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와 제주감자, 맥주와 소설, 나 그리고 또 다른

오랜만에 정말 소설 같은 소설 한 편으로 가슴을 짓이기다

by 루파고

제목이 좀 웃기긴 하다.

뭐 어때? ㅋ
어제 갑자기 조성된 술자리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니 부족한 알코올을 채울 뭔가 필요했다.
편의점에 가서 1만 원에 4캔 하는 프로모션 12캔을 사다 냉장고에 쟁여 두었다.
그리곤 기껏 한 캔을 깠다.
안주는 어제 읽던 소설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이다.
맥주 한 잔 하기에 딱 좋은 안주였다.
버릇처럼 제주에서 가져온 감자를 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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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책을 읽다 말고 사무실에서 수령한 먹오프 자전거 용품이 생각났다.
기껏 구입하고 게으름 피우다 뚜껑도 열지 못한 채 방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거다.
당장 자전거 앞에 앉아 세척작업을 시작했다.
시커멓게 변한 기어와 체인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사진은 없다.
술 마시고 별 짓 다 한다 싶었다.
삼십여 분 동안 자전거 체인을 돌렸다.
밤새 시끄러운 소음이 집안에 울려 퍼졌다.
알 게 뭐냐. ㅋㅋ
술 마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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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세척을 마치고.
아마 12시가 못 되어 잠이 들었을 거다.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겠기에 잠들었다.
그런데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요즘 큰일이다.
술을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문제.

다시 잠을 청했지만 날아간 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읽다 만 소설을 다시 집어 들었다.
무려 세 시간 동안 독서에 몰입했다.
이 소설은 끝까지 나를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정신 못 차리게 집중시키는 문맥이 나를 집어삼켰다.
주인공 에이자 이상으로 혼돈 속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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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페이지다.


단수 고유명사인 '나'는 늘 주위의 영향을 받으며 계속 살아 나갈 거야.
하지만 넌 아직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해. 너와 나는 데이비스의 손을 꽉 잡아. 데이비스도 우리의 손을 꽉 잡지. 넌 그와 함께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참 후에 데이비스가 그만 가야겠다고 말하고, 넌 '잘 가.'라고 말하고 데이비스는 '잘 있어. 에이자.'라고 말하지. 우리는 정말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작별 인사를 하는 법이니까.



소설의 여운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정신분열 혹은 알코올 중독 증세에 가까운 에이자의 복잡한 심경이 사실은 내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나뿐만 아닐 거다.
누구나 비슷하지 않을까?
성장소설이다.
우리는 아직 성장하고 있다.
인생은 살아지는 거니까.
언젠가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에서 읽었던 글귀가 기억났다.

살암시민 살아진다.


느낌은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와 닿은 건 비슷했다.
이 소설은 글을 쓰는 나에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했다.
묘사도, 구성도 판타스틱하다.
존 그린이라는 작가는 중년의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심리를 아주 잘 이해하는 듯했다.
상당히 미국적인 이미지가 그려지는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미국인들의 사상을 조금은 이해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그들의 삶.
우리와는 많이 다른 가치관.
우리와는 너무 다른 성찰.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나는 나일 수도 있고, 나는 내가 아닐 수도 있다.

가수 김국환의 <타타타>라는 노래 가사가 기억난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음음 어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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