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8-용암굴

by 루파고

박수는 활과 화살을 챙겨 들고 더 깊은 산중으로 향했다. 일 분 일 초도 아까운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가족이 숨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야 한다. 여차하면 재공격해 올 군인과 경찰을 피해 움막을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다. 피할 곳을 찾지 못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상황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박수의 어깨가 너무 무거웠다. 산을 헤메던 중 갑자기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하나가 그의 뇌리를 스쳤다.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는 물장올 오름에 대한 전설이다. 박수는 할망을 따라 물장올 오름에 세 번이나 다녀왔지만 워낙 어릴 때 다녀온 곳이라 가는 길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희망이 흩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전설은 전설일 뿐, 설문대할망이 그들을 지켜줄 거라고 마냥 믿을 수도 없었다. 도지는 본향당신이 까마귀를 부려 공격을 막아주었다고 믿고 있지만 박수는 까마귀들이 자신들의 둥지를 보호하려는 나름의 본능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억측이거나 끼워 맞추기 식으로 믿어버리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박수는 조릿대를 헤치며 산짐승들이 다니는 길을 찾아 헤맸다. 경험 상 산짐승들은 자신들의 길로만 다닌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른 동물의 흔적을 눈치채면 다른 길을 다니거나 영역을 침범한 동물을 공격한다. 게다가 산짐승들 역시 눈이나 비가 오면 몸을 피할 수 있는 동굴 같은 공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박수는 한라산을 오르고 올랐다. 최대한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을 구석진 곳이라면 추위를 피할 공간을 만드는 것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숲이 너무 우거져 시간을 알 수 없었다. 해가 지지 않더라도 만약 갑자기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거나 하면 길을 잃을 것이다. 그는 이미 지난 경험을 통해 산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고 있었다. 자칫하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박수는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이 난 곳이 아니라서 자신이 올라온 흔적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딱히 대안도 없었다. 어쨌든 산 아래쪽으로 가기만 한다면 박수의 눈에 익숙한 곳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서부터는 날이 어두워져도 움막까지는 어떻게든 갈 자신이 있었다.

가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동물의 움직임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깊은 공포를 맛보기도 했다. 사실 그는 동물보다 사람이 더 무서웠다.

산에서 내려온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이상하게 박수가 기대했던 익숙한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근처에 오름이나 산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릉 같은 곳이라도 있다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원시림 상태의 한라산의 빽빽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것 외에는 의지할 게 없었다. 어쨌든 한라산은 내려가다 보면 평지가 나오기 때문에 박수는 두려움을 누른 채 아래를 향했다.

박수는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던 박수는 익숙한 느낌의 하천을 만날 수 있었다. 한천이었다. 움막과는 상당한 거리에 있는 하천이다. 아마 한두 시간 정도면 숲은 까맣게 질려 있을 것이다. 박수는 마음이 급해졌다. 해가 지기 전에 움막에 도착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한천 역시 건천이라 물이 흐르지는 않지만 한천 계곡 자체가 너무 험해서 속도를 낼 수도 없었다.

해가 질똥 말똥 할 무렵이었다. 박수는 자신이 선 위치가 한천 어디쯤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지리감이 사라져서 몽롱하다 싶은 상태로 계곡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앞쪽에서 숲 속의 익숙한 소리 사이로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신하고 자세를 낮췄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박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그들을 향해 접근했다. 딱히 도망칠 곳도 없었다. 차라리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는 게 맘이 편할 것 같았다.

나무둥치 사이로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넓은 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한참 옆으로 벗어난 곳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군용 트럭 두 대 가득 민간인과 군인이 타고 있었다. 차는 곧 시동을 걸었고 금세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자리를 떠났다. 박수는 트럭의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꼼짝 않고 숨었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우거진 숲을 벗어나고 보니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길은 관음사까지 연결된 길이었다. 예전엔 우마차나 다니던 길인데 이젠 군용 트럭들이 다닐 정도로 넓어졌다. 한동안 제주를 떠나본 적이 없는 박수였지만 그 길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거기서 움막까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그가 다녀온 곳이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길을 건너 다시 산길로 들어서려던 박수는 숲에서 머리를 내밀고 눈치를 살피는 한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 역시 박수를 보았는지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놀라기는 서로 마찬가지였고 서로의 생각도 비슷했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여기서 발각되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렸다. 박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를 내밀었던 사람 뒤쪽 수풀에 몇 사람이 더 숨어 있는 걸 발견했다. 민간인이 분명했다.

"뉘……. 시오?"

박수는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요?"

두 사람 다 목소리가 떨리기는 매한가지였다.

"난 사냥꾼이오만, 혹시 당신들은 방금 떠난 군인들을 피해 숨은 사람들이오?"

박수는 자신이 사냥꾼이라며 대충 얼버무렸다.

"……."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냥 못 본 척해 주시오. 서로 못 본 걸로 합시다."

그의 말에 박수 역시 동감하고 있었다. 서로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상황만 해도 어깨가 무겁고 앞날은 뿌옜다. 서로 합의가 됐다고 판단했던지 그는 숲 속의 사람들을 끌고 박수가 내려온 계곡을 따라 한라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대부분이 여자와 아이들이고 성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겨우 세 명뿐이었다. 박수보다 그 무리가 자신보다 나은 상황으로 보였다.

"한 가지만 물읍시다. 방금 군인들 차에 실려서 간 사람들은 그쪽 사람들이오?"

길을 다 건넌 박수가 맨 뒤에 선 남자에게 물었다.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대답 없이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남자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슬픔에 차 보였다.

"계엄령이 내렸소!"

그들이 사라진 숲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계엄령이 무엇인지 아는가?"

한숨도 쉬지 않고 숲을 헤치고 집으로 돌아온 박수는 당장 중석이 있는 작은 움막으로 가서 물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방금 밖에서 사람을 만났는데 계엄령이 내렸다고 하네. 까막눈인 내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으니……."

박수의 말에 중석이 한숨을 쉬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더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데…….“

"지금보다 어떻게 더 힘들어진다는 건가?"

박수의 질문에 중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하니……."

"설마하니?"

"정말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정말 시작인가 봅니다."

중석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는 게 보였다. 박수는 불안했다.

"계엄령 얘기가 없진 않았습니다."

"대체 계엄령이 뭐길래 그러나? 참나~ 답답해 죽겠네."

"사전적인 의미로는 비상사태에 군사 병력도 쓸 수 있는 국가적 위기 선포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무슨 비상사태인가?"

"저들에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보면 말입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그럼 뭣 때문에 그런단 말이냐고!"

박수가 자기 가슴을 쿵쿵 쳤다.

"형님은 제주도 산 속에 사는 것 자체가 죄인이 된 세상에 살고 계십니다. 안타깝게도 말입니다."

"그것도 죄가 되는 세상이라니 할 말이 없네."

"그래! 그것도 인정한다 치자고. 그럼 뭐가 비상사태란 말이냐고?“

"글쎄요. 작전계획 중 해안선 5킬로미터 벗어난 지역을 소개하겠다는 게 있었습니다."

"5킬로미터가 뭔가?"

"아! 잘 모르시겠군요. 미국에서 쓰는 거리 척도입니다."

"그건 거리가 얼마나 되는 건가?"

중석은 손가락을 펴서 거리를 계산했다.

"대략 계산하면 13리 정도 될 겁니다."

"13리라~"

박수는 천정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바다에서 집까지 얼마나 되는지 거리를 보는 중이었다.

"여기는 거의 30리는 될 것 같은데, 어쩌지?"

박수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됐다.

"더 깊은 숲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뿐인가? 다른 대안은 없을까?"

"아마도요."

중석은 고개를 앞으로 푹 꺾으며 말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오히려 짐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이렇게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줘서 오히려 속이 다 시원하네. 죽는 건 죽는 거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죽을 수는 없지. 우린 이제 완벽한 폭도가 된 건가?"

"그렇네요. 모든 조건을 갖췄습니다."

두 사람은 농담 같지도 않은 농담을 하곤 피식 웃어버렸다. 스스로의 삶을 방조하려는 것도 아닌데 대책이란 게 없으니 다 내려놓아야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 군인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숲을 뒤질 겁니다. 심하면 산불을 낼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진 가지 않겠지 싶습니다."

"자네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저라면 모든 명령을 취소할 것 같습니다."

중석의 답변에 박수가 큰 소리로 웃었다.

"암! 암! 그게 맞는 결정이지. 그게 말야."

박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들은 우리를 폭도로 보고 있을 것이니 손에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겁니다."

"이미 각오는 했어. 그렇다고 손 놓고 죽을 생각은 없다네. 뭐라도 방법을 찾아 봐야지."

박수는 한라산 일대를 머릿속에 그리며 숨을 만한 곳을 더듬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아무리 깊다 한들 군인들이 찾아오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너무 많아 숨을 만한 장소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군인들도 갈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중석은 잡혀간 민간인들 모두 처형될 거라고 했다. 어쩌면 숲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도 운이 좋은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박수는 그렇게 잠깐 더 사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건데……. 박수가 어릴 때 집에 먹을 게 떨어진 적이 있었다. 당시 이상한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상황이 겹쳐 며칠씩 굶는 게 일상이었다. 할망은 박수와 달래에게 먹을 걸 양보한 채 기도에만 열심이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산에서 먹을 수 있어 보이는 건 죄다 가져다 먹었다. 먹자마자 구토를 시작해 그렇지 않아도 먹은 것 없어 빈 속에 쓰라림이 심했다. 심한 설사를 하기도 했다. 하루종일 항문에서 누런 물만 나왔다. 그런 와중에도 할망은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보면 살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할망이 말했던 것처럼 군인에게 잡혀간 사람들이 산다고 해서 얼마나 살아지겠나 싶었다. 몇 시간이 될지, 며칠이 될지 모르는 시간이 그들에겐 또 얼마나 고통일까 싶었다. 중석에게 들었던 말처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고문을 당하고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나 싶었다.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삶이란 것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다.

"계엄령이 내렸다면 삼진작전이나 소개령보다 심한 압박이 있을 겁니다. 형님도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이렇게 앉아서 당하시면 안 됩니다."

"난들 이러고 싶겠는가? 오늘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 봤는데 숨을 만한 곳이 없었어. 내일도 다녀볼 테지만 군인과 경찰을 어디서 맞닥뜨릴지도 모르겠고. 만약 내가 죽거나 잡혀가기라도 한다면 아내와 아이들이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도 걱정이네. 자네는 군인이니까 나보다 뭐라도 더 많이 알 것 아닌가? 공부도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뭐라도 수를 좀 내보게."

박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짜증이 밀려 화가 났다. 박수는 쓸모없는 자신이 한탄스러워 말투가 억세진 게 미안했다.

*

그날 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발이 굵었다. 차곡차곡 쌓인 눈이 속도를 높여 그 위를 채웠다. 이른 눈인가 싶었지만 벌써 12월이 시작되어 있었다. 한라산 정상에는 이미 첫눈이 내린 지 오래였고 이미 며칠 전 내린 눈으로 백록담에 쌓인 눈은 녹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산 아래에 있었다면 매서운 겨울이 올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오래된 산중 생활로 백록담을 본 적이 없는 박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밤부터 내린 눈은 다음날 오전까지 내렸고, 눈이 그쳤나 싶더니 밤이 되자 또 눈이 내리더니 다음날 새벽에야 그쳤다. 움막에서의 첫겨울이다. 아이들은 눈이 좋아 야단법석이었지만 박수는 피신처를 찾지 못해 마음이 편치 못했다.

오후가 되어 날이 풀리더니 대부분의 눈이 녹아내렸다. 땅은 질퍽였다. 다음날 새벽, 박수는 활과 화살을 챙겨 다시 깊은 숲을 향했다. 날이 더 풀리면 군인과 경찰이 다시 활동할 테니 그전에 숙제를 해결해야 했다. 아직 몸이 성치 않았지만 중석이 있어 박수는 그나마 맘이 편했다.

전날 녹은 눈이 밤새 추위에 질퍽였던 숲에 살얼음이 얼었다. 심한 곳은 얼음판이 되어 방심해서 몇 번이나 넘어지곤 했다. 박수는 용암 흔적이 있는 굴을 찾으려 숲을 구석구석 헤치며 걸었다. 그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던 굴이라면 군인들 눈에도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박수가 그토록 찾으려 했던 용암굴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힘들게 한라산 위로 올라갈 필요도 없었다. 수백 년은 족히 넘었을 소나무 뿌리 아래 무너진 듯 보였던 구덩이 안에 좁은 통로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박수는 그 위에 나뭇가지 등으로 위장을 하면 누구도 찾아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굴 입구와 달리 그 속에는 움막보다 넓은 공간이 있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축축했다. 비록 아늑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식구들이 머물기엔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굴 안에서 불을 쓸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었다. 움막에서야 밤에만 불을 피우니 연기 걱정은 없었지만 여긴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대안이 없다는 걸 알기에 박수는 용암굴의 위치를 머릿속에 넣고 다시 움막을 향했다. 가급적 빨리 모든 식량과 살림살이를 굴 안으로 옮길 계획이었다. 굴 속에 숨는다고 해서 마음이 편할 리야 없겠지만 이미 발각됐을 가능성이 높은 움막은 더 이상의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건장한 박수, 야리야리한 도지, 한쪽 어깨를 쓸 수 없는 중석, 힘이 약한 아이들이 살림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최대한 많은 짐을 옮겨야 했다. 지게를 지고 숲을 통과하는 건 예상보다 어려웠다. 마구 자란 나뭇가지를 피하고 썩거나 벼락을 맞아 쓰러진 두꺼운 나무들을 피하며 걸어야 했다. 아이들을 챙기는 도지와 중석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박수는 수시로 뒤를 돌아보았다. 원시의 숲은 그들이 지나간 후에 길 아닌 길의 흔적을 만들고 말았다. 경험이 많은 사냥꾼이라면 그들이 지나간 흔적을 발견하는 건 일도 아니다. 박수는 좋아하지도 않았고 믿으려 하지도 않았던 설문대할망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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