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스 드래곤, 26화-하나스의 니꼴로

by 루파고

"팀! 손님이 찾아왔네요. 로비로 가보세요."

"고마워요. 릴리."

영국에서 쓸 이름으로 고르고 고른 이름이었다. 김혜미는 그냥 파파라고 써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지만 왠지 영어식 이름을 갖고 싶었다. 파파라는 이름은 한국보다 영국에서 더 놀림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었다. 이름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이다. 책에 푹 빠져있던 왕파파는 구부정하게 굽혔던 허리를 쭉 폈다. 척추 뼈가 우두둑 거리는 소리를 내며 새로 자리를 잡았다. 옆에 있던 김혜미가 자리에 없다는 것도 모른 채였다.

'얜 또 그새 어디 간 거지?'

왕파파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실을 나섰다. 복도를 빠져나가 1층 로비 쪽으로 향하는데 김혜미의 모습이 보였다. 요즘 점점 예뻐져서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왕파파에게만 그리 보이는 건 아니었다. 김혜미는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있었다. 뭔지 대화에 집중한 채였다. 로비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를 찾아왔다는 손님일 가능성이 높다. 여자는 얼굴이 까만 게 아프리카 쪽 사람일 것 같았다. 머리카락은 짧지만 레게풍의 흑인 고유의 헤어스타일이었다. 짙은 밤색 정장을 입은 몸매에 건강미가 흘러넘쳤다. 발목이 짧은 바지 때문에 드러난 얼굴보다 어두운 컬러의 발목이 돋보였다. 발목에 찬 두꺼운 금장 발찌가 묘하게 어울렸다. 왕파파가 가까이 다가서도 그녀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앞쪽에 다가가 헛기침을 하자 김혜미가 고개를 들었다.

"왔어?"

얼굴이 까만 여자가 놀란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를 찾아왔대. 그것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말이야."

"Sir. Glad to meet you. My name is miccolo."

얼굴이 까만 여자가 얼굴을 붉혔다. 까만 얼굴에 홍조를 띠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왕파파는 자기를 보자 안절부절못하는 미꼴로의 모습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너를 만나고 싶었대."

김혜미가 대신 설명하려는 듯했다.

"나를? 혹시 저를 아시나요?"

왕파파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미꼴로를 만난 기억이 없었다. 영국에서 일 년 가까이 지냈지만 지금껏 만난 흑인은 기껏 백여 명에 불과했고 그중 미꼴로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도 없었다.

"누구신지..."

왕파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꼴로의 표정은 유명 연예인이나 존경하는 인사를 만났을 때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환희 그 자체를 보이고 있었다.

"영국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버지가 제게 당장이라도 모셔오라고 보냈습니다."

"네? 왜요?"

왕파파는 어안이 벙벙했다.

"니가 미꼴로의 부족에 전설로 내려오는 수호신이래."

김혜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왕파파 역시 황당했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저희 부족은 오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족 누구나 파파의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미꼴로는 의자에 걸쳐 두었던 검은색 가죽 가방을 당겨 지퍼를 열고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헉!"

왕파파보다 김혜미가 더욱 놀란 눈치였다. 잠시 후 놀라움보다는 웃겨 죽겠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완전 너 맞네. 머리도 크고~"

김혜미가 한참을 깔깔거렸다. 미꼴로의 표정엔 불편함이 가득했다. 왕파파는 황당한 기분이었지만 미꼴로의 표정엔 가식이나 장난 같은 게 보이지 않아 뭔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꼴로, 미안해요. 무시하거나 믿지 않으려는 게 아니고요. 왕파파하고 닮긴 했는데 너무 웃겨서 말이죠."

김혜미가 웃음을 누르고 말했다.

"우리 부족 마을이 가면 더 많아요. 제가 보기엔 너무 똑같아 보입니다."

"잠깐!"

왕파파가 니꼴로의 말을 끊었다. 김혜미는 왕파파와 같은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네 맞습니다. 우리 부족은 하나스라고 해요. 서리무를 수거한 분은 푸라고라는 분이죠? 파파님의 아버님이신."

왕파파는 가슴이 뛰었다. 아빠의 일기에 기록된 그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그들이 자신을 찾아오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니꼴로는 자신을 그들의 신화적인 존재로 알고 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아빠를 만났나요?"

왕파파가 급히 물었다. 김혜미가 자리를 옮겨 왕파파의 팔을 붙들었다. 손에서 땀이 났다. 따스함보다 따스함이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아뇨! 대신 아빠가 만나셨어요. 그런데 그날 곧 돌아가실 것 같이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어요.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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