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스 드래곤,19화-나미비아

by 루파고

"역시 아무것도 없어."

왕파파는 허탈한 마음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의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김혜미는 그런 왕파파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고개를 푹 숙인 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잖아. 마음 편히 가져."

왕파파는 등 뒤로 느껴지는 김혜미의 체온 때문인지 측은한 마음이 느껴져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알던 그녀와는 다른 묘한 편안함을 느꼈다. 왕파파는 김혜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촉촉한 손등이 보들보들했다.

"그래, 기대한 건 아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뭐라도 있을 줄 알았어. 난 분명히 아빠가 맞다고 생각했어. 아빠 외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건 너도 잘 알잖아."

왕파파가 김혜미를 끌어다 자기 앞쪽 바닥으로 끌어 앉히려 하자 그녀는 왕파파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 역시 자연스럽게 김혜미를 사타구니 앞에 끌어 앉혔다.

"나도 아저씨였다고 확신해. 하지만 홍길동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시는 분을 우리가 무슨 수로 찾아내겠어. 그래도 좀 무심하시긴 해. 방송에서 아저씨가 나왔다는 건 더 잘 아실 텐데 말이야."

"그러게."

왕파파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혜미의 땀냄새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런던에서 나미비아까지는 무려 삼일이나 걸렸다. 적도를 통과해 남반부까지 오는 비행기 편은 직항노선도 없어 도브 해협을 건너 프랑스까지 가서 간신히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비행기를 탔다. 그걸 놓치면 적어도 다섯 시간은 늦춰질 수 있었다. 무려 열다섯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나미비아의 월비스 베이 국제공항에서 미리 예약해 둔 디스커버리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꼬박 하루 가까이 달려왔다. 지도에 나오는 정식 도로에서 벗어난 건 무려 다섯 시간이 넘었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벌써 상당수의 사람들이 현장을 점거하고 있었다. 소형버스와 캠핑카를 포함해 스무 대 가까운 차량에 사람은 거의 백 명 가까이 몰려 있었다. 관광객 모양새를 한 사람들로 보였지만 드래곤 마니아들이라는 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부 방송 관계자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실제 용이 존재하는 생물인지 방송에서 말이 많았다. 유튜브에서는 관련한 영상이 수시로 제작되어 올라왔다. 불과 며칠 사이 벌어진 일이지만 드래곤, 용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가공되었다. 인간의 상상력은 끊임이 없었다. 무궁무진한 가짜 창조물들이 툭하면 튀어나와 나미비아에서 촬영된 영상도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신하기 어렵게 했다. 실제로 영상 자체를 두고 진위 여부로 말이 많았다. 상상 속의 생물이라고 확신하던 용이 현실에 나타났다는 것 자체를 믿으려는 사람들은 마니아들 뿐이었다. 이미 UFO나 괴생명체 등을 촬영한 영상은 부지기수로 많기 때문에 이번 것 역시 그런 류의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같은 영상을 본 사람들은 전 세계에 수억 명은 되겠지만 왕파파와 김혜미는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방송에서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과 인터뷰한 영상을 공개했는데 그는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누구도 그걸 꾸며댄 이야기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목요연하고 진중했지만 소수를 제외하고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너무 멀어서 눈으로도, 카메라로도 선명하게 잡아낼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라는 건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마을 하나가 송두리째 불길에 휩싸였고 건물이고 사람이고 모두 재가 되고 말았어요. 지금은 보시다시피 모래바람에 날아가거나 모래가 죄다 덮어버렸지만 분명히 저곳에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었단 말입니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실 것 아닙니까? 내가 뭐 할 일이 없어서 이런 영상을 가짜로 만들어 소동을 내겠어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영상 편집 전문가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개는 그가 방송을 활용해 유명세를 타려고 일부러 조작한 가공물일 거라는 설이 제일 유력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반면에 그의 설명처럼 원래 있던 마을이 사라져 버린 건 나미비아 정부에서도 인정하고 있었다. 반면 나미비아 정부는 강한 모래폭풍으로 인해 마을이 사라지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일축했다. 실제 사례들까지 몇 개 들어 보이자 혹시나 했던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의 호기심의 문을 서서히 걸어 잠그게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객관적인 사실도 드래곤 신봉자들의 발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영상에서 봤던 마을의 모습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미비아 정부의 설명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었다. 방송이 나가기 전날 엄청난 모래폭풍이 예고되어 있었고 다음날 그로 인한 피해를 입을 마을이 셀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라지거나 한 마을은 이 곳 외엔 없었다. 다만 생존자가 전혀 없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원인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없는 듯했다.

왕파파와 김혜미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촬영 장소까지 가서 현장을 확인했지만 의심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허탈한 마음이 담긴 깊은 한숨에 모래바닥이라도 꺼져 내렸으면 했다.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어쩌겠어. 게다가 아저씨가 여길 다시 오실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널 찾아오려고 하셨다면 벌써 하셨을 거야. 니 말대로 아저씨는 그 과업이라는 것을 해결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에 떠나신 거잖아. 이번에는 이렇게 허탕을 쳤지만 언젠간 아저씨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 언젠가라니..."

왕파파는 한숨을 내쉬었다. 모처럼 아빠의 흔적을 찾았다는 생각에 만사 다 팽개치고 찾아온 나미비아에서조차 허무한 결과를 만나니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난 우리가 아저씨하고 만날 수 있는 날이 곧 올 거라고 생각해. 방법은 다르지만 찾고자 하는 건 같잖아. 게다가 우리에게는 강력한 지원군이 생겼잖아."

김혜미의 말에 왕파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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