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바이크 시즌3:사랑시> 2화-코스모스

미스터리 소설인 1,2편과는 다른 오묘한 자전거 로맨스 소설

by 루파고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단발머리 아래 늘씬한 몸매 위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다. 여자는 화장실 앞 거울 밑에 두었던 스마트폰의 알람 램프가 깜박이는 걸 인지했지만 무시하고 드라이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아침 뉴스가 끝나고 들리던 광고 방송이 드라이기 소음에 잠식되고 말았다. 축축했던 갈색 단발머리는 점차 찰랑거리는 상태로 변해갔다. 여자는 여러 표정을 지으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길게 내밀어본 입술은 아직 어떤 남자에게도 허락한 적 없는 신의 영역이었다. 어느 정도 머리가 마르자 여자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너무 아낀 건가?' 여자는 지난 시절 자신을 따르던 몇 명의 남자들을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너무 뻣뻣하게 굴었다가 놓쳤던 몇 명의 남자들이 아쉽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수의 길로 접어든 여자는 무대나 방송 관계자를 제외하곤 딱히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게다가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 온갖 재기와 재치로 매력을 발산하는 연예인들이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어떤 남자도 그녀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못했다. 여자는 영양크림을 찍어 얼굴에 대충 비벼댄 후 피식 웃고 말았다. 조금씩 까무잡잡하게 변해가는 얼굴이 어색했었지만 이제는 예전과 다른 생기를 느껴지는 게 은근히 맘에 들기 시작한 것이다. 꿈에 그리던 가수가 된 후 바깥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다 보니 자외선을 쬘 시간도 없었다. 한 해 두 해 지나며 온실 속 화초처럼 인공적 이미지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활력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려웠던 몇 달 전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여자는 램프를 깜박이는 스마트폰이 거슬리자 결국 화면을 띄워 알람을 확인하고 말았다. 왠지 귀찮은 소식일 것 같은 불길함 때문이었다. 다행히 자기 이름만큼이나 익숙한 닉네임의 카톡 메시지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 최대한 빨리 갈게. 사랑해!>

여자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것만 같은 사랑한단 단어에서 피식 웃고 말았다.

"징그럽게~"

여자는 스마트폰을 들고 창 앞에 놓인 소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뿐사뿐 걷는 다리는 마치 가느다란 학의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여자는 소파 위에 몸을 던지듯 날아들었다. 창 밖에선 이미 대낮처럼 밝아진 태양이 도심 위로 번쩍 떠오르고 있었다. 새벽녘에 보았던 붉으스름한 도심의 새로운 출발 같은 느낌은 온 데 간데없었다. 아침 뉴스는 아침에 들었던 내용을 재차 방송하고 있었다. 마치 재방송 같았다. 여자는 TV를 꺼버리고 스마트폰에서 음원 플레이어 앱을 열어 노래 목록을 드래그했다. 코스모스라는 제목의 노래가 눈에 띄었다. 별안간 쌀쌀해진 날씨는 이른 코스모스를 꼬셔 가을 문턱 앞에 가져다 놓은 것만 같았는데 이런 날씨와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여자는 검지 손가락으로 재생 버튼을 톡 찍어 눌렀다. 가녀린 손가락의 나비 같은 움직임에 스마트폰이 바르르 떠는 것만 같았다. 거실 사방에 설치된 8개의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멜로디가 명품 향수처럼 잔잔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아시나요?

상큼한 그리움이

연약한 꽃잎

맺힌 이슬 떨구어도

슬퍼하지 않았어요.

눈웃음 짓지 마.

맑은 눈망울

시선 맞춰 봐도

넌 벌써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어.

가냘픈 꽃잎

행여 떨굴까

한들한들 맘 졸여도

날갯짓 저어 저어

고추잠자리 설렘으로

가을 하늘

언저리만 맴돌다

수줍은 고백

볼 붉히며

다소곳이

고개 숙이는

우아한 꽃이라네.


여자는 무한 반복으로 재생 기능을 고치고 소파에 늘어졌다. 인체감지 센서가 장착된 것도 아닌데 소파는 여자의 온몸을 폭 안아주었는데 마치 여자가 소파의 일부가 된 것처럼 딱 들어맞아 보였다. 여자는 눈을 감고 중간중간 멜로디에 맞춰 웅얼거리기도 했다. 노래가 세 번째 재생을 마치고 다시 음악이 시작되는 찰나 현관 쪽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165 정도의 키에 뽀얀 피부, 깜짝 놀란 듯한 커다란 눈망울에 오뚝한 코가 마치 한국형 바비인형이라고 해도 될 미모의 여자였다. 소파 위에 늘어져 있던 여자는 머리를 뒤로 젖혀 걸어 들어오는 여자를 보며 말했다.

"왔어? 생각보다 빨리 왔네?"

"어이구 이년아. 또 비행기 모드를 해두면 어떻게 하니? 걱정이 돼서 이렇게 달려올 수밖에 더 있겠어?"

그새 소파 앞까지 다가온 여자는 스마트폰을 빼앗아 음악을 꺼버렸다. 거실을 울리던 음악의 그림자가 자취를 감추자 창 밖의 잔잔한 한강만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소파 위의 여자는 낚아채듯 스마트폰을 빼앗아 들었다.

"글로벌 싱어송라이터, 이별하씨!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합니까?"

여자는 팔짱을 낀 채 소파 위의 이별하를 내려다보았다. 이별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오른쪽 다리를 들어 발가락을 꼬부랑거렸다.

"내가 집에 이러고 있는 게 불만인 거야? 나도 좀 쉬고 싶거든! 그렇지 않아도 어제 너무 심하게 라이딩을 하는 바람에 허벅지며 종아리며 안 쑤시는 데가 없어서 그냥 이렇게 있을 생각이었어."

"쉬지 말라는 게 아니잖아. 아까 내 뉴스 봤어?"

약간은 심기가 불편한 듯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이별하의 집에 쳐들어오다시피 한 여자는 아침 뉴스의 한세아 아나운서였다.

"씻느라 못 봤어."

"그럼 아까 네 이야기하는 건 봤어?"

"그건 봤지. 바로 화장실로 가긴 했지만. 내 하트는 받았어?"

"무슨 하트?"

한세아가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묻자 이별하는 소파에 누운 채로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주었다.

"그거였어? 아무튼 고맙다. 하지만 아까 그거 때문에 국장님한테 불려 갔다 왔어. 오래간만에 된통 혼이 났지 뭐니. 그래도 좋아. 널 위한 건데 내가 그 정도는 못 하겠어?"

"그게 다야? 그건 내 잘못도 아닌데 뭐가 그리 급해서 이렇게 날아온 거야?"

"참! 그게 문제가 아니고 말이야. 어제 한남대교 아래에서 폭행당했다는 사람 말이야."

"응?"

이별하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왠지 호기심이 생긴 것이었다.

"장소가 어딘지 알아?"

한세아가 이별하를 옆으로 조금 밀어낸 후 엉덩이를 비비고 들어왔다.

"글쎄, 혹시 이 앞이야?"

"알고 있었어?"

한세아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알긴 뭘 알아. 그냥 물어본 거지."

"하여튼, 잘 때려맞추긴 했어. 바로 너네 집에서 백 미터도 안 떨어진 장소였어. 그런데 말이야 그 사람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니 사진이 깔려있었대. 게다가 니 팬이었다는 거야."

"응? 그런 건 어떻게 알 수 있어?"

"경찰이 봤다나 봐. 어쩌다 보니 내 귀에 들어왔고. 아무튼 이상하잖아. 네 집 앞에서 그런 폭행사건이 일어난 것도 그렇고. 경찰이 피의자를 찾겠다고 CCTV를 확인했는데 그 남자가 집 근처를 맴돌며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야. 그게 너 아니면 누구겠어?"

한세아는 이별하의 허리 아래쪽에 손을 넣어 봉긋한 가슴께를 더듬었다.

"치웟!"

이별하는 입술을 지그시 누르며 눈을 흘겼다.

"키키 미안! 난 항상 니 가슴이 만지고 싶지 뭐야? 나도 이런데 남자들은 어떻겠어."

한세아는 이별하의 무릎 위에 두 다리를 벌리고 앉더니 상체를 눌러 소파 안으로 뭉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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