아도 산 게 아닐 겁니다. 전 탈영병이 됐으니까 말입니다."
중석의 얘기를 듣건 박수는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탈영병은 평생 도망다녀야 한다는 말인가?"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군대로 돌아간다 해도 사형될 것이고 이러다 잡힌다 해도 사형될 겁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을 유통시킨 것도 문제를 삼아 있지도 않은 혐의를 씌워 군사재판도 없이 사살해버린 자들입니다. 저 같은 건 그들에게 개미나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 사는 수밖에 없겠구만."
박수는 중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중석은 상처 부위가 통증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 미안하네. 거길 다쳤다는 걸 잊었네.“
"괜찮습니다. 이런 고통 덕분에 제가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한 번이라도 더 뉘우치게 되어 오히려 감사합니다. 기껏 이런 총상 정도로 고통스러워 했지만 저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어떨까 싶습니다."
박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군인으로서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아십니까?"
"글쎄……."
"우리가 총살한 민간인이, 양민이 사실은 폭도가 아니란 걸 알았을 때부터였습니다. 처음엔 명령이었으니까 했고, 당연히 폭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다시 찾은 우리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죄책감 같은 것도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군인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었습니다."
"그럼 이 사달이 어떻게 시작된 건가?"
"저야 명확하게 알 순 없지만 제가 경험한 걸 토대로, 의심스러웠던 걸 되짚어보면서 조금씩 판단이 들긴 했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던 것이구나, 혹은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구나 같은 추측성 결론 같은 겁니다."
"좀 어렵군."
"들어보시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 해보게나."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일본에 건너갔던 사람들이 제주로 돌아온 건 아시죠?"
"물론이지. 잘 모르지만 제주도에 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늘어났길래 알아보니 일본 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하더라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다고."
"돌아온 사람들이 문제가 된 건 아닌데 돌아온 사람들로 인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건너가 나름 세상의 물정을 익힌 사람들, 선진 문물을 배운 사람들이 정치적 횡보에 나섰습니다. 제주도에도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됐어요. 건국준비위원회는 인민위원회로 바뀌었고 제주도 발전을 목적으로 제주농업학교도 만들었어요. 정말 빠른 속도였습니다. 육지도 마찬가지로 제주도에도 청년동맹, 부녀동맹, 농민위원회, 소비조합 같은 사회단체들도 설립되어 다양한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인민위원회는 치안에 가장 주력했답니다. 역시 육지와 마찬가지로 적산 문제도 있었고요. 이렇게 우리 국민이 직접 일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제주도에도 미군정이 실시됐습니다. 미군이 제주도에 정착한 후 강력한 통제력을 가지고자 했어요."
"아~ 그래서 미군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구나. 어쩐지~"
"그런데 미군이 통제력을 갖기 위해선 인민위원회의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실정이었어요. 문제는 미군정이 인민위원회를 공식적인 행정기관이나 통치기구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미군정이 도청과 경찰의 요직에 일제 때 관리들을 그대로 앉혀 놨다고 하더군요. 미군정은 인민위원회를 통제하기 위해 우익인사들을 조직화하기 시작했어요."
"우익인사? 그게 뭔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빨갱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빨갱이? 그것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구먼."
"지금 세상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져 이념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르고 살아왔지만 엄청나게 넓은 세상에서 엄청나게 큰 나라들이 서로 잘 났다며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같은 나라는 큰 나라도 아니었던 겁니다. 알고 계시는 것처럼 미국이 아니었다면 일본이 패망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난 무식해서 들어도 잘 모르겠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 민주주의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 알 게 뭡니까?"
"그래서 빨갱이가 뭔가?"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두고 빨갱이라고 하는데 미국에 반대하는 세력을 말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미국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 땅에 말인가?"
"저 위쪽에 소련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는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미국과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 정권을 차지하려고 대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민주주의 세력을 우익이고 공산주의 편을 드는 세력을 좌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본을 몰아내고 나니 다른 나라들이 난리구먼."
박수는 안타까워 하며 혀를 찼다.
"그렇죠. 만약 저도 군인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을 몰랐을 겁니다. 안다고 해도 별로 관심이 없었을 테죠."
"그렇겠네. 난 자네가 아니었다면 이런 사실을 알 수도 없었을 것이고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건가?"
"미군정은 빠른 속도로 우익 세력을 키웠습니다. 경찰 병력도 커졌고 조선경비대 9연대를 창설했습니다. 그 후 미군정은 인민위원회를 압박하기 시작했어요. 미군정의 정책은 제주도민과 맞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흉년이 몇 년 겹친 제주도는 먹고 사는 것도 팍팍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일본에서 사람들이 돌아와 식량난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건 내가 잘 알고 있지. 요즘 이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네. 곡식이 너무 비싸져서 말이지."
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간인들이 얼마나 굶주리며 살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이 사달이 난 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봤습니다. 제가 제주도에 들어온 게 1947년 2월이었는데 3월 1일에 민간인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날 6명이나 죽었습니다. 제 생각엔 그게 시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3.1절 행사 때 좌익 쪽 사람들이 대형 행사를 진행하려고 했었는데 2월 말경 미군정이 충청도에서 경찰 100명을 급파했습니다. 좌익들이 주관하는 행사를 막겠다는 취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행사 때 무려 3만 명이나 모였다고 하더군요. 엄청난 행사였다지요. 3만 명의 주민들이 가두시위에 나섰는데 관덕정 인근에서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여 다치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다친 아이를 그대로 두고 지나갔답니다."
"설마 그랬겠는가? 경찰이 그럼 못 쓰지."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못 봐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보고도 그냥 지나갔다면 경찰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 벌어지자 흥분한 군중들이 경찰에게 돌을 던졌고 근처에 있던 무장한 경찰들이 대응사격을 했답니다. 6명이 사망했고요. 문제는 열 다섯 살 먹은 학생과 간난아기를 안은 채 총에 맞아 즉사한 여자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게 민간인들을 동요하게 했고 민심이 극에 달했습니다. 만약 이 시점에서 정치를 잘 했다면 문제가 사그라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미군정은 사태를 수습할 생각은 않고 시위를 주동한 사람을 검거하는 데 주력했다고 합니다. 이에 좌익 쪽 사람들은 미군정 탄압을 폭로하며 희생자 구호금 모금에 나섰는데 제주도민들이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청 같은 관공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도내 사람들이 죄다 파업을 하며 진실 규명을 요구했습니다. 이 시점부터 원인은 희석됐고 총파업 문제가 커졌습니다. 미군정은 육지에서 경찰을 지원받아 총파업에 강경하게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쩐지! 이상하게 경찰이 많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였군. 행색도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구먼. 나는 거의 산 속에서 살아서 세상 물정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구먼."
박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상관에게 듣기로는 제주도민 7할이 좌익 세력, 즉 공산주의 빨갱이라고 보고됐다고 합니다. 형님처럼 민주주의가 뭔지, 빨갱이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 우익좌익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죄다 빨갱이로 몰아넣은 겁니다."
"그렇구먼. 나도 빨갱이가 됐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일세."
"네. 안타깝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형님처럼 이렇게 산에 사는 사람들을 죄다 빨갱이로 몰았습니다. 모두 죽여 없애라는 명령이 나왔고 말입니다."
"빨갱이는 모두 죽여야만 하는 겐가?"
"원래 그런 건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된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네요. 다만 제 생각으로 소련이 조종하고 있는 북조선의 세력으로 몰아서 다시 조국을 찾은 사람들이 조국을 잃을 걸 두려워하는 마음을 움직이려고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미군정은 파업을 주모했다는 죄명으로 몇 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잡아 가뒀습니다. 그런데 파업 당시 파업에 동참한 경찰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파면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착한 경찰들도 있었나보네. 역시!"
"그러게요. 세상이 뒤집어져도 착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죠. 착한 사람이 더 많은 게 사실이죠. 일부 악인들이 권력을 잡는 게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가? 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나 말인가?"
"미군정은 좌익 세력들은 처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군대까지 동원되었지요. 그리고 세상에 오른쪽 왼쪽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중도 노선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마저 우익 쪽으로 노선을 옮겨 탔습니다. 우리 한반도가 영원히 남북으로 갈라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미군정에 의해 좌익 세력은 궤멸되고 있었습니다. 쥐도 궁지에 물리면 고양이 코를 문다고 하지 않습니까? 전멸 직전이었던 좌익 세력은 제주도 전지역에서 일제히 경찰지서를 공격했습니다. 한라산 오름에서 봉화가 타올랐다고 하더군요. 무려 350명이나 되는 무장대의 공격으로 경찰은 물론 민간인까지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반미를 외치며 미군정을 반대했습니다. 미군정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육지에서 경찰을 동원했고 당시 모슬포에 있었던 우리 부대 역시 투입되었습니다. 저희 부대는 민족적인 성향이 강했는데 미군정의 정책에 반하여 가능하면 협상 등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정 눈 밖에 난 김익렬 연대장님은 강제 해임되셨습니다. 교체된 박진경 중령이 부대를 통솔하면서 부대 성격이 급변했습니다."
"김익렬 연대장님은 어떻게 되셨나?"
"안타깝게도 소식은 듣지 못 했습니다. 좌천되셨을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습니다. 미군정 눈밖에 났는데 좋은 방향으로 갈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멋진 분이셨는데 안타깝습니다."
"그러게 말이네."
"그러다 선거가 있었습니다. 좌익 세력 무장대가 여기서 큰 사고를 쳤습니다. 선거사무소를 공격하고 선거관계 공무원을 납치하고 죽였습니다. 심지어는 선거인명부를 훔쳤습니다. 선거 당일에도 무장대가 나타나 투표서를 공격했습니다. 문제는 무장대에 동조하며 무장대를 따라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고 선거를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미군정이 화가 났습니다. 경비대가 추가 배치됐고 군인 병력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무려 3개 대대로 강화되었지요."
"군인이 그렇게나 많이 필요했나?"
"강경 진압 방침이 내려왔었습니다. 아마 그 때부터가 이 사달의 본격적인 시작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게 대체 언제인가?"
"4월 3일이지 싶습니다."
"얼마 안 되었군."
"형님은 이 산에 계시면서 무장대를 한 번도 마주치지 못 했었습니까?"
박수는 눈을 여러번 깜빡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는 중이었다.
"전혀! 왜 이쪽으로는 무장대가 오지 않았던 거지? 이상하군!"
"혹시 선문대할망이 보호해주신 게 아닐까요?"
"설마~"
박수는 반 쯤은 그럴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껄껄 웃어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할망 생각이 났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할망의 도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벌대가 잡아들인 사람들은 무려 6,000명에 달했습니다. 무리한 토벌이었지요. 말도 안 되는 짓이었습니다."
"전부 무장한 사람들이었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군정과 싸웠단 말인가?"
박수의 놀란 눈동자에 서중석이 더 놀란 눈치였다.
"설마 그랬겠습니까?"
"그럼 그 사람들은 대체 뭔가? 그 많은 사람들이 숲에 살았다는 건가?"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 중 가족을 데리고 피신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중석은 이렇게 산골에서만 살며 배우지 못하고 선하기만 한 제주도민들을 폭도로 몰아 죽여야 했던 자신이 미웠다. 씁쓸했다.
"토벌이 너무 잔인하고 무서웠던 탓에 탈영하는 병사들이 늘어갔습니다. 어쩌면 저도 그때 탈영했어야 싶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제 손에 무고한 희생을 추가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입니다.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짓들이었습니다."
"어쩌겠나. 군인인데."
"상관을 사살한 군인도 있었습니다. 사형에 처해졌지만 말입니다."
"자네 얘기를 듣다 보니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네. 나라면 어땠을지 자네 얘기를 들으며 나를 대입시켜 보는 중이야. 그런데 어떻게 했을 거란 장담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 상황에 놓이면 말야."
"형님이라면 좀 더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판단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아냐!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총살 당했을 것이고, 탈영을 했어도 도망쳤거나 총살을 당했을 것인데,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내 생명을 걸어야 했을 것이니 명쾌한 답을 내지는 못 했을 것 같아."
"그래서였을 겁니다. 탈영한 군인들 중 무장대를 따라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상관을 살해한 사람도 나름의 최선을 선택을 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상관이 악마로 보였을 수도 있죠. 저 또한 매일밤 같은 악몽을 꿔야 했으니까요."
"형님은 잘 모르실 것 같은데요. 지하선거라는 게 있었습니다. 남한에서는 좌익 세력들이 활동하기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도 지하선거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백지에 이름을 쓰거나 손도장을 받아가는 형태로 투표를 진행했었습니다. 북한을 따르는 공산주의 좌익 세력들이 주축이 되었던 무장대는 민간인들을 협박해서 손도장을 찍어갔습니다. 그렇게 백지날인 한 게 문제가 되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총살되기도 했습니다."
"선거가 그렇게 중요한 건가? 그런 거 안 해도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는데."
"그땐 대한민국 정부, 남한 정부가 수립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한 나라에 두 개의 정부가 세워지는 상황이었고 남한에 공산주의 좌익 세력이 존재할 수는 없었습니다. 선거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총살까지는 좀~"
"저도 형님과 같은 생각입니다만 우리로선 할 수 있는 게 없죠. 목소리도 낼 수 없는 미개한 존재니까요."
"글세. 난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목숨과 바꿀 정도로 선거가 중요한 지는 모르겠네."
"어쨌든 그건 그렇게 마무리 됐어요. 그런데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후 제주도에 본토의 병력을 파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군 내부에서도 제주도 토벌작전을 반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수 14연대가 제주도로 파견될 예정이었는데 반기를 들었고 사건이 커졌지요. 거기에 대해서는 저도 자세하게 알지 못하지만 목숨을 건지지는 못했을 겁니다. 군대란 조직이 그렇다 보니."
중석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