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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Feb 13. 2019

7. 제주도 자전거 한바퀴 하루에 끝내기 4/4 지점

첫 번째 일주, MTB로 하루 만에 끝내기 (시계 방향)

이제 마지막 구간이다.
마음가짐은 초기화 완료됐다.
신 맛 덕분이겠지,라고 혼자 생각했다.
망고레이 밖으로 나오니 다시 푹푹 찐다.
습도 높은 더위는 정말 짜증을 불러냈다.
노랭이 MTB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빨리 밟아 달라고.
병신 같은 놈. 난 이미 죽을 지경이란 말이다.
그리고 저 앞을 봐!
천지연폭포 가는 길은 차들도 빨리 못 달리는 업힐이란 말이야.
생각은 그리 하면서도 자전거 안장에 체중을 실었다.
아이고오오오오
궁둥이가 또 쓰라린다.
쉬었다 탈 때마다 이 난리다.
그런데 이젠 아까와는 다른 통증이다.
까졌나?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
손을 훅 집어넣어?
궁둥이를 까 봐?




여기서부터 4/4 완료 지점까지 시작이다.
추울 바알~~~~


저기 보이는 게 새섬이다.
새섬 쪽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우뚝 선 오르막길이 뱀처럼 꾸불거린다.
보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ㅋㅋ
남북 코스를 해보지 않고 왔다면 끌바 했을 거다. ㅋㅋ
6시 50분
이제 해가 질 거다.
해가 지기 전에 일몰이 멋진 곳까지 가야 멋진 사진 한 장 건질 텐데.
하지만 오후 들어 날이 궂다.
사진빨이 별로일 거다,라고 자문자답이다. ^^
심리란 것이......



첫 번째 업힐을 마치면 이런 뷰가.
역시 날이 궂다.
흐려. 너무 흐려.
오늘 일몰은 틀렸다.
어차피 멋진 사진을 건지지는 못할 거야.
천천히 가도 돼.
아니야.
멋질지도 몰라.
혼자 생 쑈를 한다.



천지연폭포 주차장에서 올라오면 이런 표지가 있다. 10% 경사?
웃기고 있네.
이젠 표지판도 사기를 친다.
1100 고지 오르는 길도 여기만큼 가파른 곳은 없다.
사실 끌바 좀 했다.
죽을 것 같아서.
하려면 하겠지만 여기서 힘을 다 빼면 집에 못 갈 것 같았다.



어찌어찌 올라오니 멀리 범섬이 보인다.
저 앞에 가면 서귀포 신시가지, 법환동, 강정동이다.
여기 다운힐은 정말 재밌다.
어차피 궁둥이도 아프고 하니 궁둥이 들고 쏜다.
경사도가 좀 되니까 속도가 제법이다.
또 페달 빠지는 일은 없겠지.
그래도 모르니 페달링은 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서 온 곳.
법환동 끝 부분인데 표지판에 길 없다고 쓰여 있음에도 자전거 특히 MTB는 갈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꼭 말 안 듣는 놈들이 고생하는 게 맞다.
길은 있으나 사람밖엔 못 간다.
다시 언덕길을 올라 강정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또 업힐, 다운힐이다.
이제부터는 대정까지 업힐, 다운힐의 연속이다.
나중에 스트라바에서 보니 카운팅 구간이 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나도 순위에 몇 개 올라 있더라는 ㅋㅋ



중문에 들어섰다.
대포동이다.
해가 거의 졌다.
일몰 사진은 글렀다.
여기서 맥주 한 캔 충전했다.
물통엔 물 대신 홍삼으로. ㅋㅋ
마지막 힘을 내야 하니까.
위로 쭉 업힐이다.



7시 50분 중문.
잠시 긴 다운힐이 이어진 후 중문 도심까지 긴 업힐이 이어졌다.
건너편 여인 한 명이 죽을 둥 살 똥 업힐을 오르는 게 보였다.
열심히 제쳐 주었다.
구동계 망가진 내 로드자전거보다 어머니 MTB가 훨씬 더 잘 오른다.
역시 기어 스위치를 수시로 해 주는 것이 관건이다.
무변속이나 다름없는 구동계로 남북을 올랐으니 미친 게 맞다.




여기까지 온 게 8시 24분
200km 넘었다.
밤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 랜턴을 챙겨 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라이트 조정을 잘해서 열심히 달렸다.
관광객들은 이미 숙소로 갔거나 저녁 먹을 시간이라 도로는 한적했다.
중문의 기나긴 업힐을 한달음에 올랐다.
아주 느린 속도로. ㅋㅋ
케이던스의 중요성을 심히 느꼈다.
케이던스 위주로 오르니 체력의 분배가 좋았다.
제주조각공원 앞에서 잠시 쉬었다.

이제 남은 구간은 평소 서울에서 야간라이딩 하는 수준만 달려주면 된다.
그나저나 배가 고프다.
마지막 업힐-다운힐인 안덕면 화순리-사계리 구간.
그다음에도 있긴 하지만 그건 평지라고 해 두자.
그 정도는 언덕이라고 할 순 없지.



산방산을 지나 모슬포까지 가는 길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렸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던 걸까?
홍삼의 힘?
신 맛의 힘?
4/4구간은 1/4구간만큼 힘이 났다.
드디어 집에 간다는 흥분이었을까?

모슬포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잇뽕스시>의 적뽕 생각이 났다.
빨리 가면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거의 9시경.

문 앞에 서자 청소를 시작한다.
ㅠㅠ
어쩔 수 없지.
그냥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나 먹고 가자.
불고기 버거 세트를 시켰다.
콜라가 아주 칼칼하니 위장을 싹 쓸고 내려갔다.
청량했다.
이래서 청량음료라 하는구나 싶었다.




이제 한 달음에 갈 수 있다.
일과리-동일리-영락리-무릉리-신도리-고산리로 이어지는 환상자전거길
일주도로를 벗어나 어두운 바닷가길로 들었다.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어두운 길.
오로지 자전거 랜턴에 의지해 마구 밟았다.
어두워서 속도감을 높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내 체력은 완충이었다.
한우버거 덕분인가? ㅋㅋ
바가지가 벗겨질 정도로 빠른 스피드!
아이언맨을 제치고 달릴 수 있는 엄청난 스피드!
멈추지 않으면 바다 위를 건널 수 있는 공중부양 스피드!
이런 속도까지는 아니고......
재밌게 달린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차 타고 가는 것보다 연비가 더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차보다 많이 쳐묵고 다닌 거다. ㅋ

며칠 전 마라톤 하는 사람들의 '사점을 넘기면 무의식으로 달린다' 했던 바로 그런 것이었을까?
궁둥이 아픈 것만 빼고는 힘이 넘쳤으니까.

궁둥이는 요령이 생겼다.
한쪽 궁둥이만 대고 페달질을 하는 거다.
이럴 땐 안장이 짧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거의 다 왔다. ㅋㅋ
신도리 바닷가의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펜션이 보인다.
그 뒤로 이어진 몇 개의 펜션들도 반갑다.
약한 업힐과 다운힐로 집이 다가옴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집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스트라바 완료 버튼을 눌렀다. ^^
10시 13분 도착했다.
아래 이미지는 캡처한 시간이다.
10시 39분에 캡처한 거다.



이런 멋진 그림이 그려졌다.
이동시간 총 12시간 41분 31초
총 거리 230.8km
평균 속도 (거북이 굇수) 18.2km/h
상승고도 1,677m
칼로리 4,727kcal

ㅋㅋ
먹은 게 6,000 칼로리는 넘겠다.
살을 빼기는 뭘 빼?
피곤하지도 않은 이 몹쓸 체력은 뭘까?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왔냐?" 하신다.
완전 좌절 ㅠㅠ
그럴 만도 한 것이 표정이나 뭐나 힘든 기색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팔팔했으니까.

찬 물로 10분 넘게 적셨지만 용광로 같은 몸은 식을 줄을 몰랐다.
거실부터 내 방까지 몽땅 에어컨 틀어 두고 캔 맥주 500ml 한 캔을 깠다.
두 캔.
세 캔.
더 마실까 했지만 다음 날 또 할 일이 있으니 자야 한다.
마트에 어머니 장 보러 서귀포시에 다녀와야 하고
오후에는 소라 잡으러 가야 하고
시간 남으면 낚시 가서 고등어도 잡아야 하고


그런데 이건 또 뭔 일이냐?
12시에 잤는데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잠이 안 왔다.
억지로 자려해도 오지 않는다.
밴드 좀 보고 뉴스 기사도 좀 보고 에어컨도 끄고
간신히 자고 6시에 일어났다. ㅋㅋ
6시 30분에 밥 먹고 어머니 드리려 사 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를 읽다 잠이 들었다.
역시 잠자는 데는 책이 갑이다.
9시 30분 기상. 서귀포 이마트행.
다녀와서 역시 소라 잡으러 갔다.
그건 공개하면 안 되니까. ㅋㅋ


그리고 오늘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차를 몰고 제주시 노형동에서 아침밥 먹고 
6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서 9호선을 타고 논현동 사무실로 출근
8시 59분에 지문 등록했다.
제주에서 서울로 출퇴근이 된다. ㅍㅎㅎ


이로서 나는 거북이 굇수가 됐다



멀리 랜딩 중인 비행기가 보인다.
여기가 아침밥 먹을 곳이다.
어휴 240km 중에 25%
그러니까 1/4 지점에 온 거다.
60km 정도 달린 거다.
아직 힘은 넉넉하다.
그저 배가 고플 뿐이다.
목이 마를 뿐이다.
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아뿔싸. 에너지는 나만 부족한 게 아니구나.
이럴 줄 알고 충전기도 챙겨 왔지.
식당에 나의 노트 8을 충전시켜 두었다.
스트라바 덕분에 배터리 소모가 장난 아니다.
가민520을 진작에 샀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텐데.

어쨌든 오늘 이 포스팅을 쓰는데 택배로 받았다.
아직 포장도 뜯지 못하는......
사무실에서 일은 안 하고 뭣 하는 짓인지.

제주도 자전거 일주 하루에 끝내기도 어렵지만
후기를 하루에 끝내기도 어렵다.
아니! 자전거 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이제 점심밥 묵고 해야지.
뭐. 거의 패턴이 비슷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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