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쓸까, 거짓말로 쓸까?

꾸며내기의 달인이 되고 싶다

by 루파고

픽션 ( Fiction [T] )

지어낸 이야기.

허구. 인물과 사건의 장면 등이 사실 그대로가 아닌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것으로 소설(장편 · 단편 포함)과 담화를 픽션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야기의 밑바탕에는 작자의 풍부한 인생 경험이 깔려있다.

극과 담화시 · 우화 · 옛날이야기 · 민화 등도 픽션의 요소를 지니며 때로는 역사적 인물과 전기 따위에도 작자에 의한 픽션적인 윤색을 가한 것이 있다.

따라서 픽션이라고 해서 거짓인 것은 아니다.

픽션은 현실 이상의 진실성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허구로서의 가치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소설은 내용이 얼마나 현실적인 사실성과 가까워야 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 속에 함축된 진실을 가치로서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우열이 구분된다.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픽션의 사전적인 의미를 먼저 되새겨 본다.


소설 속에는 작가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말이다.

나의 허접한 소설 열두 편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 내놓기 낯부끄러운 글도 활자가 되어 빛을 보기도 했다.

생각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선 안 된다.

옳고 그름이라고 선을 긋고 보면 세상엔 진실과 거짓만 남는다.

픽션이라는 단어는 모호한 경계선 상에 있다.

사실이냐 허구냐.

진실성을 가진 허구라는 표현 자체가 종잡을 수 없는 잣대가 되고 만다.

어쨌건 픽션이란 공감할 수 있는 철학을 보기 좋은 그릇에 충격이 와 닿을 정도로 강렬하게 담아내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지금도 어설프기 그지없는 글이지만 내 글은 오랜 기간 나도 모르게 다듬어진 생각들이 글자로 변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인정하든 말든 휘갈긴 시가 됐든, 상념을 주르륵 내려쓴 에세이가 됐든, 하나의 소재가 떠올라 받아 쓴 소설이 됐든 모든 건 내 생각에서 시작됐다.

소설은 시나 에세이와 다르다.

사실에 기반하든 몽땅 허구가 됐든 상상력이 총동원돼야만 한다.

작게는 캐릭터 선정부터 배경 설정, 크게는 이야기 흐름과 구성과 전개 그리고 임팩트 있는 한 방을 그려내야 독자는 지치지 않고 글을 읽을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너무 깊게 내면 속으로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몇 페이지를 쓴 글들을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깊은 한숨과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가 즐기는 다른 뭔가를 내려놓아야 한다.

심지어는 독서할 시간도 부족하다.

내 글쓰기는 많은 작가들이 써낸 글이 스승인데 독서마저 멀리 해야 할 지경이다.


소설 한 편 한 편을 써 가면서 아주 조금씩 뭐라도 터득하는 것 같다.

퇴고라는 절차를 거치며 역시 조금은 성장했다.

누군가의 신랄한 비평 덕에 자만의 늪에 빠질 뻔한 아를 꺼내오기도 했다.

(과연 꺼내졌을지는 모르겠다)


이제야 제목으로 썼던 본론으로 돌아간다.

거짓말을 쓸까? 거짓말로 쓸까?

조사 하나에 의미는 크게 달라졌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소설이란 건 사실에 기반했다 하더라도 허구다.


거짓말을 쓴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들을 재조립하여 내 글로 재탄생시키는 걸 말한다고 보면 될까?

거짓말로 쓴다.

이건 그야말로 내가 꾸며내는 거다.


남이 말한 거짓말과 내가 꾸민 거짓말을 잘 버무려 구질구질한 철학과 잘 버무리면 좋은 글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잘 꾸며낸다 한들 철학이라는 기반이 약하면 공감할 수 없는 거짓이 된다.

공감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정말 좋은 글이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필수적이다.

눈에 콩깍지가 끼면 모두 모든 단점이 장점으로 보이고 사랑스럽게만 보이듯이 공감대가 형성되면 모든 게 용서되고 몰입하게 돈다.

요즘 들어 나 자신의 내면에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글자는 쓰고 있지만 글에서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호흡하지 않는 죽은 글이다.

생명이 있는 글은 시대가 변해도 강렬한 향기가 있다.

역시 철학의 문제다.

2018년 12월 말일에 마무리한 <로드바이크2:침묵의 봄> 이후로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지 못했다.

그 소설을 쓰면서 한계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역시 철학의 부재가 원인이다.


정말 스승이 필요할 때다.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강렬한 뭔가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이런 글 한 꼭지도 아무 기획 없이 생각 흘러가는 대로 쓰다 보니 두서없다.

하지만 역시 쓸데없는 고집으로 고치기를 거부한다.

이 고질병은 언제나 고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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