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스 드래곤,24화-그들의 모험

by 루파고

왕파파와 김혜미가 지나가던 곳이 바람의 목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건 해가 뜰 무렵이었다. 왕파파는 오래전 사막은 지형이 계속 바뀐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때문에 바람의 목은 일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다른 어떤 곳은 파헤쳐져 수천 년 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에게 발견될 틈도 없이 또 지형이 변하면서 감춰져 버리면 그뿐이기에 지금껏 비밀이 지켜지고 있었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린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버틸 수 있는 물과 식량도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흐르던 왕파파는 김혜미와 용변 장소를 공유하는 상황까지 가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동쪽 끝에서 노란 사막을 새빨갛게 달구며 올라오는 태양은 지금까지 봤던 어떤 태양보다 빨갛고 동그랗게 보였다. 사막 위에 꿋꿋이 서 있던 선인장과 바위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긴 그림자를 좁히고 있었다. 마치 미리 촬영한 동영상을 빠르게 재생하는 것처럼 보였다. 끄트머리만 보였던 태양이 완전체의 모습을 갖추어 가면서 대기가 이글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건조한 사막이라지만 약간의 습기는 있었던 듯했다. 태양이 만든 온기는 차갑던 사막 위를 빠른 속도로 잠식했다. 왕파파는 자기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었다. 이렇게 어설프고 힘도 없는 데다 판단력도 흐린 자신이 김혜미를 지켜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아빠 푸라고를 찾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뜻에 동참하기로 한 김혜미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위험에 빠질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잠시였지만 죽음 앞에서 많은 생각을 했던 그들의 내면은 한층 성장해 있었다.

왕파파는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위치를 확인했다. 미리 오프라인용 구글 지도를 받아두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대책을 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도에 표시된 도로에서 불과 오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모래사막을 헤치며 달린 게 기껏 한 시간도 안 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달려온 것이다. 길도 아닌 곳을 뭣도 모르고 무작정 달렸다고 생각하니 무모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하지?"

김혜미가 한숨 섞인 투로 말했다.

"뭘 어떻게 해. 걸어야지. 도로 위에 가면 차라도 한 대 지나가지 않겠어?"

"그러다 또 모래폭풍이 불면 어쩌려고?"

"그렇다고 여기서 무작정 버티고 있을 수는 없잖아. 오 킬로미터라고 해 봤자 얼마 안 돼. 저기쯤 될 것 같아."

왕파파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그저 먼 곳의 낮은 산과 붉은빛을 띤 노란 사막뿐이었다. 도로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달려온 길이라는 것도 사실 포장도로는 아니었다. 포장도로까지 가려면 지도에만 표기된 사막 위 길에서도 수십 킬로미터는 가야 한다.

"저기 뭐? 무모해!"

김혜미가 딱 잘라 말했다. 왕파파는 반박한 여지가 없었다.

"넌 마법사의 아들이 돼가지고 아는 마법도 하나 없냐?"

왕파파는 말도 안 되는 농담인 걸 알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요즘 들어 점점 정체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는데 마법사의 아들이라는 말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반은 파파와 푸라고의 왕국의 자손이며 반은 인간인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선을 긋기 어려웠다.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하면서 자신의 뿌리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왕국의 정체는 무엇인지, 어쩌면 인간의 기록 어딘가에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엄마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알고 있었다면 왜 죽음 앞에 이르러서도 아무런 진실도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빠는 마법을 깨우쳤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영상에서 봤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크립티드의 불에 맞서 전혀 힘들지 않게 대응하던 모습도 그렇고 한계는 있어 보였지만 하늘로 날아오르던 크립티드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손에서는 이상한 반탄력을 보이는 것을 쏘아내는 듯했고 불과 물 그리고 묘한 빛을 운영하는 이상한 마법을 구사했다. 일기에는 전혀 기록된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왕파파는 영상에 기록된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아빠와 크립티드는 함께 하늘로 날아올라 점이 되어 사라졌다. 과연 크립티드를 설득했을까? 성공하지 못했다면 다시 땅으로 내려왔어야만 한다. 성공했다면 분명히 남극 어딘가 용들을 숨겨둔 곳에 갔을 것이다. 마음만큼은 당장이라도 남극에 가서 아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게. 내가 정말 아빠의 아들이 맞긴 할까? 요즘 그것도 좀 의심스러웠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인간이 아닐 것 같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는 것 같아. 너무 평범하잖아."

왕파파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도 느리게 사그라졌다.

"평범한 게 어때서? 그리고 내가 보기엔 넌 그다지 평범하지도 않아 보여. 머리도 좋고 나한텐 좀 부족하지만 잘 생긴 편이야. 충분히 아저씨 아들 같고, 아줌마의 보석 같아. 가장 중요한 건, 어쨌거나 내 눈엔 니가 제일 특별해 보여. 세상 누구보다."

김혜미는 방긋 웃어 보였다. 왕파파 역시 그늘져 가던 기분이 다시 맑아지는 듯했다.

"고마워. 역시 우리 개미가 사람 보는 눈이 있네."

왕파파는 크게 웃어버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잠식해오던 나쁜 기분을 몰아내고 싶었다.

"가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모하다던 김혜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왕파파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해? 이제부터 우리 모험이 시작된 거야. 아저씨 찾으러 가야지. 빨리 가서 아저씨 일기를 읽고 싶어. 너무 궁금해 죽을 것 같아."

"뭐야? 반대할 땐 언제고."

"그땐 그 때지. 지금은 궁금해서 못 참겠어.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 또 밤이 오면 곤란해. 빨리 가자!"


왕파파는 김혜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저 넓은 사막 어딘가 알려지지 않은 크립티드들이 묻혀있을 거라고 상상하니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호기심이 부풀었다. 여행용 캐리어에서 꼭 필요한 것들과 물통 두 개, 과자봉지 몇 개를 꺼내 백팩에 구겨 넣었다. 왕파파와 김혜미는 마주 보고 깊은숨을 몰아 쉰 후 아까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방향을 향해 걸었다. 사막 뒤쪽 멀리 바위산이 어서 오라며 손짓을 하는 듯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파파스 드래곤,23화-탈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