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바이크 시즌3:사랑시> 3화-낙엽에게

미스터리 소설인 1,2편과는 다른 오묘한 자전거 로맨스 소설

by 루파고

"좀 비키시지! 누가 보면 레즈비언인 줄 알겠어!"

이별하는 한세아의 어깨를 옆으로 밀어 자리에서 벗어났다. 소파에서 일어난 이별하는 한세아의 발을 쿡 밟고는 곧장 부엌 쪽으로 향했다. 한세아의 낮은 비명이 들렸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지간하면 옷 좀 입고 있어!"

한세아는 잘록한 허리 아래 두 엉덩이를 실룩이며 걸어가는 이별하의 뒤태를 감상하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예쁜 모습이다. 자기 몸매 역시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다고 자신해 왔지만 여자의 마음까지 훔쳐갈 수 있는 이별하의 몸은 언제가 가슴을 뛰게 했다. 부러운 건지 갖고 싶은 건지 혹은 그녀의 몸을 소유하고 싶은 건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내 집에서 내가 이러고 있는 게 뭐가 어때서?"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누가?"

"내가!"

별생각 없이 말을 던진 한세아는 피식 웃고 말았다.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게 아니라면 볼 사람이 있을 수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행여나 누군가 드론이라도 띄워 도둑촬영을 한다면 모를까 말이다.

"아무튼 조심해, 어제 일도 그렇고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잖아."

"그렇게 신경 쓰이면 나 좀 괴롭히지 마시지. 내 가슴이 그렇게 탐이 나면 떼서 가지든가. 난 너무 커서 귀찮거든!"

이별하는 두 손으로 두 가슴을 받쳐 들었다 놓았다. 탄력이 살아있는 가슴이 쟁반 위의 도토리묵처럼 출렁거렸다.

"알았으니까 옷 좀 입자! 제발! 대중목욕탕도 아니고 벌건 대낮에 그렇게 훌렁 벗고 다니면 이상하지 않아?"

"난 이게 편해. 부담스러우면 안 와도 되니까 알아서 하던가!"

이별하의 목소리는 조금 퉁명스럽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말과 다르게 옷걸이에 대충 던져 걸어놓은 흰 면 티셔츠에 몸을 끼워 넣었다. 허리는 헐렁했지만 가슴께는 꽉 끼어 보이고 두 개의 포인트가 도드라졌다. 한세아는 이별하의 그런 모습에 뭔가 알 수 없는 느낌이 드는 걸 알 수 있었다. 숨이 컥 하고 막히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만약 남자가 저런 모습을 보았다면 당장이라도 덮치고 말았으리라. 저런 매력을 갖고도 지금까지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는 이별하의 이야기를 믿기는 쉽지 않았다.

"너 정말 남자 한 번 안 사귀어 볼래? 우리 방송국에 괜찮은 사람 많아. 나에게 관심이 많지만 너에게 라면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지."

"됐거든! 너나 가지시지!"

"이게 언니한테 싸가지 없이."

"싸가지고 바가지고 간에 난 남자 관심 없고, 있다 해도 이 바닥 사람들은 절대로 싫어. 그렇게 좋으면 언니나 만나. 맨날 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그렇게 남자가 좋으면 따라다니는 사람 하나 사귀면 될 텐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이별하는 침실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팬티 한 장 더 두르고 거실로 돌아왔다. 레이스 같은 게 없는 스포츠용 검은색 팬티는 흰색 티셔츠와 너무 잘 어울려 보였다. 자덕 라인이 그어진 허벅지는 그 어떤 여자보다 여성스러운 자태에 강한 도전적 느낌이 배어 있었다.

"이제 좀 라이더 같아 보인다."

소파에 등을 포갠 한세아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원래 라이더 맞거든요!"

"그래, 맞아. 누가 뭐래니. 그나저나 니 다리는 참 너무 예쁜 것 같아."

"정말 오늘 왜 그러니? 언니야말로 세상 어디 내놔도 안 꿀린 사람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뭘까? 혹시 돈 필요해?"

이별하의 농담에 한세아 역시 웃고 말았다.

"내일까지 쉬는 거지?"

"아니! 원래는 내일까지 쉬기로 했었는데 사장님이 오늘까지만 쉬고 내일부터는 준비하고 있으래. 진수 오빠 보낸다고."

"진수 씨? 갑자기 왜? 준흠 오빠는 어디 갔어?"

"몰라! 다른 데로 스카우트됐다던데. 나를 버리고 가다니 미친 거 아냐?"

"미친 게 아니고 니가 관심을 안 주니 힘들어서 떠난 거겠지. 준흠 오빠도 남자니까 다른 사람들하고 같았을 걸. 널 보고 사랑에 빠져들지 않으면 그게 남자냐?"

"밥 먹었어?"

이별하는 한세아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고 싶었다. 준흠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제삼자들이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를 느끼곤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사장이 이를 해결한 걸 거라고 짐작하고는 있었던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별하 역시 준흠에게 아주 조금은 관심이 있었다. 준흠에겐 남들이 알지 못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처음 그에게서 매력이 풍겨진 건 한 편의 시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그게 진심이라는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그가 건네준 시 한 편이 적힌 종이는 무려 백 편에 가까운 분량이 되었다. 그중 그다지 와 닿지 않는 것들도 있었지만 명작이라고 느껴질 만큼 깊이 있고 수십 번을 읽어도 새롭게 읽히는 것도 있었다. 준흠은 이별하의 관심을 눈치채고 시를 전했고 그녀 역시 그의 시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언젠가 준흠은 자신의 시가 이별하의 노래가 되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자신은 이미 싱어송라이터이며 상당한 수준의 작사가로도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별하에겐 특별한 꿈이 있었다. 존 레넌 같은 멋진 시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 꿈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어떤 한 남자에게서 시작된 거라는 건 잊을 수 없었다. 다만 그 남자가 누구였는지 도통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이 항상 그녀를 괴롭혔다.

이별하는 냉장고에서 오색 찬란한 야채샐러드와 수입 오가닉 음료 두 개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인 키위를 베이스로 한 드레싱 소스는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엄마가 친히 만들어 보낸 것이었다. 이별하는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두었던 종이를 떼어내 식탁 위에 올렸다.


<낙엽에게>


너에게 장식은

거추장스러웠나 보다

이젠 짊어진 어깨를

가벼이 해주고 싶은 거지

지금은 가을~

이 마음 떠나면

어느 길모퉁이

부서져 갈 운명이여

그동안 오가는 발길들의

그늘이 되어 주느라

수고가 많았네

저쯤 조그만 벤치에서

쉬어 가시게나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는 건

참 좋은 것이야

조금 더 세월이 지나

바람이 되면

그때 다시 만나세

꽃 피고 새 울면

그때 다시 만나세


이별하는 시를 읽으며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그새 옆으로 다가온 한세아가 종이를 빼앗아 소리 내어 낭독했다.

"오! 이 시 좋은데? 새로 쓰는 곡이야?"

"아니! 준흠 오빠가 남긴 시. 이미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봐!"

"좀 유치하긴 하다. 그치?"

"뭐가? 시가?"

"그게 아니고, 떠나겠다는 걸 이렇게 시로 표현한다는 게 말이야. 그냥 말로 하지 무슨 시냐? 지가 시인이라도 된대?"

그동안 시를 써서 건네준 준흠의 사연을 알 수 없는 한세아의 설익은 표독스러움에 이별하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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