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스피드광이었다.
차란 차는 죄다 풀 스피드로 달려봐야 직성이 풀리는......
260km 이상 속도를 내면 동공을 조여 먼 곳을 주시해야 안전한 주행이 가능하다.
천천히 달리면 굳이 그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엑셀러레이터를 밟아댔다.
레이싱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동차 튜닝에 앞서 간 튜닝이 선제되어야 한다고들 했는데 지금보다 좀 더 젊은 시절엔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죽자 사자 빠른 속도를 즐겼다.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푸는 열쇠였고 삶의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비타민 같은 요소였던 것 같다.
지금은 풀 튜닝되었던 간은 상당히 풀어져 버렸고, 그렇게 좋아하던 고속 주행이었건만 이제는 예전 같은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가 끓어,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시키려는 젊은 시절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갑자기 케케묵은 옛 기억을 소환한 이유가 뭘까?
다름 아닌 시야와 생각의 연관성에 대한 착안이 있었던 거다.
일이 됐건, 글쓰기가 됐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깊이 있는 고민을 했느냐에 따라 성공 혹은 좋은 글이 나온다고 말해도 돌을 던지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속도와 시야는 아주 밀접하다.
빠른 속도는 시야를 좁게 만든다.
고로, 급하면 생각이 좁아져 포괄적인 데이터 수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성공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낼 가능성이 적어진다.
과거에 실수 한 번 안 해본 사람은 없다.
다만 그런 일련의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실수를 빗대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렇게 떠들면서도, 나는 어처구니없게 같은 실수를 반복해 왔다.
모든 게 나의 잘못이라며 다음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했건만 경우는 조금씩 달랐지만 또 비슷한 실수를 했다.
하면 안 될 비슷한 실수를 한 덕에 시야는 제법 넓어졌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한 건 생각의 깊이가 얕았기 때문인 거다.
성공한 사람들은 생각이 깊다.
생각하는 자체가 귀찮은 사람은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낮다.
내 실수가 반복된 이유를 재차 정리하자면,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며 다짐을 하고 그에 따른 많은 생각을 했겠지만 사실 깊이 있는 생각이 아니었던 거다.
급할 것 없다.
급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생각을 피해버린 결과로 항상 같은 실수로 자괴감에 빠져든 거다.
좀 더 여유롭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만 한다.
목적지까지 빨리 가야만 한다는 토끼와 거북이 식의 우화도 해석이 달라진 세상이다.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제대로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