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스 드래곤, 1화-요르문간드

3년간 기획했던 드래곤 월드 판타지를 시작하다

by 루파고

먼 바다.

멀리서 밀려오며 검푸른 빛을 발하는 폭풍우.

너무 멀어서 거리를 파악할 수 없다.

간헐적으로 번쩍이는 크고 작은 섬광.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던 신들의 땅.

울퉁불퉁한 암반 틈.

숨은 듯 뿌리를 내린 대륙의 이름 모를 온갖 꽃들.

거센 바람에 간신히 꽃잎을 추스렸다.

영원한 토르의 땅.

토르의 존재가 잊혀진 후에도 여전히 토르의 땅이었다.

많은 신들이 토르의 땅을 지켜왔다.

숙적, 요르문간드의 마수 때문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너른 평원 위.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두 남자의 묘한 행색.

일반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큰 키다.

호리호리한 사내와 단단한 체구를 가진 사내.

그들 뒤를 따르는 윤기 자르르한 두 마리의 말.

빨간 머리카락의 호리호리한 남자의 어깨까지 내린 머리칼에 윤기가 흐른다.

이질적인 누런 피부가 어색하지 않게 어울린다.

갑옷이라기엔 어색한 복장.

겨우 가슴만 간신히 가린, 묘한 빛을 내는 쇳덩어리뿐이다.

망토라고 할 수 있을까?

어깨부터 무릎까지 휘감은 망또.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속이 비치는 섬유다.

헐렁한 바람막이용으로 보일 뿐 추위를 막거나 하는 용도는 아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강풍에 망또가 펄럭였다.

물개와 곰의 가죽으로 만든 시커먼 옷이 보였다.

그 위에 회색 순록의 털을 둘렀다.

고대 바이킹족이 즐겨 입는 옷이다.

가슴에 걸친 갑옷을 제외하면 고대 바이킹이 돌아온 것인가 싶다.

찰랑이는 갑옷의 금속들.

색상도, 모양도, 그 위에 새겨진 문양들.

당 시대 누구도 만들 수 없는 물건들이다.

갑옷은 은빛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묘한 빛을 냈다.

결코 인간이 만든 금속은 아니다.

갑옷 위에는 음각으로 새겨진 용이 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셀 수 없는 많은 용들이 서로의 몸을 뱀처럼 꼬았다.

용 두 마리가 빛을 발하며 꿈틀거렸다.


고대의 바이킹은 항상 칼과 활을 소지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무기로 쓸 만한 게 없다.

두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멀리서 보면 편평한 대지.

하지만 울퉁불퉁하고 날카로운 돌이 많다.

두 뼘 넘게 풀이 자란 탓에 바닥을 골라 걷는 말의 걸음이 엉성하다.

금속처럼 단단한 근육이 멋지게 율동한다.

녀석들은 하루 간격으로 태어난 배 다른 형제다.

조상 대대로 오로지 한 주인만을 섬기는 종이다.

녀석들은 오직 두 사람에게만 등을 허락했다.

일반적인 말과 달리 특별한 능력도 있다.

아무리 멀어도, 어디에 있어도 주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있었던 것인지 나중에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파파, 고집 센 요르가 순순히 따라올까요?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잖습니까? 항상 거짓말만 일삼고 말입니다."


덩치가 우람한 남자가 시선을 앞에 둔 채 말했다.

그는 요르문간드를 요르라 불렀다.


"이번에는 믿어봐야지. 놈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잖나. 요르는 다른 놈들보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야. 의심이 좀 많을 뿐이지. 어쩌면 녀석도 우리말을 믿어줄 날이 오지 않겠어?"


파파의 미소에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그는 한마디를 더 이었다.


"푸라고, 자네는 아직도 우리 과업에 의심이 있는 겐가?"


"설마요. 파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제 우리뿐인데. 우리마저 손을 놓는다면..."


푸라고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시간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파란 불이 일어나던 밤.

그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선조들이 수천 년 전부터 예고했던 그 사건.

미리 준비하라 그토록 일렀던 그 사건.

예고됐었지만 막아내지 못했다.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아직 남은 과업을 이루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할까?

모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푸라고의 머릿속에 쓰라린 기억이 스쳤다.

그는 긴 한숨으로 기억을 억눌렀다.

발아래 풀들이 검게 녹아내렸다.

처절한 고통이 독을 품은 것이다.

뒤를 따르던 말들이 괴성을 지르며 뒤로 펄쩍 뛰었다.

익숙한 일이었음에도 두려워 보였다.

그것도 잠시였다.

일 미터 반경의 풀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불에 탄 것도 아니고 그냥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온통 검은색이었다.


"자꾸 떠올리지 말게, 푸라고. 그래 봤자 속만 쓰리지. 이게 어디 일이 년 된 일도 아니고. 자네 말대로 이젠 우리뿐이지 않나.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버텨 내야지."


세 시간 정도를 더 걸었을까,

앞에 보이던 절벽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갈수록 흰 갈매기의 개체수가 많아졌다.

푸라고는 몇 번이고 바위틈 사이의 갈매기 둥지를 밟을 뻔했다.

갈매기는 말이 지나갈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갈매기 알이 말발굽에 밟히자 갈매기들이 하늘을 덮을 듯이 몰려들어 공격했다.

말들은 대수롭지 않았지만 미안한 눈빛이 가득했다.


높이를 알 수 없는 절벽 끝.

조그맣게 보이는 파도만이 절벽 높이를 예상하게 했다.

절벽 사이사이에 물안개도 구름도 아닌 것들이 걸쳐 있었다.

푸라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놈이라도 잡아끌고 왔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어느 세월에? 그리고 데려왔다 해도 요르가 우리말을 믿기나 하겠어? 세상 모든 것들을 미워하던 녀석인데."


"하긴, 그렇죠. 그러니까 파파는 왜 토르를 도와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신 겁니까? 그때 그렇게만 안 했으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되는 건데 말입니다."


푸라고는 툴툴거리며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파파는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푸라고는 한쪽 뿔이 잘린 후로 동굴 속에 숨어 사는 늙은 영노를 떠올렸다.

남극으로 데려가는 건 실패했지만 그들과는 소통이 가능한 녀석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힘 빠지면 내려가다 바닥에 내동댕이 치겠는데요. 대체 높이가 얼마나 되는 거죠? 그리고 요르는 대체 어디에 숨은 거랍니까? 어쩌자고 이런 곳까지 도망쳐 온 걸까요? 다니다 보니 살기 좋은 곳들이 엄청 많던데 말입니다."


"아무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에서 어서 오라며 기다리겠어? 언젠가 책에서 이 지역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어. 저 아래에는 천장이 높은 동굴들이 많다고 하더군. 거기에 숨 죽이고 있지 않을까 싶네."


파파는 그의 아버지가 준 마법서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렸다.

아쉽지만 그 사건으로 마법서는 영원히 사라지고 없다.


어느 날 파파의 빈 노트에 삽화가 기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두 페이지 짜리 삽화가 생겼다.

요르문간드가 토르와 싸우다가 도망친 후 자리 잡은 곳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었다.

노르드어 문헌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인간 세상에서는 토르가 요르문간드를 죽였다고 알려졌다.

토르 역시 요르문간드에게 물린 후 독이 번져 죽었다고 알려졌다.

어린 시절, 파파는 인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이란 존재가 죽는다는 것에 상당한 의문점을 가졌었다.

또한 절대 믿으려 하지 않았었다.

그날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파파는 푸라고가 찾아낸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 사이로 누군가의 손을 탄 길이 있었다.

길이라곤 하지만 잡을 것도 없고 피할 곳도 없다.

수억 년의 세월 동안 풍화된 바위가 강한 바람에 떨어져 내렸다.


"생각보다는 쉽지 않은데요. 여기서 힘을 뺄 수도 없고 참 곤란한 상황입니다."


푸라고는 걱정이 앞서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럼 나 혼자 다녀와도 돼. 자네는 여기 있게."


"파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파파를..."


푸라고는 파파의 손짓에 말을 끊었다.


"저기 요르가 보이는 것 같네."


요르문간드의 꼬리가 바닥에 살짝 드러나 보였다.


"꼬리가 짧아진 것 같은데요."


푸라고가 말했다.

왠지 힘이 난 듯했다.


"토르에게 당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게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몰라. 이제는 우리말을 들어주려나. 어때? 그냥 내려가도 되지 않겠어?"


파파는 피식 미소 짓더니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파파!"


푸라고는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순간 요르문간드의 꼬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파파의 모습은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졌다.

절벽이 생각보다 높았다.

푸라고는 하는 수 없다는 듯한 고개를 흔들더니 이내 몸을 던졌다.





요르문간드_<위키백과에서>

요르문간드(고대 노르드어: Jǫrmungandr [ˈjɔrmuŋɡandr]), 또는 미드가르드오름(고대 노르드어: Midgarðsormr→미드가르드 뱀, 세계 뱀)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큰 바다뱀으로, 여자 요툰 앙그르보다와 신 로키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 에다》(Prose Edda)에 따르면, 오딘이 로키와 앙그르[1] 바다에 떨어진 요르문간드는 너무 크게 자라서 세상을 한 바퀴 돌고 자기 꼬리를 물 정도였다.[2] 그렇기 때문에 요르문간드는 미드가르드오름, 또는 세계 뱀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요르문간드가 자기 꼬리를 놓으면, 세상이 멸망한다. 요르문간드의 맞수는 뇌신 토르이다.



영노_<나무위키에서>

팔다리가 없는 걸 제외하고는 용(다른 설에 따르면 사자와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과 유사한 생김새를 하고 있어 이무기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실제로 악한 사람을 잡아 먹으면 하늘로 승천한다는 전승도 존재한다. 머리에 짧고 뭉툭한 뿔이 나있고 비늘은 푸른색이다. 거의 식신에 가까운 엄청난 식성을 자랑하는데 사람, 짐승은 물론 무생물인 바위나 쇠와 심지어 그림자도 먹어 치울 정도로 엄청나다. 다만 먹는다기보다는 삼켜 버린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럼에도 다른 이무기에 비하여 평판은 그리 나쁘지는 않은 모양. 아마 못된 양반이나 탐관오리를 잡아먹는다고 믿어져서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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