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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Feb 13. 2019

6. 제주도 자전거 한바퀴 하루에 끝내기 3/4 지점

첫 번째 일주, MTB로 하루 만에 끝내기 (시계 방향)

점심 먹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디 시원한 그늘 아래서 한 시간만 자다 가면 딱 좋겠다고.

가다 보면 나오겠지 싶어 식당 밖으로 나왔다.

태양이 뜨겁다.

고산에서 성산까지 121km 달렸다.

240km 구간 중 딱 절반 온 거다.

1/2 지점, 2/4 지점이다.

자전거 안장 따끈따끈하다.

방금 먹은 한치물회 덕분에 기운이 살아났다.

혼자 자전거를 타니까 문제점이 하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도저히 쉴 생각을 않는다는 거다.

쉰다 해도 너무 짧게 쉬니까 체력이 회복될 시간이 없다.

성격 탓일까?

마냥 쉬는 게 마음이 불편하다.

갈 길이 머니까 쉬면 늦을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인 거다.

제주도 지리야 손바닥처럼 알고 있으니 길을 못 찾거나 하는 어려움은 전혀 없었지만

내 체력에 신뢰할 수 없음이 문제였다.

탈진 직전이었던 나는 수분과 염분을 채웠다.

부릉부릉~

서울도 등짝이 녹을 것 같은 더위라고 했다.

제주도는 거기다 습한 공기가 더해졌다.

그래도 희망이 한 가지 있다.

지금까지 맞바람(동->서)을 맞고 왔다.

이제부터는 등에서 바람이 밀어줄 테니 여유 있게 가면 된다.

마음은 벌써 룰루랄라 신이 났다.

여러 가지 악재 중 한 가지 떨군 상황이니까.

그런데 궁둥이가 너무 아프다.

쓰라리기까지 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걸 예상치 못했다.

내 자전거는 풀카본 안장이라 패드가 없는 옷을 입으면 도저히 불가하지만

어머니 자전거는 폭신한 안장이라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얼마 전에는 같은 반바지를 입고 청평까지 다녀왔었으니까. (간신히 갔지만. 궁둥이 아파서)

맞바람!

이 미친바람이 왜 또 맞바람이란 말인가?

설마 했다.

방향이 바뀌었지만 완전히 180도 돌아 선 게 아니니까 조금만 더 가면 될 거야.

골목을 돌아 나오니 마을 이장님의 방송이 나온다.

대사를 정확하게 옮길 순 없지만 대략 이랬다.



아아~ 이장입니다.(빼고)

오늘 폭염주의보가 있습니다.

야외에서 일을 보시는 분들은 가급적 햇빛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최대한 물을 자주 드시고 무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하다가 쓰러지는 분들이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바로 그 쓰러지는 사람 중 한 명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 17일 자 기사>

http://www.je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29015 

제주 폭염특보 엿새째 지속 - 제민일보

올 들어 제주에 첫 폭염경보가 내려지는 등 연일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16일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1일부터 제주도 북부와 서부지역에 내...



7월 14일에 자전거 일주를 한 거니까 그 엿새째 안에 있던 날이다.

내가 죽으려고 악을 쓴 것 같다. 





성산을 벗어나며 갯벌이 보인다.

밥 먹기 전보다 물이 빠진 걸까? 





해안도로를 달려가니 섭지코지를 지나쳤다.

저 넓은 땅에 중국인이 개판을 쳐 놨으니 애초에 허가를 내준 누군가를 욕하고 싶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사진이다.

여긴 온평리다.

섭지코지가 멀어져 간다.  





신산리 바다는 모래사장이 귀하다.

죄다 돌밭이다.

먹을 건 많겠다. ㅋㅋ 

에너지 보충은 캔맥주로 한다.

맥주 아니었음 제주도 자전거 하루 종주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

곧 표선이다.

137km 달렸다.

바람은 아직까지 맞바람이다.

바람 방향이 바뀐 거다.

젠장.

왜 사람들이 반시계 방향으로만 도는지 알겠다. ㅋㅋ

출발 때 잘못 선택한 게 죄다. 





신풍리를 지난다.

거꾸로 마주치는 라이더는 달랑 세 명 봤다.

너무 더우니까 자전거 타는 사람이 없다.

이 땡볕에 미친 짓이긴 하다. 





멀리 표선이 보인다.

성산에서 표선은 그리 멀지 않으니까.

해비치 리조트와 호텔이 보인다.

표선해수욕장도 살짝 드러나고...... 





조금 더 가니 드디어 꿈에도 그리는 쉴 곳을 찾았다.

표선해수욕장 가까운 곳인데 커다란 정자가 있는 거다.

깨끗해서 맘도 편해졌다.

주변엔 행락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너저분하다.

국민의식이 개만도 못하다.

그걸 싸 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버린 만큼 비닐이 지들 주둥이로 들어갈 거다.

일단 벗어도 되는 건 다 벗었다.

맘 같아서는 팬티도 벗고 싶었지만 그건 참아냈다.

헬멧, 모자, 고글, 장갑, 신발, 양말, 쿨토시, 블루투스 헤드폰

몸에 걸리적거리는 건 다 풀고 지퍼도 좀 내렸다.

어구구구구 시원한 거.

반바지라 지퍼가 없다. 착각 마시라.

나무정자 그늘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하니 시원한 바닷바람에 꿈 나들이 다녀왔다.

탈진한 상태에서 이렇게 혼자 자다가 한 순간에 훅 간 사람이 제법 많은데 겁도 없다.

3시 50분 정도 됐을까?

한 30여 분 정도 잔 것 같다.

개운하다.

몸이 아주 가뿐해졌다.

벗어 두었던 것들을 다시 몸에 걸쳤다.

참 귀찮은 것들이다.

이런 것 없이 자전거를 탈 수만 있다면 더 좋을 텐데.


페달링이 벅차다.

궁둥이가 쓰라려 짜증이 났지만 참고 타다 보니 그 고통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여긴 표선해수욕장 메인이 아니다.

난 이런 곳이 더 좋다.

한적하고 말이다.

멀리 사람들 해수욕하며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수욕의 계절이 오긴 왔구나. 





한참을 달려 남원읍에 닿았다.

여긴 신흥리다.

점점 사진 찍는 게 귀찮아졌다.

멈추는 것도 일이다.

져지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버튼을 누르는 일련의 작업들이 번거로운 거다.

그만큼 맘도 급하고 힘이 들었던 것이 분명하다.

맘이 너무 급했다.

빨리 가야 하는데...... 





남원읍 태흥리다.

남원은 바다가 별로다.

다들 그저 그렇다.

위성 지도를 보면 남원은 비닐하우스만 보인다.

궁금할 것이므로 캡처해서 올려 둔다. 





보시라. ㅋㅋ

하우스감귤밭이 이런 수준이다.

하여튼 남원은 주거지로 불합격!   






남원리 도착.

또 어질어질하다.

물이 고프다.

커피는 물통에 얼음과 함께 채웠다.

물통에 채운 얼음은 10분을 채 넘기지 못한다. 





163km 달려왔다.

서울에서 여행님이 박수로 응원해 주셨다. 





그저 달리기만 했지 주변을 살필 틈이 없었던가 보다.

버스정류장 옆 그늘에 잠시 쉬는데 귤밭이 띄었다.

잘 보니 청귤이 자라고 있었다.

좀 더 컸으면 몇 개 따 먹겠다만 지금 먹으면 너무 시어서 죽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주인한테 걸려 맞아 죽던가.

거의 다 왔는데 죽을 순 없다.

어려웠지만 참았다.

이 무더위에 새콤한 맛이면 더위 정도는 가뿐하게 날려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환님이 밴드에 "빙수랑 빵이랑 어울릴까?" 하는 글을 올렸다.

어흑!

빙수 당긴다.

서귀포시 가서 먹고 말리라.

3/4 지점에 가서 빙수를 먹어야겠다는 강렬한 집념이 생겼다.

나에겐 한라봉빙수가 있다.

그들에게 염장을 질러 줄 수 있다.  





서귀포 칼 호텔을 지나 정방폭포 위쪽이다.

업힐과 다운힐이 연속이다.

이 정도쯤이야.

1100도로도 계획했던 난데.

계획은 계획일 뿐. 푸화화

3/4 지점이 코 앞에 다가오고 있다.

난 벌써 천지연폭포에서 대정 쪽으로 가는 업힐을 머릿속에 넣고 있다.

미친.

이러면 안 돼!

평지도 힘든데 너 왜 그러는 거야?

머리와 몸은 따로 놀기 시작했다.

영혼 유체이탈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걸까?

현재까지 쉬는 시간 포함 13시간째.

적어도 4시간은 더 가야 일주 성공이다.

지금까지 대부분 해안도로 위주로 달렸다.

일주도로는 어지간하면 피했다.

그렇게 일주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진정한 일주가 아니니까. 





서귀동 바닷가 길이다.

먹거리 골목? 이 있는데 여기도 관광식당들이 많아 맛은 오지게 없다.

가격은 압구정 수준이고.

난 절대로 안 가지롱~ 

빙수는 결국 물 건너갔다.

대신 새섬 앞에 있는 망고레이에서 망고 뭐시기와 레몬 뭐시기를 먹었다.

원랜 하나만 먹으려 했는데 양이 차지를 않아서.

맥주 대신 마셨다.

여기서 스트라바 때문에 기를 빨린 스마트폰에 약간의 전기를 주입하느라 20여 분 정도 쉬었다.

이제는 천지연폭포 업힐이 시작이다.

미친 거다.

힘도 빠져가는데 이런 짓을 왜 하는 걸까?

천지연 폭포 업힐은 쉬운 구간이 아니다.

거리는 짧아도 경사는 남북 이상이니까.

3/4 지점이 이렇게 마무리됐다.

허기는 없었다.

그렇게 많이 먹고 달린 것도 없는데......

이젠 맞바람 같은 건 기억도 없었다.

워낙 포기한 탓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있었다.

사람이 신 게 먹고 싶으면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

마시고 쓰러질 정도로 신 게 먹고 싶었는데 대충 그런 걸 먹고 나니 힘이 나는 거다.

4/4 완주까지는 그야말로 신이 난 듯 달렸다.

서귀포에서 대정까지는 업힐 다운힐의 연속이다.

고도 역시 높다.

그걸 다 넘어가는데 정말 재밌게 페달질했다.

내리막길에서는 시속 60km는 달린 것 같다.

밤이라 체감이었을까?

아무튼 망고레이의 신 음료 덕에 정신을 차렸다.

신 음료의 '신' 자가 한자로 정신의 '신'자 아닐까?

웬 헛소리를? ㅋㅋ

멀리 랜딩 중인 비행기가 보인다.

여기가 아침밥 먹을 곳이다.

어휴 240km 중에 25%

그러니까 1/4 지점에 온 거다.

60km 정도 달린 거다.

아직 힘은 넉넉하다.

그저 배가 고플 뿐이다.

목이 마를 뿐이다.

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아뿔싸. 에너지는 나만 부족한 게 아니구나.

이럴 줄 알고 충전기도 챙겨 왔지.

식당에 나의 노트 8을 충전시켜 두었다.

스트라바 덕분에 배터리 소모가 장난 아니다.

가민520을 진작에 샀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텐데.

어쨌든 오늘 이 포스팅을 쓰는데 택배로 받았다.

아직 포장도 뜯지 못하는......

사무실에서 일은 안 하고 뭣 하는 짓인지.

제주도 자전거 일주 하루에 끝내기도 어렵지만

후기를 하루에 끝내기도 어렵다.

아니! 자전거 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이제 점심밥 묵고 해야지.

뭐. 거의 패턴이 비슷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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