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스 드래곤, 20화-밀당의 시작

by 루파고

유튜브에는 말코비치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계정에 동영상이 올려져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물 원본을 편집 없이 재생해 볼 수 있다. 왕파파와 김혜미는 여러 번 영상을 돌려 보았지만 고의적인 편집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들 중 일부는 고도의 기술로 제작된 영상물이라고도 했지만 그들에게는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말코비치 계정의 주인은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말코비치는 본명이었다. 게시물 설명에 의하면 방송에서 나온 대로 영상전문가는 맞지만 절대 합성물 같은 인위적인 조작이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김혜미는 그를 만나보자고 했지만 왕파파는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에게서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것도 없을 것 같았고 만난다고 해봐야 되려 의심만 살 가능성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곧 푸라고의 일기가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막으로 유명한 나미비아에서 더 이상의 체류는 의미가 없었다. 가급적 빨리 돌아가 책에 쓰인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국까지 돌아가는 길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최소 삼일의 여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들은 마음을 내려놓고 풍경을 즐기기로 했다. 어차피 공항까지 가는 동안 딱히 할 것도 없었다. 항공편도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다. 비슷한 노선이지만 올 땐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었다. 사막은 평원처럼 이어지다가도 구릉이 나타나기도 했다. 황금빛에 가까운 누런 색의 사막이기도 했고 은빛 사막이기도 했다. 수억 년간 바람으로 다듬어졌을 나미비아의 사막이 사진작가들의 로망이 되어버린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생명을 잃고 쓰러진 후 살도 가죽도 남지 않은 뼈만 앙상한 동물의 사체도 더러 눈이 띄었다. 죽은 듯한 고목도 가까스로 생명의 끈을 부여잡은 채 버티는 듯 보였다. 지도에 표시된 호수는 거짓말처럼 쪼그라 들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다양한 선인장은 나미비아 사막을 데코레이션 한 듯 표식을 했다. 풍화작용으로 조각된 암석들은 온갖 기이한 모양으로 사막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멀리 이름 모를 산맥들이 사막의 끝을 알려주었다.

"아프리카 대륙에 떠도는 전설에는 용이 많이 있었잖아. 그런데 아저씨 책에 기록된 용은 기껏 하나뿐이었어. 이번에 나타난 용은 전설에도 없던 녀석이고 말이야. 지구 곳곳에 인간들의 전설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은 용들이 더 있을 것 같아."

멀리 하늘을 떠받치듯 버티고 선 바위를 감상하던 김혜미가 입을 열었다. 왕파파는 그런 김혜미의 모습을 보았다. 어딘가 반짝이는 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담겨버린 듯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던 중이었어.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심장이 뛰어서 힘든데. 넌 어때?"

김혜미가 맨발의 두 다리를 대시보드 위로 올렸다. 반바리를 입은 쭉 뻗은 하얀 다리가 가지런히 놓였다. 햇볕보다 눈이 부셨다. 왕파파는 무엇 때문에 가슴이 뛰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최근 일 년 가까이 그녀에 대한 두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다. 좋아하는 건 맞는데 친구로서 좋아하는 것인지 이성으로 좋아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성적 호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고백을 한다거나 하는 상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괜히 말이라도 잘못 꺼냈다가 서로 껄끄러운 관계가 되는 건 더욱 싫었다. 하지만 자꾸 김혜미의 온몸 구석구석이 전부 예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쁘지?"

"어? 어... 어..."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왕파파는 적당한 답변을 구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뭐야? 너 지금 내 다리 보고 그러는 거야? 이런 변태 새끼!"

"아니, 그게 아니고 저기... 저어기 돌이 예쁘다고.."

왕파파는 재빨리 김혜미 너무 창문 밖 풍경을 곁눈질했다. 겨드랑이에 땀이 배는 듯했다.

"지랄. 그냥 예쁘다고 해도 돼. 넌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도 그 모양이냐?"

"내가 뭘?"

"어휴~ 이런 멍청한 놈을 남자 친구라고."

김혜미가 한숨을 쉬며 눈을 흘겼다.

"내가 남자 친구였어?"

왕파파는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감정을 들킨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럼 뭔데? 애인이라도 되냐? 아빠냐? 오빠냐?"

"그건... 남자 친구 맞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전부 니 책임이잖아."

왕파파가 이빨을 꽉 깨물어 보이며 눈을 부라리자 김혜미가 피식 웃었다.

"내가? 내가 뭐?"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냐? 정말 기억나지 않는 거냐?"

왕파파의 질문에 김혜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왕파파가 말을 이었다.

"생까는 건 변하지 않는 거냐? 어쩜 이렇게 얼굴이 두껍니? 내가 학교 다니는 내내 너 때문에 다른 여자 친구를 만날 생각을 못 했던 거 몰라?"

"전혀!"

"역시 그랬구나."

왕파파의 말에 김혜미는 과거의 기억을 되돌아보았다. 누런 사막은 평지가 되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의 기억도 사막 저 끝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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