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바이크 시즌3:사랑시> 5화-여신들

자전거 책, 자전거 소설, 자전거 로맨스 소설

by 루파고

맨 앞에 달리는 김민경의 페달링은 밀고 당기는 힘과 리듬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두 다리의 움직임은 마치 옛 증기기관차의 크랭크축이 규칙적으로 회전하는 것과 같았다. 짧은 업힐이 나오면 곧장 댄싱 자세로 바뀌곤 했는데 싯팅과 스탠딩의 교차는 별개의 동작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업힐이 길어지면 세 사람은 선두 두 사람과 간격이 멀어졌다. 하지만 다운힐이 지나고 평지가 나오면 다시 대열에 갖춰졌다. 하얀색 빕숏에 하얀색 져지 위로 검은색 바람막이를 받쳐 입은 다섯 명의 여성 라이더는 한강을 지나는 그 어떤 사람의 눈길도 가만 두지 않았다. 수많은 눈길은 그녀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쭈욱 이어졌다. 눈길은 눈길로 끊임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헤벌레 열고 감탄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급히 자전거 안장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녀들을 따라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라이딩 좀 한다는 사람들이라도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라면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던 것이다. 민경 뒤로 이우정이 바짝 붙어 달리고 있었다. 엄마 노릇하랴, 아내 노릇 하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자전거를 타는 그녀를 두고 반쯤 미친 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람쥐처럼 살아가는 일상에 지쳐갈 무렵 알게 된 자전거는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었다. 때론 엄청난 스피드를 버텨내야 하고 극강의 업힐을 오를 땐 자전거를 멈추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순간을 넘어서면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희열에 가득 찼다. 어릴 때부터 열망했던 연기자가 됐지만 한순간 인생을 바칠 만큼 모든 걸 내치고 푹 빠져버린 한 남자와 짧은 연애를 끝으로 결혼까지 속달같이 마친 후 일반인의 삶을 살았고, 그 후론 꿈도 희망도 모두 존재하지 않은 그냥 아내와 엄마의 삶 속에서 존재감 없었는데 오승희 덕분에 자전거를 접하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취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푹 빠져버린 자전거는 그녀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고 말았다. 아이들 학교 보낸 후 동네 카페에서 다른 엄마들과 노닥거리다 아이들 돌아올 시간만 기다리던 그녀는 곧장 쫄쫄이 자전거 복장으로 갈아입고 자전거 위에 올라탔다. 처음엔 그 복장 자체가 몹시도 부끄러웠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이웃들에게 민망한 몸매를 정직하게 드러내야만 하는 것도 그랬지만 그녀의 몸매를 위아래로 훔쳐보는 남자들의 시선에 따가움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것도 대수롭지 않게 변해버렸다. 때론 그런 순간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육 개월 전에는 두 사람이 더 합류해 그녀의 일상을 더욱 즐겁게 했다. 세 사람이 함께 다닐 때에도 즐겁기 그지없었지만 가수 이별하와 아나운서 한세아는 새로운 활력을 가져왔다. 그렇지 않아도 남자들의 눈길을 휩쓸고 다니던 그녀들의 라이딩에 뜨거운 눈길이 추가되었는데 그런 시선이 이제는 별로 대수롭지 않았지만 초반엔 그녀들 덕분에 신나고 재밌는 에피소드를 생산해 내고 있었다. 왕초보였던 이우정은 이제 초고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남산 공식 스트라바 구간에서는 5분 대 중반의 기록을 가지고 있어 어지간한 남자들은 따라오지도 못할 정도였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별하와 한세아 역시 빠른 속도로 실력이 높아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실력이 그렇게 빠르게 업그레이드된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오승희와 김민경 덕분이었다. 두 사람은 띠동갑이 한참 넘은 나이 차이가 나서 모녀지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자매처럼 스스럼없이 지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달렸다. 벌써 35km 정도 달렸으니 좀 쉴 만도 한데 앞서가는 김민경은 좀처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별하와 한세아는 지쳤는지 페달링에 힘이 떨어지고 있었다. 힘들기는 이우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쉬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참고 버텨내는 것도 묘한 매력이 있었다. 곧 양수역이 코 앞이었다. 잠실에서 양수역까지는 논스톱으로 달리곤 했기 때문에 그녀들 모두 익숙한 코스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승희가 김민경에게 쉬었다 가자며 소리쳤다. 좁은 도로를 벗어나자 양수역 인근 카페와 편의점에는 자전거 동호인들로 인산인해 수준이었다. 그녀들이 양수역 쪽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은 자석처럼 쏠렸다. 여신급 라이더가 무려 다섯 명이 함께 나타났으니 야단이 난 것이다. 구석에서 수군대는 사람들의 대화는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다섯 명 모두 비슷한 복장이었지만 자전거는 가지각색이었는데 마치 선수들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초보가 아닌 이상 그녀들의 존재를 익히 들었던 사람도 있을 수 있었다. 이렇게 패션을 맞춘 건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소문이 빠른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서 은근히 소문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 많네~ 오늘 무슨 날이야?"

양수역 앞에서 클릿을 푼 오승희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동부 고개에서 대회라도 있어요?"

김민경도 황당한지 물었다.

"여기 남자사람선물 많네요. 별하야, 골라봐라~"

오승희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제발 좀, 여기서 제 이름을 부르면 어떻게 해요."

"걱정 마라. 니가 자전거 타는 걸 아는 사람이 있으면 언니가 성을 간다."

"성이요? 남성으로 바꾸시죠."

한세아의 말에 모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들에게 꽂혀 있었다. 대개는 고글 속에 숨어 무심한 듯 세세하고 꼼꼼하게 그녀들을 살피는 중이었다.

"대체 여기서 누굴 만나기로 한 거예요?"

한세아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봐도 아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런 그녀들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180은 충분히 넘어 보이고 져지 안으로 단단한 복근이 자리 잡고 있을 거라는 상상이 가능한 몸매였다. 검은색으로 온몸을 도배하다시피 한 복장에 초록색 미러 글라스 고글만 유별나게 튀고 있었다. 마스크와 고글 사이에 살짝 드러난 얼굴 빼고는 온 몸 어디에도 살색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왠지 멋져 보이면서도 약간은 부담스러울 수 있는 패션이었다. 누구나처럼 그녀들 몰래 몸매를 스캔하며 옆을 스쳐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남자는 오승희 앞에 끌고 오던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누나, 역시 오셨군요."

"당연하지! 내가 약속 어기는 거 봤니?"

"하긴! 칼이시죠. 그런데 다른 분들은 누구세요? 라이더 중에 누나보다 미인들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궁금해? 자신 있으면 고글 벗겨봐. 옷은 안돼!"

오승희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하여튼 언니!"

이우정이 소리쳤다. 다른 여자들은 이런 상황에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의 대화만 듣고 있었다.

"대충 쉬었으면 가자!"

오승희가 남자의 등을 때리며 말했다.

"어디요? 인사도 안 시켜주고 라이딩만 해요?"

이번엔 김민경이 물었다.

"일단 사람 없는 데 가서 얼굴을 까야하지 않겠어? 여기서 다 까발릴까? 니들이 원하면야 뭐. 난 상관없거든!"

오승희가 고글을 벗으려 들자 이별하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언니! 제발~"

이별하가 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

남자는 그녀가 누군지 눈치챈 듯 나지막이 신음했다.




매거진의 이전글<로드바이크 시즌3:사랑시> 4화-남자사람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