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지각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대구 출장길.
SRT를 타기 위해 수서역으로.
집에서 15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성격 탓에 4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원래 아침을 먹지 않는 편이지만 장거리 이동이라 집에서 뭐라도 먹고 나오려다 꾹 참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보니 뭔가 먹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머릿속에서는 알록달록한 것들이 까만 김에 말린 예쁜 김밥이 그려졌다.
<꼬마김밥>이라는 식당이 눈에 콕 박혔다.
사실 그런 걸 원한 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지 싶었다.
미리 만들어진 열 몇 가지 김밥들이 선택장애를 일으키게 했다.
고를 수 있다는 건 민주적인 거니까 아무튼 잠시의 망설임 끝에 네 가지 메뉴를 선택하고 금액을 지불했다.
5,000원. 완전 사악하다.
어쨌든 나의 선택이었고 생각했던 이미지는 모두 지워지고 말았다.
자그만 트레이에 담긴 음식을 받아 들었다.
별 생각없이 테이블 위에 김밥을 올려 두고 나니 국물도 없고 단무지 같은 것도 없다.
제공되는 국물이 없는지 물어보니 어묵을 구입해야 국물이 제공된다고 한다.
황당함을 느꼈지만 그동안 여타 식당에서 무료제공에 길들여진 탓이라 나 자신을 나무라며 어묵 하나를 구입했다.
1,000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지만 따신 국물 없이 먹는 김밥을 상상하긴 싫었다.
좀 어이없지만 원래 그런 곳인가보다 싶어서 맛이나 보기로 했다.
먼저 온 손님이 유부초밥의 쌀이 설었다고 직원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뭐 그럴 수도 있나 싶은 생각을 하며 내 김밥 속의 쌀을 혀와 이로 상태를 파악했다.
좀 설긴 했지만 먹는 데는 무리가 없다 싶어 꾹 참고 씹어 넘겼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쌀알들이 꺼끌했다.
기분 탓이었을까?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뭘 먹는지도 모르고 씹다보니 벌써 절반은 먹은 듯했다.
그런데 나쁜 느낌이 쓱 치밀었다.
모든 게 일회용이었다.
트레이에 씌운 비닐 위에 놓인 네 줄의 꼬마김밥.
수저도 없이 대나무 꼬챙이로 김밥을 찍어 먹어야만 하는 구조.
어묵과 국물을 두 겹의 종이컵으로 담았다.
난 모든 게 일회용품인 그 곳에서 말도 안 되는 비용을 지불하며 가성비, 가심비 모두 최악을 경험했다.
게다가 지금이 어떤 시절인데 일회용을 난무하는지.
다른 테이블에 놓은 음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 세상을 거꾸로 가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가장 기분이 나쁜 건 내가 무의식적으로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원치도 않게 일회용품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보니 어제 광릉수목원 안에 있는 모 카페에서는 커피를 종이컵에 담아줘도 되겠냐고 묻길래 어이가 없었는데 또 이런 일이 발생한 데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원래는 "머그잔에 담아 드리겠습니다. 손님." 이게 맞는 거 아닌가?
인테리어도 일회용으로 하지 그랬다 싶다.
어이없는 아침이다.
오랜만에 가는 대구 출장길이 씁쓸함으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