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귀가 열려야 써지는 걸까?
정치판을 보면 빠지지 않는 두 개 단어가 있다.
좌빨 그리고 우빨.
좌편향, 우편향이라고도 한다.
사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두 개의 단어에 전부 녹아 있다.
편향된 관점과 생각, 즉 편견을 말한다.
귀가 열리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황당해서 어처구니없는 예를 들어 본다.
길을 가다 고라니를 보았다고 치자.
생전 고라니라는 동물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두고 사슴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노루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람의 인성이 다 기어 나오는 경우도 많다.
물론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따른다.
생전 처음 고라니를 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고라니 일수가 없다.
노루가 아니라면 사슴이어야만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뇌 속에 고라니란 동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귀가 열린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이 모르는 동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왼쪽만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오른쪽은 무조건 잘못된 거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려나?
편향된 생각만 가지고 있는 사람을 두고 편협한 사람이라고 한다고 할 수 있다.
편협이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과해서 생각이 좁아지는 것을 말한다.
말하기는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인데 가장 큰 장점은 뱉어버리면 그만인 말하기와는 달리 생각을 고쳐 쓰고 바꿀 수 있는 아주 이로운 표현 방법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기보단 생각나는 대로 툭툭 던져 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여기엔 귀가 열렸는지 아닌지에 대한 작용이 있을 수 있다.
'나만 옳다' 혹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 그러기에 생각을 고칠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귀를 열지 않을 거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귀를 열지 않는 사람은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나무처럼 뻣뻣하고 강직한 것도 좋겠고 때론 갈대처럼 유들유들하게 흔들리는 것도 좋겠다.
어찌 됐건 내 뿌리는 남아 있으니까.
유들유들한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판단을 한다면
모르긴 해도 안 한 것보다는 좀 더 괜찮은 방향에 근접하지 않을까?
생각을 고치고 귀를 열어보자.
그러면 여태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리고, 흘려보냈던 다른 것들이 보이고, 그것들은 새로운 관점의 신선한 생각을 가져다줄 것이다.
다른 생각을 배척하기보다 다르기에 신박하다는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발한 글질 능력이 생길지도 모른다.
오늘도 되지도 않는 쉰소리를 정리도 없이 주절주절 늘어놨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뇌에 찬 게 별로 없는 내게는 이게 한계점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