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 위치

중요한 자리엔 그에 마땅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by 루파고

내가 잠시 몸 담았던 기업의 일이다. 이미 부도 직전까지 갔던 상황에 어쩌다 보니 경영을 떠안게 될 상황이었다. 이미 230억 원이 잠식된 상태인 데다 부활의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 볼 땐 멀쩡해 보였지만 내부적으로 파악하고 보니 사업모델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이상 답이 없었다. 모기업 역시 자금난에 허덕이는 상황이라 더 이상의 추가 재원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직원들은 망할 때까지 버티다 나가겠다는 심산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딱히 더 좋은 조건으로 갈 수 있는 인력들이 아니었다. 공석으로 두면 안 될 중요한 자리는 어떻게든 채워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면접을 보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결국 주임을 대리급 또는 대리를 과장급으로 대우해주는 조건으로 해서 어렵게 인력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회사 상황을 알게 되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이런저런 변명을 동원하여 이탈하고 말았다. 명석한 판단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사실상 경영을 거절한 후 상황이 거기까지 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대책이라도 있을까 싶어서였는데 알고 보니 기대는 사라지고 없고 상황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창업 초기 CEO는 모 기업에서 매장관리 등의 내용을 두고 강연을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쉽게 말해 강사였던 것이다. 물론 강사 출신이라 해서 일을 못 한다고 못 박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구멍가게 한번 경영해본 적이 없던 사람에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중차대한 직함을 주었으니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정치판의 추땡땡처럼 완장을 채워주니 세상을 다 가진 양 겁도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경영에 문외한인 데다 관련 업종에 대한 지식도 없던 사람이 대표를 맡았으니 앞날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던 거다. 그런데 그를 그 자리에 앉힌 사람 역시 경영은 물론 관련 업종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을 만들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는데, 선수가 아닌 사람 눈에 누가 선수인지 알 게 뭘까? 아무튼 나는 지난 회계 관련 장부를 몽땅 꺼내 들여다보았다. 말 그대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 아니라 누가 봐도 방만한 경영이라고 할 만큼 허술한 경영이 여실히 드러났다. 불필요한 사입은 따로 지적할 필요도 없을 만큼 많았다.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자재는 시세보다 수십 퍼센트 이상 비싸게 매입했으며 필요 이상의 물량을 주문해 결국엔 폐기된 것들이 사용한 것보다 많았다. 전반적인 인력 시스템은 볼 것도 없었다. 내가 보기엔 중소기업이 대기업 흉내를 낸 것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지난 일이니 험담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이겠지만 창업 때부터 자리를 지켜왔던 직원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사태는 심각함 이상이었다. 잘 모르면 실무자와 긴밀히 협력하여 업무를 추진하면 될 일도 막무가내로 자기주장만 폈다고 했다. 객관적 판단이 필요했기에 그가 지적한 서류들을 훑어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흔히 하는 말 중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던 말이 무색했다. 더 이상의 문제점들은 기술해 봐야 손가락만 아플 정도이다.

아무튼 CEO 자리에 앉은 사람은 경영능력이 전무했고, 그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강연 때 하던 이론적인 내용을 담은 단어들 뿐이었다. 실무에 능한 직원들이 보기엔 업무를 모르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경영자였던 것이다.

책에서 채운 지식은 그냥 참고할 정보일 뿐이다. 이 세상은 치열한 경쟁사회인데 책에서 배운 대로만 한다고 해서 될 거였다면 공부만 해서 성공할 수 있을 거다. 많고 많은 경영서를 죄다 독파했다고 해서 뛰어난 경영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참고자료일 뿐인 거다. 생각이 있다면 하나라도 좀 더 깨우치고 모르거나 잘못된 것을 고쳐 잡는 게 정상이다.

그 회사에서 기껏 일 년 반 정도 있었지만 배운 게 아주 없지는 않은 갓 같다. 적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공감이랄까?

당연한 말이지만 인재는 적시적소에 맞아야 한다. 기업엔 무능한 낙하산 인재는 아예 필요 없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수많은 기업들 중 경영을 맡으면 안 될 사람이 경영을 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자신을 독특한 인성과 감성의 소유자이며 탁월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일종의 스티브 잡스 같은 경영자라고 스스로를 신격화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영자의 자리는 아니다 싶으면 빨리 내려놓아야 하는 중요한 직무라고 생각한다.

혼자 조그마한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망해도 혼자 가는 길이니 누굴 탓할 것도 없지만 기업이든 정치든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을 경영하는 입장이라면 누구보다 신중해야 하며 겸손해야 한다.

세상에 가장 못난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또 뭘 끄적이고 있는 걸까? ^^ 난 스스로 경영자의 자질이 부족하다 판단한 지 오래다. 그래서 그 짓은 죽어도 하지 않는 걸로 작정했다. 이러고 사는 게 얼마나 속 편한지 모른다. 그렇다고 미래가 없진 않다. 내 성향에 맞는 역할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에 줄곧 그 길만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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