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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Feb 13. 2019

5. 제주도 자전거 한바퀴 하루에 끝내기 2/4 지점

첫 번째 일주, MTB로 하루 만에 끝내기 (시계 방향)

뭘 먹었는지 기억해 내는 데 한참 걸렸다.

불과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회국수>다.

오래전부터 가봐야지 했던 용두동의 관광객 맛집인데 역시 블로그빨에 또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배가 고팠음에도 불구하고 남겼으니 할 말 없다.

다행히도 스마트폰은 배 부르게 전기를 쪽쪽 빨아먹었다.

어이구~ 기특한 녀석!

쓰레기통 옆에 대충 널브러뜨렸던 MTB를 보니 녀석도 꽤 지쳐 보였다.

아침에 집에서 간이 펌프로 공기를 넣긴 했는데 많이 빠져버렸다.

혹시 실 펑크?

설마 그건 아니겠지.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해선 아니 된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에 타이어 옆구리를 눌렀다.

허걱~

내 똥배보다 더 물컹하다.

큰일이다.

자전거의 생명-타이어의 상태가 심각하다.

어쩐지 애월을 지나올 즈음되자 타이어 접지 소리가 이상하다 싶었다.

그땐 힘이라도 남아 돌 때라 크게 문제 삼지 않았었던 것이다.

시간은 불과 8시 40분.

물통을 채우고 다시 출발.

제주항 쪽으로 이동한다.

여긴 제주시 뒷길이라 차량 소통이 적다.

문제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입동의 사라봉 언덕이다.

꽤 가파른 경사인데. ㅋㅋ

업힐은 항상 두려움이 나를 앞서 페달링 한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가야지~

끄엉차!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역시 자전거는 밥심이다.

페달이 잘 굴러간다.

지그덕! 지그덕!

나도 사이보그 여행님처럼 쉭쉭쉭쉭 소리 나는 페달링을 하고 싶다.





비행기 한 대가 랜딩 한다.

저 비행기에도 나처럼 자전거 타겠다고 오는 사람이 있겠지?  





용두동 바닷가 자전거길이다.

새벽에 오면 조깅하는 외국인(중국인)도 제법 많은 곳이다.

바다에는 오징어, 한치잡이 어선들로 장관이다.

스마트폰 지도를 열고 자전거 수리가 가능한 곳을 검색했다.

토요일 아침 9시도 안 된 시간에 오픈한 곳이 있을 리 없다.

시간을 지체할 순 없다.

그냥 가는 데까지 가보자.

해안도로로 다시 붙었다.

삼양 검은모래해변을 들렀다 갈까 했지만 근처에서 일주도로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혹시 모르니 자전거 매장을 들렀다 가기 위해서다.

또 업힐이다. 젠장.

부끄럽지만 끌바 조금 ㅋㅋ

건입동을 거쳐 화북동, 삼양동을 지나면서 자전거 매장 두 곳을 지나쳤다.

모두 문을 열지 않았다.

힘도 빠지기 시작했다.

타이어 탓을 하며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용두암에서보다 더 힘들다.

바퀴가 굴러갈 생각을 않는다.

이젠 카센터, 오토바이 수리점, 인테리어 숍을 찾아다녔다.

모두 문을 열지 않았다.

조천에 들어서자 이제는 경찰 지구대, 구조대까지 ㅋㅋ

심지어는 공사현장에 콤프레셔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도 기웃거렸다. 





역시 사람의 머리는 비상하다.

조천읍 신흥리 바닷가의 건축가 지인이 생각난 거다.

거기 가면 컴프레서가 있을 거니까.

아뿔싸.

기껏 어렵게 도착한 그곳엔 부부 내외가 자리에 없었다.

3층 건물을 통째로 쓰는 그들은 요란하게 음악을 틀고 제주시에 간 거다.

돌아오는 길이라지만 기다릴 순 없기에 다시 페달링.

함덕에 가면 그래도 뭔가 있겠지.

맞바람.

그래 까먹을 뻔했다.

아침부터 맞바람이었다.

처음엔 힘이 있어 맞바람도 이겨냈지만 이제는 바람 빠진 자전거에 맞바람이라 두 배는 더 힘이 들었다.     





드디어 함덕에 도착했다.

정신이 없다.

물도 다 떨어졌고 해서 식수 보충 겸 함덕해수욕장 앞 편의점에 들렀다.

아저씨가 이상하게 쳐다본다.

이상하기도 하겠지.

맛이 가기 일보 직전인데.

더위 먹고 힘 빠지고. 





ㅎㅎ

윤서 님께 협찬받은 DOSSA 모자가 돋보인다.

변색 고글은 변태 같네. 





역시 함덕은 구+신

그래도 도시계획을 두고 개발한 거라 이 정도다.

월정리에 비하면 그야말로 정리 정돈된 곳이지.

오래전 누군가 도시사업계획서를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던 것이 기억났다.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 같다.

설마 그게 되겠냐는 생각이었다.

물론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정말 멋진 계획이네요."

ㅋㅋ

그런데 정말 그의 말대로 되어 있다.

함덕은......   










동복리다.

이젠 완전히 지쳤다.

자전거 매장은 포기한 지 오래다.

함덕에도 한 군데 있었는데 거기도 문을 열지 않았다.

경찰 지구대 역시 마찬가지.



여행님 왈

오늘예상....섭지코지 일듯...^^



당시 내 체력 상 그럴 지도 몰르는 상황이었다.

자전거 바퀴를 해결하지 못하게 된다면 말이다.

어딘가 있을 거다.

그까짓 맞바람?

버티는 거지 뭐.  





김녕 요트계류장이 보인다.

거길 지나서 본격 김녕리로 접어든다.

김녕은 제주에서도 오래전부터 인구가 가장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해녀도 유명하지만. 





김녕 성세기 해변

봄까지만 해도 검은색 포장으로 해변을 덮어 두었었는데 해수욕장을 개장하며 모두 치웠다.

드디어 멋진 해변이 드러났다.

얕은 수심이라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은 곳이다.

하긴 근처에 이런 데 정말 많지.

그런데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자전거 여행 도장 찍은 부스가 보인 것이다.

어쭈구리.

역시 컨택트렌즈를 착용하길 잘했지 싶었다.

부스 뒤에 검은색 펌프가 유리에 가렸지만 내 눈에, 내 눈에 보인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신날 수가.

드디어 제대로 달릴 수 있겠구나.

자전거를 대충 거치하고 펌프 꼬다리를 끼우고 펌핑을 하는데......

하는데......

공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 입에서 욕이 나온다.

젠장! XX! OO!

힘이 쪼옥 빠져 망연자실해 있을 무렵.

네 명을 라이더가 다가왔다.

"와. 여깄어. 도장 찍자!"

20대 중후반 남녀(노소? 잘 놀고 있으니까.)

그런 거 잘 못 하는 편이지만 일단 살아야겠기에 물었다.

역시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타이어에 바람을 과하게 주입했다.

아주 배 터져 죽으라고 배 불러 죽으라고 넣어 주었다.

남녀 역시 나처럼 시계방향으로 돈다고 했다.

제주시에서 출발했다는......

그렇다면 나하고는 속도가?

다른 생각을 한 건 아니다.

그저 진심으로 이따가 다시 만나면 밥을 사 주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종료 시점까지 그들을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정말 전하고 싶다. 나의 마음을.

진정이었노라고. 감격했었노라고. 감사했노라고. 





이젠 자전거 쫙쫙 나간다.

구좌읍이 생각보다 넓다.

맞바람은 거세지만 가끔씩 시원한 바람도 불어온다.

성산에 가면 맛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힘을 내자.

자전거 역시 두 다리가 쌩쌩해져 말도 잘 듣는다.

드디어 쉭쉭쉭쉭 하며 나간다.

진작 꽉 채워 나왔어야 했는데.

아무튼 잘 나간다.

맞바람에 거침없다.   





월정리다.

으악! 사람 많다.

여기서 소비되는 커피만 해도 엄청나겠다.

왜 우리 회산 이런 데 매장을 낼 생각은 못 했을까 싶다.

젠장.

진작 했으면 부동산 수익이라도 봤지. 





행원리 마을을 지나쳤다.

이 쪽도 해변이 예쁘다.

에메랄드빛 제주바다가 여심을 녹일 만도 하다.

저 바다를 퍼다 목걸이를 걸어 준다면 좋아라 하겠지? 





이젠 구좌읍 한동리 





구좌읍 평대리

평대리 해변도 나쁘지 않다.

자그마한 해변이 가족 휴양지로 좋다.  





세화리다.

오일장 시장이 있는 곳이다.

구좌도 거의 끝나 간다.  

세화 해변을 지나치다 몇 컷 더 찍었다. 





구좌읍 한동리.

저게 뭐라고 했었는데 성곽이겠지 뭐. 





구좌읍 마지막 하도리다.

가운데 보이는 섬은 토끼섬이다.

섬이라고 하긴 매우 작다.

사람이 사는 곳도 아니고.

왜 토끼섬일까? 





하도 해수욕장 입구.

우도봉과 성산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는 이름이 좀 거시기 한.

<지미봉>이다.

지미~

이런 뜻은 절대 아닐 거다.   





드디어 성산이다.

이 다리만 건너면 성산읍 종달리에 접어든다.  




여긴 종달리  





성산이 조금씩 다가온다.

성산 시흥리다.

조금만 더 가면 오조리.

아싸!

점심을 맛나게 먹어야지.

그런데 엄청 지친다.

다리도 힘이 쪽쪽 빠진다.

목도 마르고 빨리 성산 가서 시원한 걸 먹고 싶다.

평소에는 그렇게 먹고 싶은 게 없는 나인데, 이상하게 시원한 콩국수 생각이 간절했다.

얼음이 무더기로 담긴 콩국수.

진득함이 입 안 가득하게 마실 수 있는 콩국물.

곧 성산이 성산이 아닌 콩국수로 생각됐다.

그 외엔 나에게 어떤 의미도 없었다.

성산이 점점 다가왔다. 





여긴 물 빠지면 갯벌이다.

그건 3/4 지점 후기에 올라갈 거다.

성산을 빠져나가다 보니 조개를 캐는 사람들이 보였다.




드디어 성산입니다.

맞바람에

땡볕에

자전거는 바람 없고(김녕에서 넣었어요. 빌려서)

궁디는 아프고

쉬면서 가야 하는데 귀찮아서 안 쉬었더니 힘 빠지고.

한치물회 먹고 힘내야겠어요.

오자마자 맥주 한 병 ㅋㅋ




동호회 챗방에 이렇게 올렸다.

원래는 콩국수를 먹고 싶었지만 그거 찾으러 다닐 여력이 없었다.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 상황이었다.

체력 방전, 스마트폰도 거의 방전, 궁둥이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목도 마르고.

빵빵하게 채워진 건 자전거 바람.

나는 완전 더위를 먹었다. 





온도는 29도였지만 땡볕에 아주 죽는 줄 알았다.





한치물회 집.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배고파서라기 보다는 정말로 맛나게.

오래간만에 맛집 찾은 것.

내 자전거를 보고 다른 라이더들이 들어오더라.

추천해도 욕먹지 않을.

그래서 소개해 본다. 

 난 이 식당 들어가기 직전의 상태가 기억난다.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더위 먹어서 아마 쓰러졌을 거다.

염도 높은 음식도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여기까지 알코올 기운으로 왔을지 모른다.

맥주만 네 캔은 마셨으니까.

편의점만 들르면 맥주. ㅋㅋ

아. 중간에 세화리 해양경찰지구대에 들러 물 한 번 충전했다.

나 같은 사람이 제법 많다고 한다.

화장실 쓰자는 사람도 많고.

고맙고 미안했다. ㅋ

아마 이 한치물회가 없었다면 점심 먹고도 힘을 내지 못했을 것 같다.

스테미너 부족할 때 오징어 같은 데 많은 성분이 있지.

다들 알겠지만 박카스에 들었다는 타우린이라는 성분이 오징어과에 많다.

피로 해소에 그렇게 좋은 음식이다.

아무튼 한치가 날 살렸다.

서쪽 끝에서 시작한 나의 제주도 자전거 하루 만에 일주하기

2/4 지점이 마무리됐다.

1/4 지점과 마찬가지로 후기도 박 터지게 힘들다.

나머지 3/4 지점과 4/4 지점 후기를 쓰다가 탈진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기똥차네식당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등용로 13-1 기똥차네식당   


상기 식당은 블로그를 끄적거리고 있는 나라는 인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명시합니다.

만약 어떠한 연고가 있다면 자전거 바퀴를 떼어다 버리겠습니다.


너무 험악한가?


멀리 랜딩중인 비행기가 보인다.

여기가 아침밥 먹을 곳이다.

어휴 240km 중에 25%

그러니까 1/4 지점에 온 거다.

60km 정도 달린 거다.

아직 힘은 넉넉하다.

그저 배가 고플 뿐이다.

목이 마를 뿐이다.

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아뿔싸. 에너지는 나만 부족한 게 아니구나.

이럴 줄 알고 충전기도 챙겨 왔지.

식당에 나의 노트8을 충전시켜 두었다.

스트라바 덕분에 배터리 소모가 장난 아니다.

가민520을 진작에 샀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텐데.

어쟀든 오늘 이 포스팅을 쓰는데 택배로 받았다.

아직 포장도 뜯지 못하는......

사무실에서 일은 안 하고 뭣 하는 짓인지.

제주도 자전거 일주 하루에 끝내기도 어렵지만

후기를 하루에 끝내기도 어렵다.

아니! 자전거 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이제 점심밥 묵고 해야지.

뭐. 거의 패턴이 비슷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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