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용들의 신화
영원히 가까워질 것 같지 않은 깊은 절벽.
추락일까, 비행일까, 푸라고는 그저 떨어지는 중이다.
와본 적이 없는 곳이라 바닥의 지형지물이 익숙하지 않다.
고도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먼저 뛰어내린 파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흔적도 없다.
시커먼 구름이 당장이라도 세상을 삼킬 듯 가까이 다가왔다.
바다 건너 다른 대륙에 멈춰 있을 것만 같았던 폭풍이다.
먹구름 아래로 짙어져 가는 바다.
수면 위 어둠이 섬광에 찢겨 나갔다.
섬광 아래 드러냈던 고래등이 바닷속으로 숨었다.
평온하던 파도가 하늘을 향해 춤을 추었다.
푸라고는 아직도 추락 중이다.
그는 매처럼 동공을 조아 절벽 아래를 살폈다.
섬광과 같은 눈빛이 흘렀다.
노란 연기가 길게 이어지는 게 보였다.
파파 주위로 파란빛이 감싸듯 흐르고 있었다.
전과 비할 수 없는 강렬한 빛이다.
파파의 앞쪽에 요르문간드의 머리가 절벽에 반쯤 가려 보였다.
언제나 그랬지만 긴장감이 목을 타게 했다.
[공격할까요?]
푸라고는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하며 파파에게 생각을 전했다.
어차피 속도를 줄이기 위해 사용해야 할 힘이었으니 요르문간드를 향해 사용하면 일거양득인 셈이다.
[싸우는 것처럼 보이나? ...... 아직은 괜찮아. 이 녀석 마음이 아직 열리지 않았을 뿐이야...... 좀 더 다스려 봐야겠어.]
푸라고는 파파의 힘이 달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파는 생각이 원활히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었다.
푸라고는 착륙 위치를 바꾸기 위해 바람을 뿜었다.
그의 손에서 밀려 나온 회오리가 절벽 옆을 스쳤다.
마치 하얀 물보라를 연상케 하는 바람의 소용돌이였다.
푸라고는 절벽에서 백 미터 이상 멀어졌다.
파파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자 이번에는 바닥을 향해 바람을 내뿜었다.
추락하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결코 느린 속도가 아니었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힘을 더 불어넣어야 하는 상황이다.
푸라고는 순식간에 체력이 줄어들며 살짝 현기증이 느껴졌다.
파파는 푸라고보다 훨씬 높은 페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파파라 해도 이 정도 체력을 소모한 상황이라면...
푸라고는 파파가 페론을 원활하게 운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파파의 반탄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요르문간드를 상대로 장시간 버티는 건 어려운 일이다.
푸라고는 힘을 남겨두어야겠다고 결정하고 힘을 뺐다.
당연히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바닥에 내동댕이 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력은 거의 바닥에 가까웠다.
푸라고는 파파의 판단이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파는 아직도 요르문간드에 맞선 채였다.
요르문간드 역시 그다지 여유롭게 보이지는 않았다.
요르문간드는 황산 냄새가 나는 깊은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노란 입김이었다.
[파파, 어떻게 할까요? 저도 공격을...]
[아니! 그냥 내버려 둬. 저 녀석 눈을 봐. 예전 같지 않아.]
푸라고는 요르문간드의 눈을 살폈다.
놈 역시 푸라고에게 한눈을 팔고 있었다.
요르문간드가 두 사람을 동시에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힘으로 제압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이번에는 대화로 끝내자고. 가능할 것 같아. 둘 다 세월이 너무 흘러서 그런지 요르도 예전 같지 않아. 요르 녀석, 그동안 생각이 많았던 모양이야. 라이벌이 없어져서 그런 걸까? 많이 약해졌어.]
파파의 고집을 아는 푸라고는 하는 수 없이 넓적한 바위 하나를 찾아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먼 바다에서 다가오던 검은 폭풍은 절벽 위로 남아있던 파란 하늘을 집어삼켰다.
빛이 쪼그라들며 완벽한 암흑의 세상으로 변했다.
절벽 아래 대적하고 선 파파와 요르문간드의 모습은 마치 수천 년 된 조각상 같았다.
요르문간드의 나이가 얼마나 됐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아마도 수천 년의 세월을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파파는 지난 두 번의 대결 후로 요르문간드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어쩌면 의지가 약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요란한 대기 속에서 무시무시한 섬광이 일어났다.
절벽도 무너뜨릴 기세였다.
잠시 후 콩알만 한 빗방울이 절벽을 때렸다.
절벽 사이사이에서 수를 셀 수 없는 거대한 수직의 폭포가 생겼다.
두 번째 거대한 섬광이 터졌다.
절벽에 용들의 조각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푸라고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용들의 역사가 절벽에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파파는 여전히 요르문간드와 대치하고 있었다.
푸라고는 섬광에 비친 용들의 역사를 기억에 담기 시작했다.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용들의 역사가 사라져 버리고 말 것만 같았다.
천둥소리는 마치 용들의 포효처럼 들렸다.
한 가닥 번개가 절벽 위를 때렸다.
절벽은 섬광을 남김없이 흡수했다.
번개를 맞아 습기가 증발한 절벽 중간쯤에 작은 동굴 하나가 드러났다.
원래 있었던 것인지 번개가 빨려 들어가며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암흑 같았던 절벽 아래에 점차 빛이 들기 시작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 보였던 폭풍이 육지에 닿으며 급격하게 소멸한 것이다.
불과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 사이 푸라고는 수천 년도 아닌 수만 년의 용들의 역사를 머리에 담았다.
그곳은 용들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파파는 여전히 요르문간드와 그대로 대치한 상태였다.
지쳤을까?
파파와 요르문간드 모두 서서히 페론을 줄이기 시작했다.
푸라고는 절벽을 가득 메웠던 페론의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파파의 반탄의 빛은 완전히 소멸했다.
곧 요르문간드의 페론도 소멸했다.
놈은 자세를 고쳐 잡는가 싶더니 머리를 바닥에 대고 누워버렸다.
[끝난 건가요?]
푸라고가 물었다.
[그렇게 된 것 같네. 알고 보니 요르는 여기에 숨은 게 아니라 여기서 죽어가는 중이었어.]
파파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체력 문제가 아니었다.
요르문간드에게서 생명의 아련함을 느낀 것이었다.
요르문간드는 푸라고에게 아무런 적대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제 우리 편이 된 건가요?"
푸라고가 요르문간드를 넘겨다 보며 말했다.
"다 토르 때문이야. 그놈의 고집 때문이지. 요르는 생명을 정리하려 이곳에 온 거야. 하지만 녀석이 생각했던 것보다 자기 생명이 질겼던 거지."
"싸우던 게 아니었군요."
푸라고의 어이없다는 표현에 파파가 가볍게 웃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군. 대화에 너무 빠져든 탓이었을까? 요르가 기억을 열어줬어. 잠시 그의 기억을 더듬어 봤지. 아픔이 많은 녀석이었더군. 어쩌다 우트가르다로키에게 잡혀서 고양이로 변신하는 수모까지 당했으니 요르의 모멸감이 어느 정도였겠나? 저 자존심 센 녀석이 그런 일을 겪고 토르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이제 요르도 죽어버리고 나면 일이 점점 더 복잡해지네요. 생각했던 게 죄다 수정되어야 하는 판인가요?"
"글쎄, 아직은. 일단은 데리고 가자고. 견뎌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을 각오한 요르가 그 정도쯤이야 견디지 않겠나 싶어. 어차피 우린 때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니까 말이네."
파파는 생의 끄트머리에 놓인 요르문간드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보았다.
요르문간드는 그들의 시선도 귀찮았는지 눈을 감아버렸다.
"파파, 그보다 아까 폭풍우 때 엄청난 것을 봤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요르가 여기를 죽음의 장소로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는 용들의 무덤이었습니다. 게다가 절벽에는 용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건 요르 기억 속에서 봤어."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파파의 말에 푸라고는 힘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쳇, 좋다 말았군요. 조금 신이 나는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용들의 역사는 어떻던가?"
"그걸 모두 기억하는 건 어려웠지만 대부분은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보다 파파, 혹시 저 위에 동굴이 있다는 건 아십니까?"
푸라고는 절벽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파파는 동공을 조으며 푸라고의 손끝을 따라가 보았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동굴 비슷한 것이 보이기는 했다.
푸라고는 파파에게 동굴을 발견하게 된 경유를 설명했다.
둘 다 그곳에 그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용들의 숨은 전설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긴 또 어떻게 올라가야 하나요? 힘이 온전히 다 남아있어도 힘들 것 같은데요."
푸라고는 묘수가 없을까 하여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요르가 도와주면 가능할 것 같은데. 녀석 꼬리로 우리를 튕겨 올려주면 무리 없을 것 같지 않아? 어때? 푸라고?"
파파의 제안에 푸라고는 딱 하고 손바닥을 마주쳤다.
"캬~ 역시 우리 파파님은 천재셔."
요르문간드는 두 사람을 절벽 쪽으로 높이 튕겨 주고 다시 눈을 감았다.
요르문간드의 꼬리는 두 사람을 정확하게 동굴 앞에 던져 주었다.
그들의 노력 따위는 전혀 필요 없었다.
동굴 앞에 선 두 사람은 서로 어깨를 치켜세웠다.
기대 이상이어서 황당할 뿐이었다.
파파는 절벽 끝부분에 머리 부분만 보이는 요르문간드를 내려다봤다.
요르문간드가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의 끈을 놓아버릴까 조바심이 난 것이다.
동굴은 번개 때문에 생긴 곳은 아니었다.
번개가 어떻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을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입구에서 생각했던 것과 달리 동굴 속은 절벽 바깥 해변보다 넓었다.
두 사람은 두 발짝도 걸을 수 없었다.
위대함, 엄숙함 같은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게가 그들을 눌렀다.
그곳에는 어둠과 빛이 공존하고 있었다.
가공할 신도 존재할 수 있었고, 우주를 새로 창조할 파괴력도 존재할 수 있었다.
동굴 속 바닥에는 전설에도 없었던 드래곤이 피부까지 원 상태로 보존된 채로 있었다.
요르문간드가 절벽 밖에 머물렀던 것은 그가 드래곤의 무덤 속으로 들어올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로키(고대 노르드어: ᛚᚢᚴᛁ; Loki)는 롭트(고대 노르드어: Loptr) 또는 흐베드룽그(고대 노르드어: Hveðrungr)라고도 불리며, 북유럽 신화에서 아스 또는 요툰 또는 둘 다인 존재이다. 로키는 파르바우티와 라우페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헬블린디와 뷜레이스트의 형제이다. 여성 요툰 앙그르보다와의 사이에서 헬·펜리르·요르문간드를 낳았으며, 아내 시귄과의 사이에서 나르피와 나리를 낳았다. 또한 암말로 변신하여 종마 스바딜파리와 흘레붙어 여성으로서 슬레이프니르를 낳았다.
로키와 에시르 신족들과의 관계는 문헌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로키는 어떤 때는 신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로키는 변신하는 존재로, 연어·암말·물개·파리·늙은 여자 등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서로 다른 사건에 나타난다. 로키와 다른 신들의 긍정적인 관계는 로키가 발드르를 죽게 만듬으로써 끝이 난다. 로키는 신들에 의해 그 아들들 중 하나의 창자로 포박당하게 된다.
《고 에다》와 《신 에다》 모두, 스카디가 포박당한 로키 위에 독사를 올려두었다고 하고 있다. 독사는 로키의 위에서 독액을 떨어뜨리고, 시귄이 사발에다가 독을 받아낸다. 하지만 사발이 다 차면 시귄은 사발을 비우기 위해 자리를 떠야 하며, 그때마다 독액이 떨어져 로키는 고통에 몸부림치게 된다. 이것이 지진의 원인이라 한다. 말세 라그나로크가 시작되면 로키는 포박에서 풀려나 요투나르를 비롯한 신에 적대하는 존재들을 모아 싸우게 된다. 그리고 로키는 헤임달과 싸워 둘이 서로를 죽이게 된다.
로키는 13세기 이전의 문헌들을 모아놓은 《고 에다》에서부터 그 존재가 나타나며, 13세기에 아이슬란드의 스노리 스투를루손이 쓴 《신 에다》와 《헤임스크링글라》, 노르웨이의 룬 시가, 스칼드 시가, 스칸디나비아 민화에도 얼굴을 내민다. 또한 스납툰 석이나 커크비 스티븐 석, 고스포스 십자가 등의 석물들에 새겨져 있는 존재가 로키로 생각된다. 흔히 "트릭스터"라고 일컬어지는 북유럽 신화에서의 로키의 기원과 역할은 학자들의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