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삼중 시선
내가 내가 아닐 때 진짜 글이 나온다고?
오랜만에 소설을 쓰고 있다.
그것도 두 편을 동시에 쓰는 해괴한 짓을 하는 거다.
그냥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다.
이상하게 피곤함이 느껴지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연재의 압박을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한동안 나는 글을 너무 성의없이 막 쓰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거기다 '다작을 원하는 게 아니다', '아이디어가 많아 그냥 써지는 걸 어떻게 하냐'며 충고를 피했다.
'내 귀는 항상 열려있다'고 하면서도 한 달만에 장편소설 한 편을 뚝딱 처리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미친 도전을 한 것이다.
지금으로선 왜 그랬나 싶기도 하도 이야기가 생각했던 방향에서 어긋나는 것도 방치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연재를 중단한 후 죄다 들어 엎고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비평 하나만큼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신랄하게 하는 친구에게 연재 작품의 평을 부탁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재된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부끄러워서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었던 나는 자존심을 꾹 누르고 끝까지 비평을 들었다.
성장을 위해서는 꼭 들어야만 했다.
만약 좀 더 어릴 때였다면, '그렇게 잘났으면 니가 써 봐!'라고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꾹꾹 참았다.
좀 더 참았다면 응축된 스프링처럼 뭐라도 튀어나왔을까?
내겐 글쓰기에 있어 가장 안 좋은 버릇이 있다.
생각이 흐르는 대로 마구 쓰고서도 퇴고 한번 없이 내놓는다는 아주 큰 결함이다.
모르긴 해도 이 글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글 쓰는 즐거움을 퇴고라는 작업이 까먹는 것도 아님에도 변하지 않는 걸 보면 주요 원인은 게으름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문제가 바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만들어낸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빌어먹을 친구 녀석의 비평은 폭풍처럼 가슴속을 후비고, 뒤집고, 마구 흔들어 놨다.
시간이 지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나는 엉망이 된 머릿속을 뒤져 비평의 요점을 끄집어냈다.
요점은 시선의 문제 때문에 독자의 동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 글에는 작가의 시선과 캐릭터의 시선은 있지만 독자의 시선이 없다는 것이다.
상상력은 충분하지만 디테일한 표현이 부족하다는 평이었다.
이제는 녀석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같은 장소에 있어도 내가 본 것을 바로 옆 사람이 똑같이 볼 수도 없는데, 작가의 상상력에 기대어 또 다른 상상력을 가할 독자의 시선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독자는 작가가 묘사한 것들을 토대로 그들 나름의 세상을 상상하게 되는데 나는 그들에게 그럴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 남자 모두 바이킹족 전통의 의상을 입고 있었지만, 가죽과 천은 물론 옷에 달린 금속의 문양이 예사롭지 않다.
녀석은 내 소설 초반에 나오는 이 문장부터 집어냈다.
"바이킹족의 의상을 지금 설명해 봐."
"음~"
젠장, 말문이 콱 막혔다. 머릿속엔 그려지는데 말로는 안 나오는 것이다. 글로는 써졌을까? 좀 더 세밀한 묘사를 위해 자료조사도 하고 좀 더 상상을 펼쳐야 했던 것이다.
나는 좀 더 디테일한 질문으로 강도가 세질 것을 우려했지만 더는 강하게 밀지 않았다.
"넌 지금 너도 상상하지 않은 것을 두고 독자에게 상상하라고 강요하고 있어.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질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내가 과연 글을 쓰고 있었던 게 맞긴 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읽었던 <모스크바의 신사>, <가재가 노래하는 곳> 두 편에서 작가들의 섬세한 표현에 감동을 하고서도 정작 내 글에 적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자질의 문제라고 빠져나갈 생각을 한다면 지금 당장 절필을 선언하는 게 맞다.
독자의 시선 > 작가의 시선 > 캐릭터의 시선
이게 이번에 정립한 나의 글쓰기 요령이다.
이것을 깨닫고도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고 판단되면 당장에 절필하리라.
작가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싶다.
차라리 어쩌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이제 4화니까 그거라도 빨리 수정을 가해야겠다.
이번에 느낀 게 절실하다.
작가는 비평을 먹으며 자란다.
물론,
잘못 먹으면 죽는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