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추억이 되어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다가

by 루파고
네 엄마에겐 가능했단다.


<모스크바의 신사> 중에서.....

추억을 회상하는 백작과 기억에 있을 수 없는 엄마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을 소피야는 어떤 생각, 어떤 느낌이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에도 소피야의 엄마 니나처럼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행동을 했던 적이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게 꼭 어린 시절의 이야기여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술을 줄이고 아침 한 시간씩 하는 독서 시간)부터 추억 아닌 추억을 끌어내는 이런 글이라니...


책을 읽다가 메모해둔 부분을 옮겨봤다.

어떤 사람은 5살 기억이 상당 부분 남아있다고 하던데 이상하게도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기억도 몇 개 없다.

설마 하니 알코올성 치매는 아니겠지만 유년기의 추억이 별로 없다는 건 정말 불행한 일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 부모에게서 받은 추억을 아이에게 대물림 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말 오래됐는데 얼마나 강렬했으면 지금껏 기억에 콕 박혀버릴 정도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유년기의 시절만 두고 생각에 빠진 건 아니었다.

삶에 있어 나를 겪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름 반듯하게 살고자 노력했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 원하는 그림이 그려질지도 모르겠다.

소피야의 엄마 니나의 유년기를 지켜본 백작은 소피야에게서 니나와 닮은 모습, 니나와 다른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시각이 아닐까 싶다.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는 할아버지라 할 지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추억 속으로 빠져들면서 내 글의 수준이 얼마나 하찮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글을 시작할 땐 나름 많은 생각을 정리하여 나름의 기획으로 글 덩어리를 만드는데 끝으로 갈수록 주제가 흐트러지고 원래 의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정체성이 흩어지는 경험을 한 게 한두 번도 아니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내 유년시절을 소설 속 소피야에 대입하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급기야 내 삶의 수많은 등장인물에게 나는 기억에 남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있을까 하는 데서 시작한 글인데 내 글에서 자괴감을 느끼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던 거다.

왜 생각은 언제나 주제에서 벗어나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까?

잡념이 많아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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