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팔 차림의 두 사람은 잠실 선착장 앞 주차장 구석진 곳에 차를 구겨 넣고 캐리어에서 자전거를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남의 살이 돋아나는 추운 기온이었지만 반팔 져지에 짧은 빕숏을 입고도 개의치 않았다. 앞바퀴를 자전거 프레임에 끼워 넣고 QR레버를 돌려 고정시키는 일련의 행동엔 숙련된 손길이 엿보였다. 적어도 몇 년은 탔을 것만 같은 솜씨였지만 사실 두 사람 모두 기껏 반년도 되지 않은 반 초보 수준이었다. 다만 밤이고 낮이고 시간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덕에 가끔 주말에나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보다 마일리지는 높은 편이었다.
"우리가 뭐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맨날 이렇게 구석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편의점 앞에서 조용하게 캔커피라도 마시면서 기다리면 얼마나 좋냐?"
자전거 조립이 끝난 한세아가 투덜거리며 검은색 바람막이를 걸쳤다. 상하의 모두 흰색 자전거 복장인 두 사람은 같은 브랜드의 같은 모델의 의류인데 그 위에 걸친 검은색 바람막이는 절대적으로 맞춘 듯 어울렸다. 두 사람은 가슴 사이즈만 조금 다를 뿐 몸매는 거의 흡사한 수준이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쓰고 있었던 마스크와 고글 때문에 누가 누군지 알 수는 없겠지만 헤어스타일 하나만으로도 서로는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투덜거리지 말고 이것 좀 도와줘봐."
자전거 체인이 빠진 것을 발견한 이별하는 낑낑거리며 자전거와 씨름하고 있었다. 이런 건 배운 적이 없었고 딱히 어떤 트러블이 발생한 적이 없어서 직접 체인을 끼거나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라이딩 중 한 번 빠진 적은 있었다. 그땐 마침 지나가던 자전거 동호인에게 도움을 받아 간단히 해결됐다. 마침 지나간 것인지 뒤태를 감상하며 따라오다 도움을 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의는 선의로 받는 게 옳은 일이었다. 이별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세아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녀 역시 이별하와 별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뭐하냐?"
익숙한 목소리에 두 사람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들과 같은 복장을 한 여성 라이더 한 사람이 보였다.
"언니!"
한세아가 먼저 소리쳤다. 그녀들 앞에 멈춰 자전거를 세우고 클릿을 빼는 중 뒤쪽에 또 한 명의 여성 라이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같은 복장이었다. 기껏 몇 초 만에 세 여자들 앞에 도착한 여자 역시 모델에 가까운 몸매였다. 다만 그녀들 중 가장 육감적인 볼륨으로 말 그대로 에스 라인을 그은 모습이나 마찬가지였다.
"언니들이 먼저 왔네요? 일찍 온다고 나왔는데... 하여튼 부지런들 하세요."
형광 초록색이 눈에 띄는 자전거를 바닥에 눕힌 여자는 세 사람 옆에 섰다.
"민경이가 늦을 때도 있구나? 하긴 라이딩 시작하면 니가 제일 빠르긴 하지."
민경보다 앞서 도착한 여자가 이별하의 자전거 앞에 쪼그리고 앉으며 말했다.
"이럴 때 남자 라이더가 한 명 있으면 좋은데 말이야. 내가 니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살아야 하니 괴롭다."
여자는 공구통에서 비닐장갑을 꺼내 자전거 체인을 기어에 물렸다. 너무 신속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우리도 언니처럼 자전거 고수가 되는 날이 있긴 하지 않겠어요?"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승희 언니 같은 로여가 되는 건 우리로선 불가능한 일이지."
자전거를 차 옆에 비스듬히 세우고 돌아서는 오승희를 한세아가 꼭 끌어안았다.
"얘가 또 이러네. 너 정말 레즈비언 아냐?"
오승희가 한세아를 밀어내며 눈을 흘겼다. 고글 안쪽에 스쳐 지나가는 눈빛이 쐐기 박히듯 느껴졌다. 그녀들의 대화에 이별하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러다 정말 달려드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좋아서 그러지. 언니는~"
한세아는 반항이라도 하듯 다시 한번 더욱 세게 끌어 안았다. 오승희는 팔에 힘을 풀고 몸을 맡겼다.
"그래! 니 사랑이라도 받아야지 어쩌겠냐? 이젠 남편도 안아주지 않는데 말이야."
오승희의 목소리엔 반쯤 진심이 담겨 있었다.
"형부는 참! 아무리 일이 바빠도 그렇지 언니 같은 여자가 세상 또 어디 있다고 언니를 홀대하는 거야?"
"어딨긴 여기 다 있지. 그나저나 이 년은 왜 또 늦는 거야? 얘 자꾸 늦으면 팀에서 나가라고 해!"
오승희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녀가 찾는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애들 밥 챙겨주고 학교 보내고 나오면 늦는다잖아요. 언니는 애가 없어서 모르는 거라니까!"
한세아가 말했다.
"그럼 니들은 있니? 아직 시집도 못 가본 것들이 아는 척은! 시집살이는 아무나 하는 건 줄 아냐? 아 맞다! 우리 별하 정말 축하해!"
"축하는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이별하는 헬멧을 쓴 머리를 가로저었다. 헬멧이 살랑살랑 꾸덕거렸다.
"언니 노래는 가사가 가슴에 콱콱 박혀요. 나도 언젠가는 사랑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어디 남자를 만나야 연애도 하고 그럴 텐데 이놈의 자전거를 애인처럼 여기며 사니..."
김민경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웃기고 있네! 공부나 열심히 해 이년아.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질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오승희의 구박하듯 한 말에 김민경이 오승희를 백허그했다.
"언니 딸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흐흐~"
그때였다. 한강 쪽에서 언니,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는 여자가 보였다. 다른 여자들보다는 키는 조금 작은 편이지만 균형 잡힌 몸매였다.
"게으름뱅이!"
오승희의 툴툴거리듯한 말을 들었는지 여자가 소리쳤다.
"또 내 흉봤지?"
"쟤 귀신 맞아! 어쩜 지 욕하는 건 기똥차게 알아챈다니까!"
"그게 아니고 언니 컨셉이 그러니 안 봐도 아는 거겠죠."
김민경의 말에 한세아 역시 거들었다.
"아이고~ 내가 원래 이런 스타일이 아닌데 어쩌다 이런 이미지가 박힌 거지?"
오승희는 멋쩍은 듯 어깨를 옴싹였다. 다가오던 여자는 이미 땀이 흠뻑 이었다. 자전거를 세운 그녀는 힘들었는지 마스크를 벗어 손에 들었다.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약간은 가무잡잡한 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