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와 푸라고는 제일 북쪽에 있는 섬으로 갔다.
거기서부터는 쭉 남쪽으로 내려갔다.
섬이란 섬을 모조리 뒤져볼 계획이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무려 이십 개가 넘는 섬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푸라고는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인간 세상에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설득 끝에 파파의 허락을 받아냈다.
인간들을 잘 활용하면 수고로움을 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파파는 최근 들어 부쩍 체력이 떨어져 있었다.
푸라고의 제안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십 년 전만 같았어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요르문간드와 대적하며 체력을 방전한 후로 급격히 노화되고 있었다.
그날 파파는 요르문간드의 기억을 읽으며 자신의 기억도 공유해 주었다.
서로를 공유하며 이해할 수 있었다.
요르문간드는 토르와의 전쟁 후로 지칠 대로 지쳤다.
물론 수 천년이 지나도 생명이 꺼질 이유가 없었다.
그가 지친 건 정신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용들의 조상은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요르문간드는 조상들에게 야속함을 느끼고 있었다.
애당초 그럴 것이었다면 용들의 무덤 앞으로 부르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는 수천 년간 무덤 앞을 지키며 용들의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다른 용들의 그림자를 읽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용들이었다.
자신의 순서는 계속 밀리고 있었다.
요르문간드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은 점차 피폐해져만 갔다.
그는 생명의 불이 꺼지기만 기다렸다.
파파가 요르문간드를 찾아왔던 날.
그는 드디어 그날이 왔다고 생각했다.
죽기만을 기다리던 요르문간드는 오히려 삶의 목적을 찾았다.
한편 파파는 생명의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요르문간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과업의 완성을 위해 요르문간드의 생명을 연장해야만 했다.
파파는 그렇지 않아도 꺼져가던 자신의 생명을 요르문간드에게 나눠주었다.
푸라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거래였다.
*
잉글랜드 섬을 절반 정도 내려왔을 무렵.
파파는 이동이 어려울 정도로 체력이 떨어져 있었다.
푸라고는 인간들의 몸에 좋다는 것들을 구해왔다.
하지만 파파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파파는 생명의 불이 거의 꺼져가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서쪽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인간들에게서 웨일스라는 곳에 괴소문이 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에 들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북쪽 소문에서는 와이번을 확신하고 있었는데 남쪽에선 전혀 다른 용을 얘기하고 있었다.
파파는 잉글랜드 땅에 두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대개 용들은 넓은 구역을 영역으로 삼는다.
그들이 작은 땅을 공유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역만큼은 피를 나눈 형제에게조차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푸라고는 인간의 집을 빌려 파파를 쉬게 했다.
그리고는 웨일스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향했다.
마음이 급했다.
빨리 이 지역을 정리하고 남극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왠지 남극에 가면 파파가 체력을 회복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희망이었다.
푸라고는 서쪽 해안선을 따라 리버풀의 머지 강변을 돌아 이동했다.
인간들에게서 웨일스의 괴물에 대한 괴소문이 좀 더 현실감 있게 들려왔다.
푸라고는 용이 확실하다고 확신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웨일스의 용을 만난다고 해서 딱 떨어지는 해결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용을 설득하거나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을 만나려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푸라고는 파파의 건강 걱정으로 남극으로 돌아가자며 간청했다.
하지만 파파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와이번을 만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푸라고는 혼자 힘으로 와이번 아닌 그 어떤 용과 싸운다 해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건 파파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왠지 파파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웨일스 지역에는 괴물 소식으로 흉흉했다.
하지만 직접 목격했다는 인간은 만날 수 없었다.
인간들은 소문을 마치 진실인 양 떠들고 다녔다.
푸라고는 괴물을 목격했다는 곳을 찾아갔다.
역시 용의 흔적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용을 찾는 걸 거의 포기하고 파파에게 돌아가던 날이었다.
푸라고는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녹색의 괴물이 괴이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림자마저 녹색이었다.
다리가 네 개였고 날개는 보이지 않았다.
용들 중 응룡은 날개가 가장 짧다.
용이라면 작더라도 날개가 달려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녹색 괴물에겐 분명히 날개 같은 건 달려있지 않았다.
눈동자를 조일 필요도 없었다.
용이라기보다는 뱀에 가까운 형체였다.
소문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 웨일스의 용은 와이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괴물은 파파가 머물고 있는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푸라고는 당장 괴물을 좇았다.
올 때 삼 일이 걸렸으니 아무리 빨리 간다 해도 이틀은 걸릴 여정이다.
하루를 뛰다시피 걸었지만 절반도 못 왔다.
아무리 느리다 해도 푸라고의 속도는 인간들이 타는 말보다 빠르다.
푸라고는 육지의 초원 어딘가에서 풀을 뜯고 있을 그들의 말이 그리웠다.
그 어떤 말보다 빠른 녀석들의 발이 그리웠다.
며칠을 쉬지 않고 달려도 지치지 않는 녀석들이 부러웠다.
한참을 달리는데 파파의 생각이 전해져 왔다.
[와이번이 나타난 것 같다. 드디어 용 사냥꾼들에게 잡힌 모양이야. 최대한 빨리 돌아와라. 그들이 와이번을 죽이기 전에.]
[파파, 몸은 어떠세요? 괜찮으신 거죠?]
푸라고는 파파의 건강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했다.
평소의 그였다면 벌써 와이번에게 달려가 해결했을 것이었다.
푸라고는 심장이 벌렁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괜찮다. 얼마나 걸릴 것 같나?]
[하룻밤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보다 어제 초록 괴물을 보았습니다. 와이번이 아니었습니다.]
푸라고는 초록 괴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마음은 급하지만 잠시 쉬어갈 생각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파파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호흡이 너무 거칠어져 있었다.
호흡이 안정된 푸라고는 긴 숨을 내쉬고 다시 뛸 준비를 했다.
순간 푸라고의 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기척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림자조차 없었다.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푸라고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파파에게 변고가 생길 것만 같은 불안감이 그를 잠식했다.
언젠가는 혼자 남게 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던 그날이 올 것만 같았다.
'왕국의 또 다른 생존자인 걸까?'
위험한 존재가 아닌지, 푸라고의 머릿속은 엉망이 됐다.
*
파파가 머물던 인간의 집 근처에 도착할 때까지 파파는 어떤 생각도 전해오지 않았다.
푸라고의 생각에도 답이 없었다.
불안해진 푸라고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아닐 거야. 절대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푸라고는 강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아직 해가 중천이었다.
그런데 마을 어디에도 인간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파파 역시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소통도 되지 않았다.
마을을 헤집고 다니던 푸라고는 거의 거동이 불가능해 보이는 늙은 인간을 발견했다.
삶의 끝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푸라고의 모습을 보고도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푸라고의 빠른 움직임은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다가가자 늙은 인간이 말했다.
"용 사냥꾼이 용을 잡았답니다."
늙은 인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에는 깊은 호수가 있다.
푸라고는 빠른 속도로 호수를 향했다.
동공을 조여도 깊이를 알 수 없었던 호수였다.
그 안에 뭔가 존재할 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기이한 곳이었다.
불안함이 현실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