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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Mar 08. 2020

17. 뭐? 자전거 타고 속초에 껌 사러 간다고?

로드바이크로 용문역에서 속초까지

정말 성격 때문에 못 산다, 못 살아.

하고 싶은 건 해 봐야 직성이 풀리고, 그걸 못 하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를 않아서 스트레스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건 2019년 가을 무렵부터 생각하던 것이었는데 며칠 전 문득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고 그걸 빌미 삼아 생각을 정리할 요량으로 작정하게 됐다.

거기다 소설 <로드바이크> 출판이 코 앞인 상황에 편집장님은 내가 제일 못하는 걸 해서 보내라는......

이상하게도 새로운 소설을 출판할 때마다 써야 하는 그놈의 <작가의 말>은 그렇게 쓰기 힘들다.

이번 여행 후에 써서 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 후기를 쓰는 지금도 아직 쓰지 못했다.

소설 <로드바이크>는 자전거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소설로 3월 중 출판된다.


혹시라도 같이 갈 사람이 있을까 싶어 가깝게 지내는 라이더 몇 명에게 제의했지만 역시 함께 갈 사람은 없었다.

대체로 이런 장거리는 혼자 다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 혼자 간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최근에 펑크가 잦아 이번 라이딩 때 자가 수리를 할 준비를 철저히 해야만 했다.

그래서 핸드펌프와 예비 튜브 그리고 펑크패치 등을 미리 준비했다.

추가로 포도당 캔디를 왕창 구입했다.

지난번 봉크 사태를 경험한 탓이다.



게다가 바로 전 주에는 춘천까지 왕복하던 중 대성리 근처에서 체인이 끊어지는 바람에 나머지 구간을 경춘선 열차를 타고 점프하는 상황에 초래했기 때문에 장비 트러블 문제가 은근히 신경 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체인링크를 세 개나 구입해서 여분으로 하나 더 챙겨 가기로 했다.



등산할 때 쓰던 멀티툴도 가져가려고 무게를 재보니 너무 무거워 자전거 전용툴만 가져가기로 했다.

불필요한 툴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3월 7일 토요일 5시.

체중을 줄이기 위해 화장실에서 갖은 힘을 다 썼지만 평소보다 시원하지 않았다.

밤새 속초까지 자전거를 타는 것을 두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꿈에 어찌나 코를 파대는지 피도 나고 더러워서 죽는 줄 알았으니까 말이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용문역으로 가는 길,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꽤 쌀쌀했다.

얇은 반팔 져지에 팔토시만 하고 바람막이 한 장만 걸치고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

해가 뜨면 차라리 더운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새로 구입한 공구통 안에 잡다한 것들을 모두 넣었다.

혹시나 싶어 호박엿도 몇 개 챙겼는데 전철에서 하나 까먹은 것을 빼곤 그대로 가져왔다.



해가 뜨기 전 어스름한 양수역 다리를 건너며 촬영한 영상이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산 너머로 해가 뜨기 시작했다.

정거장에 멈출 때마다 문으로 침입하는 한기도 잠시 후면 녹록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었다.



거의 첫차나 마찬가지라 그런지 용문역에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했다.

처음 와보는 용문역이 낯설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니 며칠 전 양평신내서울해장국에 밥 먹으러 갔다가 탐사차 둘러보았던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이없게도 반가움을 느끼고 있었다.



삼십여 분 정도 달리자 손발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봄이라 하기엔 아직 무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에나 입을 정도로 옷을 입고 나왔으니 그 정도 고통은 감수해야 할 판이었다.

공도를 달리다 촬영한 사진이라 포커스가 없지만 산 위로 떠오른 태양이 추위를 날려버릴 것이다.



한 시간 넘게 달렸을까?

손이 시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사진을 촬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긴 업힐 끝에 만난 홍천군 이정표를 만나자 페달을 멈추고 섰다.

이제 강원도에 진입한 것이다.

8시 39분이다.

7시 20분경에 출발했으니 약 한 시간 이십 분 정도 달린 것이다.

제법 빨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점프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한참을 달리자 홍천화로구이 식당들이 늘어선 곳에 도착했다.

너무 손이 시려서 달릴 수 없었기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클릿슈즈에 커버도 하지 않아 발 역시 꽁꽁 얼어붙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슈즈커버를 씌우고 왔을 것인데 이미 늦은 후회는 의미가 없다.



속초까지는 대부분 공도를 달리는 코스라서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다행히 주말이고 이른 시간대라 도로를 달리는 차는 많지 않았다.



손에 체온이 좀 돌기 시작하자 다시 페달을 밟았다.

9시 32분.

인제, 신남 이정표가 나타났다.

어찌나 반가운지 모른다.

벌써 인제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해는 이미 한창이지만 구름이 빛을 가린 채 놓아주지 않았다.

추위는 줄곧 이어졌고 손은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통 속의 강행군이었다.



업힐과 다운힐이 계속 이어지는 공도를 달려야 했다.

혼자 달리다 보니 이런 표식이 나오지 않는 이상은 그냥 쉬지 않고 달린다.

하늘 내린 인제.

드디어 인제에 진입한 것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오겠네.



예전에 설악산을 다니며 엄청나게 다니던 길인데 자전거로 가니 너무나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동갈보대쉼터를 만나고서야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손이 너무 시려서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에 사진 한 장 남겼다.

벌써 점심때가 다 되었다.

인제 혹은 원통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달리지도 못하고 펑크가 났다.

업힐을 거의 다 올라가는데 피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휠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뒷바퀴였다.

설마 하며 걱정했던 상황이 벌어졌지만 전혀 걱정할 바가 없었다.

예비 튜브를 꺼내 교체하고 펌프로 바람을 주입하는 일련의 행위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도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차량들이 내는 소음이 매우 거슬렸다.

그들은 나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



인제로 향하는 길.

소양강을 만났다.

겨울이라 수량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

라이딩 중 멈춤 없이 촬영한 사진이라 전선도 함께 포착했다.

배가 고파서 빨리 인제까지 가야만 했다.

중간에 길 옆 휴게소들이 제법 있었고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힘겹게 페달질을 하는 나를 보기도 했다.

하필이면 맞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해서 속도가 더욱 줄기 시작했다.

솔로 라이딩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맞바람에 기나긴 업힐이 이어져 체력이 고갈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인제 시내가 나타났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인제로 가는 길에 경사도가 꽤 센 업힐 하나가 있었다.

지도에는 가넷고개길이라고 나와있던데 인제터널 옆으로 난 옛길이다.

군축령이라고도 한다.

그 길에서 처음으로 등산객으로 보이는 세 사람을 만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경사가 센 오르막길을 오르는 내가 불쌍해 보였을 것이다.



인제 시내를 지나 약한 업힐을 오르는데 거친 맞바람 때문에 나 자신과의 협상에 돌입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전방에 보이는 휴게소가 이미 나의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고민이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밥을 먹고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미 체력이 고갈되고 있었고 맞바람도 힘들고 춥기도 하고...

아무튼 온갖 비겁한 변명을 대며 나 자신을 합리화하며 원통까지 가겠다던 의지를 접어버렸다.

메뉴 선정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원 계획 같았으면 용대리에서 황태해장국을 먹는 것이고,

수정된 계획은 원통에서 황태해장국을 먹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인제에서 황태해장국을 먹게 됐다.



점심 식사를 아주 느리게 해결하고. 도로를 달리는데 GARMIN에 담아온 용문-속초 GPX 파일에서 경로 이탈 메세지를 보내왔다.

MODE를 MAP으로 변경하고 보니 다른 길을 달리는 듯했다.

장비가 보내오는 경고성 메시지를 무시하고 한참을 달리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하천변을 내려다보았는데 자전거길이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자전거길이 나타나자 반갑기 그지없었다.

인제에도 자전거길이 있구나 싶어 자전거를 들고 걸어서 내려왔다.



하지만 몇 백 미터 정도 달려서 방향이 잘못된 것을 인지했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 하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를 건넜다.



다리에는 리빙스턴교라고 쓰여 있었다.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지나쳐 버렸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52XXX2518604

카카오 백과사전에 리빙스턴교에 대한 설명이 있어 퍼왔다.



하천 옆을 따라 달리는 도로는 매우 한적했다.

새로 난 도로 때문에 동네 분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길을 달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차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사실 뒷길까지 손바닥처럼 아는 동네다.

피서철에 길이 막혀 차가 줄을 서도 나는 동네 사람들이나 다니는 샛길로 다니곤 했기 때문이다.

한때 인간네비게이션으로 불렸던 정도니......

원통삼거리 근처에서 처음으로 라이더를 만났다.

부부였던 것 같은데 모처럼 만난 라이더와 잠시라도 인사를 나누니 좋았다.

그저 이유 없는 반가움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와는 반대로 동쪽에서 넘어오는 길이었다.

시간 상으로는 서울까지 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열심히만 달리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여긴 인북천이다.

이 길을 쭉 달리면 원통삼거리에서 남교리, 용대리 쪽으로 갈라진다.

익숙한 길을 달리는 기분이라 마음은 편했지만 맞바람은 만만하지 않았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개활지에서 맞는 바람의 세기는 라이딩을 힘겹게 했다.



멀리 설악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설악에서 잔 날만 대충 세어도 반년 이상은 될 텐데 어찌나 그리웠던지 모른다.

불과 몇 달 전에도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GPX는 자꾸만 경로 이탈 경고를 보내왔다.

내가 가는 길은 농로를 자전거 전용 도로로 만든 곳이다.

GPX에는 다른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 멋진 풍광을 두고 엄한 길로 안내하다니 ^^



물 맑은 북천을 감상하며 느리게 페달을 밟았다.

빨리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지만...



남교리, 용대리 방향으로 가는 중이다.

곧 황태덕장을 만날 수 있다.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자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사진 몇 장을 남겼다.

멀리 설악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야~호~

이제 미시령까지 24km 정도 남았다.

공포의 미시령 업힐만 잘 넘으면 고생은 끝이다.

그나저나 맞바람이 문제였다.

맞바람에 업힐은 라이딩에 치명적인 조합이니까.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계곡 옆 옛길을 달려 남교리로 향했다.

십이선녀탕 계곡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런 멋진 곳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것도 무한한 영광이다.

자연을 만끽하는 이런 여유를 누가 알까 모르겠다.



용대리로 향하는 길이다.

이 길은 미시령길 막힐 때 돌아서 다니던 샛길인데 그간 많이 변했다.

별장들도 들어서 있고 연수원도 제법 건축됐다.

설악산을 사랑하던 나야말로 이런 곳에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역시 용대리다.

구소한 황태 비린내가 코를 간지럽혔다.

그렇지 않아도 점심 식사로 먹은 황탯국이 아쉬웠던 참인데......

올해 황태 농사가 시원지 않을 거라고들 하던데 그래도 여긴 한창이었다.

맞바람이 더욱 세졌는데 이 곳이 황태로 유명한 이유가 그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통보다 기온이 더 낮았는데 미시령 추위를 벌써부터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제 미시령계곡으로 진입한다.

공도 옆에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들을 피해 안전하게 달릴 수 있어 마음이 편해졌다.

용대리 황태덕장을 벗어나 잠시 공도를 탔는데 약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인공빙벽으로 유명한 매바위를 거쳐갈까 싶었지만 체력에 자신감이 떨어져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멀리 멋진 바위가 보이는데 아마도 이름은 없는 것 같다.

몇십 년을 보아온 바위인데 지금도 처음 봤던 감흥이 그대로 살아있다.



드디어 미시령터널 이정표가 나타났다.

미시령 업힐이 코 앞에 닥친 것이다.



설산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부담 아닌 부담이 들기 시작했다.

왠지 미시령 도로에 눈이 쌓여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설악산산림수련관을 지나면서 만난 <미시령 옛길 교통안내> 메시지.

<폭설결빙 전면통제>

무시하고 지나가는데 차량 몇 대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잠시 후 다시 내려오는 차량들.

미시령 입구에 들어서야 알았다.

진짜 통제된 것이다.



차량이나 오토바이는 넘어갈 수 없게 막혔지만 나는 뭐 자전거니까 훌쩍 넘어버렸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체력 안배를 하지 않고 달려온 탓에 급격히 소모된 체력과 맞바람이 문제였다.

체력이 떨어져 몸에서 열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올라가 보는 거다.

미시령 정상까지는 기껏 3.4km란다.



올라가다 보니 도로 상태가 이랬다.

지난주 내린 눈 때문에 도로가 이지경이 된 것이다.



업힐 구간을 절반 정도 올랐을까?

차량 한 대가 내려오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반대편에서도 통제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차를 비켜주고 나니 갑자기 찾아온 체력의 허기짐.

힘도 없고 그냥 쉬었다 가자는 내 안의 비겁한 놈에게 모든 걸 허락하고 말았다.

그런 생각이 들면 행동은 여지없다.

클릿에서 발을 빼는 건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잠시 경치도 감상하고 좋았는데 추위가 만만하지 않았다.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잠시 손만 녹이고 다시 업힐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다 보니 포클레인 등 공사차량들이 보였다.

낙석 등을 치우고 도로 주변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꾸역꾸역 올라오는 내가 이상해 보였던지 힐끗거리며 나를 살폈다.

그들을 무시하고 앞을 보니 익숙한 지형이 보였다.

미시령 정상이 불과 몇 백 미터 남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만난 미시령 정상.

옛 휴게소는 오래전 폐장, 철거하고 없어졌지만 전망대만은 그대로 남아있다.

어찌 된 것이 미시령 정상은 올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 같다.

이 길을 지난 것만 해도 백 번은 될 것 같은데.

하긴, 자전거로는 처음이니까 이번 느낌은 완전히 새로운 걸 거다.

오래 머무를 수도 없었다.

바람이 강해 추위를 버티기 어려웠다.

역시 미시령답다.

사진만 몇 장 촬영하고 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

클릿슈즈 아래쪽에 난 구멍으로 눈이 들어왔는지 발에서 차가운 느낌도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업힐뿐이다.

내 목적지는 대명리조트 소노문.

이미 숙소는 예약해 두었고 속초까지 한 잔 할 사람은 오라고 미리 일러두었던 터라 두 명이 그곳으로 오는 중이었다.



다운힐을 즐기고 싶었지만 상단부 도로는 빙판이었다.

사진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스팔트 부분은 얼음이고 눈도 제법 쌓인 상태였다.



날이 좋지 않아 울산암이 선명하지 않다.

한참을 달려 중반 정도 내려왔을 땐 도로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다운힐을 즐기기에 좋았는데 추위는 그저 참아내야 했다.

목적지는 불과 몇 킬로미터 남지 않았으니까.

한참을 내려오는데 업힐을 힘차게 오르는 라이더를 만나 크게 소리쳐 인사했다.

아마 내가 엄청 부러웠을 것이다.

힘든 업힐 후에 만난 다운힐이야말로 땀의 보상이다.



역시 반대편 방향도 통제되어 있었다.

내려오다 만난 라이더는 빙판길을 어떻게 올라갈지 걱정됐다.

아마도 끌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

지금쯤 빙판 구간까지 가긴 했을까?



유우후!

드디어 목적지가 코 앞이다.

이 구간이 마지막 업힐이 되는 것이다.

이제 불과 4시가 안 된 시간.

이렇게 껌 사러 간다는 속초 라이딩이 끝나간다.

결과적으로는 껌을 사 오지 않았으니 다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속초에 껌 사러 간다는 말은 그만큼 별 거 아닌 라이딩이라는 표현이다.

직접 해보니 알겠다.

겁먹을 것 없는 아주 괜찮은 코스다.

미시령 업힐은 서울 근교의 삼막사나 망해암보다 쉽다.

남산이나 북악 오를 정도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으니 쫄면 바보다.




마지막으로 용문-속초(대명리조트)구간 GPX파일 첨부.






숙소에 들어와 사진 한 장 촬영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감행.

자연 온천수라 하는데 수질보다는 온도가 중요했다.

몸에서 열이 나지 않는 상황이라 체온을 올리는 게 급했다.

반팔에 바람막이만 걸치고 나온 이런 멍청한 결정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무려 십 분 넘게 온수 샤워를 한 것 같다.

그렇게 해서도 체온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에너지원이 고갈되었다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빨리 먹을 걸 채워 넣어야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지인 두 명 중 한 명이 곧 도착했고 우리는 남은 한 명이 오던 말던 바로 속초시내로 향했다.

그리고는 당장 횟집으로 쳐들어가 모둠회를 주문하고 소주를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그렇게 힘들었음에도 술은 달디달았다.

어쩜 그런 체력 소모에도 술에 취하지 않는 것인지, 나의 체력에 나도 감탄하고 말았다.



철 지난 양미리구이(냉동)로 2차를 감행하고

숙소로 돌아와 제주맥주로 3차.

이렇게 마시고도 멀쩡히 살아왔다는 게 용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 밖을 보니 멀리 북설악의 설경이 눈에 들어왔다.

10시까지 미친 듯이 코를 골아대며 잠을 잤던 탓인지 배가 고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씻고 체크아웃하고 나오니...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좋아진 속초.

울산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던 중 인제군에는 코로나 감염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문자를 수신했다.

역시 청정 설악인가 보다.

체력이 다시 살아났는지 자전거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미친 거다.



진정한 맛집!

변함없는 맛집!

배신 않는 맛집!

55년 이상 된 맛집!

김영애할머니 순두부.

여긴 찬이 단조롭지만 임팩트가 있는 곳이다.

찬 하나하나에도 전통이 그냥 배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언제 가도 맛있는 집이니 강력 추천한다.

아!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하니 주의 바람.





돌아오는 길에 춘천에 들러 오랜 추억의 맛집에 들러 막국수를 먹었는데 후회만 하고 왔다.

물론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 집은 오늘부로 내 맛집 리스트에서 삭제됐다.


한 요리 하는 나는 집에 와서 한 마리 남은 황태포를 불린 후 들기름에 지져 황탯국을 끓였다.

역시 내가 요리한 게 훨씬 맛난다.

양념이라곤 소금과 후추만 넣어도 이리 맛난 쉬운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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