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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pr 03. 2020

18. 소망하던 화악산-도마치재 업힐 코스를 가다

경기도권 최고의 업힐이라던데...

정말 가보고 싶었던 업힐 코스, 화악산.

이번에도 무턱대고 혼자 다녀오고 말았다.

이상하게 내가 가고자 하는 코스는 대개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도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다.

사실 자전거 자체를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숨 헐떡거리며 업힐 코스를 찾아다닐 이유가 없지만 그 어떤 쉬운 코스를 간다 해도 업힐이 없는 코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업힐은 피해 갈 구간이 아니라 즐겨야 하는 구간인 것이다.

스트레스로 구겨진 마음도 쫙쫙 펴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다운힐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많은데 어쨌든 다운힐을 경험하려면 업힐을 선행해야 한다.

물론 꼭 그래야 하기에 업힐을 달리려 하는 것은 아니다.

왠지 모를 호기심이 자꾸 나를 부르기 때문이라고 하면 이상할까?

반복된 걸 제일 싫어하는 나로서는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장소에 가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이번에 화악산 업힐을 시도한 건 전혀 계획에 없었다.

작년부터 언젠가 가보리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무작정 달리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전날 밤, 역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대하는 것인가? 걱정되는 것인가?

이불을 뒤척이며 밤새 허우적대던 나는 아침 무렵이 되어서야 짧지만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후다닥 자전거 복장으로 환복 한 후 경춘선을 타고 가평역에 도착했다.

맨 뒷 칸에 함께 타고 온 세 명의 라이더 역시 화악산을 목적지로 하는 듯했다.

어쩌면 함께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준비하는 시간이 달라 출발 시간부터 맞지 않았는데 코스 내내 그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컨디션은 딱히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화악산 업힐까지 약 30km 이상 달려야 하는데 맞바람이 몰아쳐 평지 라이딩도 그다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라이딩은 항상 맞바람이었기 때문인지 적응이 된 것 같았다.

첫 번째 고개 하나를 넘어 가평의 첫 번째 멋진 모습을 담았다.

서울은 벚꽃이 만개했는데 가평엔 아직 봄이 일렀는지 겨울 냄새가 짙게 났다.



아침도 거르고 나온 나는 지난번에 고속 주행으로 유명한 팀 라이딩을 따라갔다가 봉크를 경험한 기억이 나서 다평 북면사무소 근처에서 뭐라도 먹고 올라가기로 작정했다.

칼로리가 높은 걸 선택했는데 화악산 업힐 중 에너지 부족을 느끼지 않은 걸 보면 나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화악산 터널까지는 21.7km 남은 지점이다.

아직 10km는 더 달려야 본격 업힐이 시작될 것이다.

중간중간 뷰가 괜찮은 곳이 있으면 쉬어갈까 싶었지만 마땅히 맘이 드는 곳이 없어 라이딩 중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만 하며 지나쳤다.



본격적인 업힐이 시작될 무렵 되자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기온이 올라간 것도 있지만 슬슬 땀이 날 정도로 힘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잠시 멈추고 바람막이를 벗어야 했다.

더 버티다간 더위와의 싸움으로 갈 것 같아서다.

그런데 야트막한 업힐로 나를 추월하는 라이더 한 명을 만났다.

가벼운 페달링을 보니 어지간히 잘 타는 라이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저 완주만 목표로 왔기 때문에 그와의 경쟁 따위엔 관심이 없었지만 괜한 오기가 발동했다.

그가 코너를 돌아 사라질 무렵 나는 다시 안장 위에 올랐다.



그를 따라 올라가는데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고, 대신 S자를 그리며 힘겹게 업힐을 오르는 한 명의 라이더를 제치고 몇 백 미터를 더 지나 또 한 명의 라이더를 제쳤다.

그러고도 앞서 가던 라이더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걸 보면 극강의 곳 임에 틀림이 없다.

업힐은 12~14%의 경사도가 꾸준히 이어졌다.

허벅지가 터질 것만 같은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밟는 힘과 당기는 힘을 적절히 배분하여 근육을 사용해야 하고 끈기와 오기를 놓지 않아야 한다.

약 10km의 긴 구간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화악터널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드디어 정상이 머지않은 것이다.



져지 주머니에서 카메라 렌즈에 습기가 차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저곳이 화악터널이다.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로 촬영한 거니 어쩔 수 없다.



터널 입구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경계석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뒤따라 오던 라이더 한 분이 힘차게 페달을 돌리며 다가왔다.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는데 그는 나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

아차 싶었다.

화악산의 명물인 반달곰 조형물이 있는 곳이 업힐의 끝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 것이다.

나는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그를 따라갔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니 공원 하나가 나왔고 반달곰의 위치를 찾아갔으나 약수터에는 사진으로 봤던 조형물 대신 캐릭터 곰이 대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쨌든 이게 화악산 업힐의 증표 같은 것이니 사진 한 장을 찍어 두었다.

나를 지나쳐 갔던 라이더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난 뒤 잠시 고민에 빠졌다.

누군가의 블로그를 보니 화악산 업힐 후에 화천 사창리로 가서 도마치재를 거쳐 가평 북면으로 가는 코스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악산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 바로는 최악의 업힐이라 했었고 23%를 넘나드는 경사도의 도선 사급 정도 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과는 달리 겨우 14% 정도의 그저 긴 업힐이라는 것 외엔 대단히 어렵지는 않았다.

힘도 아직 여유 있고 시간도 남아돌았다.

나는 즉석에서 도마치재로 예정을 바꾸었다.

블로그 내용으로 보니 도마치재는 화악산 업힐보가 쉽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해서 가평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다 건너뛰고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던 하기로 하고 다시 안장에 엉덩이를 걸쳤다.



정말 긴 다운힐이 이어졌다.

한라산 1100고지 정도 될까?

이어 상태도 좋지 않고 최근 잦은 펑크 때문에 불안하여 속도를 많이 내지 못했다.

잠시의 희열 때문에 하나뿐인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반대 방향에서 업힐을 오르는 몇 명의 라이더를 마주쳤다.

다운힐 코너 중 경치가 좋은 곳에서 잠시 쉬며 주변을 촬영하는데 업힐 도중 촬영을 준비하는 라이더들이 보였다.

난 팀 라이딩을 가도 대체로 내가 촬영을 하기 때문에 내 라이딩 사진은 거의 없다.

다음에는 내가 나온 사진을 좀 부탁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다운힐을 시작했다.

경사도가 살짝 줄어들자 불안함은 조금 잦아들었고 조금은 다운힐을 즐겨보기로 했다.



다운힐이 끝나고 화천 사창리의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난 7사단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사창리는 어색한 곳이었다.

익숙지 않은 길을 달리다 본 27사단 이기자부대 신병훈련소를 보니 7사단 신병훈련소가 기억났다.

추억의 그곳.



기억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달리다 보니 삼거리가 나왔다.

조금만 가면 도마치재 업힐이 시작된다.

좌측으로 가면 가평 북면, 직진하면 포천과 철원 쪽이다.



쉬지 않고 달린 거리는 약 10km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아무리 화악산보다 쉽다고는 하나 체력을 보충하고 업힐을 시도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찮다 싶은 곳에 자리를 잡고 바닥에 철퍼덕 앉아버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멀리 라이더 한 명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페달링이 꽤 무거워 보였는데 가까이 보니 여성 라이더였다.

서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휴식을 취하고 달리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본격 업힐이 시작될 즈음 오토바이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두 대가 번갈아가며 다운힐과 업힐 코너링을 즐기고 있었다.

특히 오토바이 한 대가 수시로 나를 지나치는데 살짝 화가 치밀기도 했다.



역꾸역 업힐을 오르며 경사가 제법 센 오르막 코너를 촬영했다.

화악산이 12~14%의 긴 업힐이라면 도마치재는 10~12%의 긴 업힐이 이어졌다.

딱히 힘들다기보다는 그냥 그냥 페달을 밟고 가다 보면 끝나는 업힐이었다.

역시 업힐은 성격 급한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드디어 도마치재 정상이다.

역시 가다 보면 끝나는 게 바로 업힐이다.

도마치재는 해발 690m라 한다.

올라가다 보면 해발 500m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데 참고하면 업힐 중 마음의 안정이 될 것 같긴 하다.



자전거를 경계석에 거치시키고 물을 마시는데 찬바람이 불어왔다.

처음엔 시원한 듯하다가 조금씩 쌀쌀함이 느껴졌다.

더 머물다간 체온을 뺏길 듯하여 십 분 정도 머물고 다시 다운힐을 시작했다.

이제 가평역까지는 역 45km 정도 남았다.

설렁설렁 가도 두 시간 정도면 된다.

아쉽게도 업힐은 이렇게 끝나버렸다.

모르긴 해도 이번엔 더 긴 다운힐을 예상할 수 있었다.

굳이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되는 구간이 30% 정도는 될 것이다.



다운힐 중 사진 몇 컷을 촬영.

역시 다운힐 라이딩하면서 사진을 찍는 건 위험하다.



긴 다운힐 끝자락 즘 되자 가평 북면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계곡이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졌다.

지금은 차량 소통이 많지 않지만 여름이 되면 자전거를 타기에는 불안할 정도로 차가 많은 것이다.

또 맞바람.

하여튼 이놈의 바람은 항상 맞바람일까 싶지만...



다시 북면사무소가 있는 동네다.

딱히 배가 고프거나 한 건 아닌데 이상한 오기가 발동했다.

라면 한 그릇 먹어보고 내키면 서울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생각이었던 거다.

날은 아직 한창이고 체력도 남아돈다.

하지만 인간은 배가 부르면 딴생각을 하는 존재인 게 분명했다.

라면 한 그릇 먹고 나니 내일 라이딩을 위해 체력을 아끼는 것으로 나 자심과 담판을 낸 것이다.

다음날은 가평 5고개를 달릴 생각을 한 것이다.

쩜 라이딩 계획을 이렇게 즉흥적으로 꾸미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다.



가평역에 도착하여 GARMIN을 종료하여 스트라바를 보니 다운힐 구간에 그렇게 불안해하면서도 60km/h까지 속도를 냈다.

더 빨리 달릴 수야 있었겠지만 아무튼 조해야 한다.

특히 혼자 라이딩하는 상황에선 더욱.

베록 거리는 85km 정도의 짧은 구간이었지만 나름 센 편에 속하는 화악산 업힐과 도마치재 업힐에서 재미난 경험을 쌓았다.

다음에 다시 오겠지만 또 혼자 오게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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