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바이크 시즌3:사랑시> 12화-두 개의 나

by 루파고

엄마는 나무 같은 존재다. 이별하는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속 안의 어떤 존재에 의해 가슴이 뭉개질 것만 같은 비참함을 느껴야만 했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거친 파도와 같은 마음을 한순간에 평정시켜 주었다. 엄마는 존재함만으로도 족한 존재라는 걸 새삼 느꼈다.

"엄마, 사랑해."

이별하의 목소리엔 약간의 슬픔이 배어있었다.

"무슨 일이야? 힘들어? 외로우면 오늘이라도 내려와."

"아니야. 괜찮아. 그냥 갑자기 엄마가 격하게 보고 싶어 졌어. 그래서 목소리라도 들어보려고 전화한 거야."

"엄마가 올라갈까?"

"아냐! 정말 별 일 없어. 딸이 엄마 보고 싶은 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 엄마도 외할머니 보고 싶을 때 있다고 그랬잖아."

"그랬지. 그런데 정말 별 일 없는 거지?"

"정말이야. 그냥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왜 갑자기 광주까지 가서 그래. 그냥 나랑 같이 살면 편한 걸."

"엄마는 외할아버지랑 있는 게 좋아. 외할머니 먼저 가시고 얼마나 적적하시겠어. 외삼촌들은 외국 나가서 잘 들어오지도 못하는데 엄마라도 곁에 있어야지. 그리고 그보다 너 연애 좀 하라고 엄마가 피해 준 거야. 너 아직도 남친 없어?"

"응! 아직... 이상하게 괜찮은 남자가 안 보여. 엄마가 구해주면 안 돼?"

"별 시답지 않은 소릴 하고 그래? 엄마 봐라. 외할머니 시키는 대로 결혼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니. 나중엔 정으로 살았지만 사랑 없는 결혼은 백해무익한 거야. 난 너 하나만 보고 살았는데 아마 너 아니었으면 진작에 니 아빠하고 헤어졌을 걸."

"내 생각엔 그렇지 못했을 것 같아. 엄마도 아빠 사랑했잖아."

"그건 후천적 노력에 의해 정이 쌓인 거지, 사랑하곤 멀다고 봐. 니 아빠와 나 사이의 정은 니가 매개체였던 거야. 넌 정말 널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해. 이왕이면 서로 사랑하는 사이여야 하고. 누구 하나도 서로 저울질할 수 없을 정도로 진정한 사랑 말이야. 그런데 오늘은 왜 사랑 타령이라니."

"엄마가 시작했거든!"

"그랬나?"

이별하는 스피커 너머로 엄마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아깐 잠시 무슨 감정이었는지 몰라도 격한 슬픔이 있었다는 걸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누구도 나를 떠난 적이 없는데...' 그녀는 자신을 다잡기로 작정하며 통화를 마쳤다.

이별하는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사라지려는 찰나 끄트머리를 간신히 부여잡았다. 내 안의 나, 나 아닌 나, 내가 아니려는 나. 이별하는 두 존재의 자신을 이리저리 굴려 가사 하나를 만들어 냈다. 왠지 힙 필이 나는 가사였다. 그녀는 식탁 위에 있던 빈 노트 하나를 들고 소파로 돌아와 무릎을 가슴까지 당겨 앉아 연필을 종이 위에 긁어대기 시작했다. 검은색 흑심이 거친 종이 위를 긁는 소리는 뇌에 묘한 파동을 일으켰다. 음표들은 가사와 어울리며 거칠거나 부드럽거나 고요하거나 험악하거나 하는 다양한 음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둠 속 빛, 고요 속 파동, 평화 속 파열 같은 묘한 흐름이 즉석 해서 그려지는 오선 속에서 거침없이 춤을 췄다. 그리고는 음표 아래로 방금 써낸 가사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이별하는 눈을 감고 가슴께까지 당겼던 무릎과 발을 흔들며 소파 가죽을 드럼처럼 툭툭 두드렸다. 불규칙적이면서도 묘한 리듬을 가진 박자에 맞춰 잘게 흔드는 머리와 짧게 묶인 머리카락이 공기 중에서 리듬을 탔다.



< 개의 나>

내겐 두 개의 혀가 있어
가슴에 깊게 하나 있고

머리에도 하나가 자라
녀석들이 한 개의 언어를 생성할 때마다
목젖은 언어를 둘로 갈라

하나는 머리로 또 하나는 가슴으로 보내지
둘 다 하나의 문장을 생성하는 것 같
하지만 녀석의 영역은 흐르는 물과 같아
하난 감성을 실어 나르고

다른 하난 본능을 추구해

난 음과 양의 경계를 두고

혀의 중앙에서 늘 언어를 쪼개
목젖이 팽팽히 일어서는 소리를 듣고
나의 언어가 움직임을 시작해
식도를 따라 붉은 강을 건너
나는 수긍과 반목의 교차점에서 디졸브 돼
그게 바로 나의 따순 가슴이야

너의 혀는 둘이 되는 것을 거부해
날카로운 돌기를 가르고

오로지 하나의 문장을 잉태해
내 가슴을 건너뛰고

빈 언어가 머리에서 협치와 비협치가 자라
너의 혀는 언제나 파시즘을 생성해
그게 너의 그리고 나의 머리야

두 개의 혀가 생겼어
나는 그걸 언제나 둘로 자라게 해
정렬된 예감을 따라 나누는 혀의 뿌리 속에
두 개의 언어가 문장을 생산할 때마다
끝나지 않은 붉디붉은 안부가

기어이 파생되고야 마는

그건 너와 나의 본질이었어



이별하는 종이와 연필을 소파 근처에 아무렇게나 툭 던져두고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방금 작사 작곡한 노래를 머릿속에 그리며 상상 속의 악기를 연주했다. 심오한 우주 속 무대 위에 선 그녀는 세상엔 없던 색과 모양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선이 몇 개인지도 모르는 선들의 산 위에서 신들의 계단을 뛰어넘듯 고무줄을 탔다. 그 선은 기타줄이 되기도 했고, 바이올린의 현이 되기도 했다. 빛은 조금씩 어둠으로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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