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꼴로가 돌아간 후 왕파파와 김혜미는 용에 관한 자료를 찾는데 집중했다. 니꼴로는 나미비아에서 영상을 촬영한 사람은 같은 부족 사람이라고 했다. 그들은 용들에 관한 많은 기록을 모았으며 최근에는 유튜브 방송에서 용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다루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가십거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용이 허구의 생물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니꼴로는 나미비아에 두 마리의 용이 더 존재한다고 했다. 어떤 문헌에도 존재하지 않는 용이다. 그들 부족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정보였다. 왕파파는 오랜 세월 동안 추적이 진행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빠의 다음 행선지가 궁금했다. 어쩌면 나미비아의 나머지 두 용을 찾으러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당장이라도 달려가 니꼴로의 부족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니꼴로는 푸라고를 만나거나 위치라도 알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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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시간째 책장을 넘기던 중 김혜미가 입을 열었다. 시선은 활자에 꽂힌 채였다.
"영국의 드래곤 전설 중에 남쪽 해안에서 엄청나게 큰 녀석 둘이 장시간 싸우다 바다에 빠졌다는 기록이 있어. 그리고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대."
"그게 정말 사실이었다는 거야?"
왕파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우 건조한 대화 같지만 그런 식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지낸 지 벌써 십 년은 되었다. 김혜미의 머릿속에서는 당시의 상항이 실제였던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사실 책에는 상상하는 것만큼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상상력을 동원해 사실처럼 그려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읽으며 느꼈던 용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종이 위에 실제의 모습처럼 그리곤 했었는데 이제는 실제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도 거의 비슷하게 공유할 수 있었다.
"과학으로는 사실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은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책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 것 같아."
"그렇다면 아저씨의 일기에 기록된 내용들 중 인간의 전설과 일치되는 것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 거야?"
"내 생각엔 그런 것 같아. 용에 대한 전설 중에는 파파와 아빠가 용들과 싸웠던 이야기들이 남아있을 것만 같아.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남극 어딘가엔 용들이 존재하고 있을 거야."
"설마 남극으로 가자는 건 아니겠지?"
고개를 돌린 김혜미가 왕파파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설마, 내가 미쳤냐? 나미비아 모래폭풍에서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충분하거든. 무모한 짓은 하지 않기로 했어."
왕파파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남극을 그리고 있었다. 깊은 얼음동굴 속에 얼어버린 용들이 박제처럼 줄을 지어 서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그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짓이 잘하고 있는 걸까?"
왕파파는 니꼴로가 다녀간 후로 용을 찾겠다며 고고학에 꽂혀 영국까지 온 것부터 후회스러웠다. 모두 불필요한 짓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휴학할까 봐."
"뭐? 그럼 나도 휴학해야지!"
무심결에 던진 말이었고 놀라는 게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김혜미의 대답은 예상을 뒤집었다. 영국까지 데려와 놓고 자기만 휴학하려는 게 미안했다.
"너 혼자 해보겠다는 생각이었어? 어처구니가 없구만."
아무런 대꾸가 없자 김혜미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런 게 아니고..."
"내가 말했지? 니가 어딜 가든 반드시 따라가겠다고."
"하지만 아저씨하고 아줌마가 아시면 어쩌려고."
"이건 내 인생이거든."
김혜미의 표정엔 결의가 엿보였다. 생각을 굽힐 것 같지 않았다.
"그보다 어쩌려고?"
"집을 팔아버릴까 해. 어차피 그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 같은 게 없어졌어."
"시골집 팔아서 얼마나 나온다고. 현실적인 생각을 좀 해야지. 너 영국 올 때 현금이 될 만한 건 죄다 정리해서 왔잖아. 무작정 휴학할 일은 아닌 것 같아. 아직 니꼴로에게서 어떤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르잖아."
잠자코 듣던 왕파파는 충동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혜미는 자신보다 현명하고 현실적인 것 같아 오히려 든든했다.
바로 그 시간, 푸라고의 일기는 다시 빛을 내고 있었다. 전에 없던 묘한 색이 퍼지며 방 안을 비추며 순간적으로 짧은 진동으로 책상을 흔들더니 순식간에 소멸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