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이별하는 걱정 많고 소심한 아이였다. 어쩌면 이런 무모하다 싶은 국토종주를 단독으로 실천에 옮긴 걸 보면 대찬 성격일 수도 있다. 몇 달 전 혹은 며칠 전부터 계획했던 것도 아니고 잠을 자다 문득 떠오른 생각을 실천에 옮긴 걸 누가 믿으려 할까? 한참 페달을 밝던 그녀는 스스로도 모르는 자기 내면에서 충동질한 미지의 존재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기까지 했다.
익숙한 한강이지만 새벽녘 먼동이 트는 모습을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마침 날씨는 무척이나 맑아 동트는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기온 차이 때문에 춤을 추듯 나풀거렸다. 변색 고글이 빛을 막아주긴 했지만 점점 눈이 부셨다. 깊은 봄의 이른 새벽, 자연 속 도심이 이뤄낸 아름다운 광경은 체증을 내려앉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서울과 구리시 경계를 지나며 이별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폐 속 깊숙이 박혀 있던 찌꺼기들을 모두 긁어 뿜어버리고 싶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지금까지 다가선 적 없던 구석까지 파고들며 몽땅 끌어안고 나올 것만 같았다. 상쾌함을 넘어 아찔함에 이르렀을 즘 이별하는 심호흡을 멈췄다.
팔당대교를 건너 팔당댐을 향하는 길 옆으로 짙은 물안개가 자욱했다. 평소 보지 못한 풍경들이 익숙했던 장소들의 기억 위에 중첩됐다. 두물머리를 지나 양수역 앞엔 여느 때처럼 동부 고개 업힐 라이딩을 목표로 모여든 라이더 열댓 명이 삼삼 오오 모여있었고 역시 그녀를 향한 호기심 어린 눈빛을 감당해야 했다. 이별하는 라이딩을 멈추지 않았다. 벌써 40km나 달려왔지만 아직 쉬고 싶진 않았다. 경치 좋고 인적 드문 곳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고 싶었다. 이번 여행은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이길 바랬다. 그렇게 삼십여 분 정도를 더 달렸다. GPS는 50km를 달려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긴 거리를 멈추지 않고 달린 건 처음이었다. 국토종주를 나서기 전에는 체력 안배를 하며 조급하지 않게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며 천천히 달리고자 했었는데 초반부터 너무 무리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쓸데없는 상상이 이어질 즘 되어 자전거길은 데크가 깔린 예쁘장한 공원으로 향했고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공원이 나타났다.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몇 보였고 큰 나무 아래 깨끗해 보이는 벤치 하나를 발견했다. 자전거를 벤치 옆에 살짝 걸쳐 둔 후 장갑을 벗어 이슬이 내려앉아 축축한 벤치를 쓱쓱 문지른 후에 털썩 주저앉다시피 했다. 달려올 땐 몰랐지만 의외로 상당한 체력이 소진된 걸 알 수 있었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걸 다시 상기하며 에너지를 보충하고 충분히 쉬었다 가는 걸로 마음을 굳혔다. 이별하는 주변의 인적을 확인한 후에야 고글을 벗고 마스크를 턱 아래까지 내렸다. 상쾌함과 개운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벤치에 등을 기대자 피로가 밀려올 것만 같았다. 왠지 그대로 늘어져버리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도 들었다. 이별하는 종아리를 두드리고 주무르며 근육을 풀고 스포츠겔과 과일맛이 느껴지는 달달한 포도당 캔디 두 개를 씹었다. 눈을 감고 달콤한 맛을 한껏 음미하는데 멀리서 자전거 타이어가 데크 바닥을 마구 두드리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데크가 부딪치는 소리는 꽤 빠른 속도를 예상할 수 있게 했다. 감았던 눈을 뜨자 역시 노란색 로드바이크 한 대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갔다. 예사롭지 않은 페달질이었다. 양수역을 지난 뒤 동네 어르신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동호인 모양새를 갖춘 라이더는 처음 본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상당한 운동량을 가진 사람이 분명했다.
이별하는 스마트폰을 꺼내 전원을 켜고 현재 위치를 살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메시지가 쏟아졌지만 무시하고 지오 앱을 켰다.길치나 다름없던 그녀는 김민경에게 스마트폰 지도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국토종주를 할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 지도 위에 GPS를 이용해 자기 위치를 찾아낼 수 있어 지구 어디에 있어도 길을 잃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그런 기능을 몰랐다면 무모하게 나왔을 리는 없었다. 지도 위에 표시된 곳은 양평 물안개공원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위치를 확인한 그녀는 곧장 전원을 꺼버리고 말았다.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이별하는 마침 너무 예쁜 물안개 싶었던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곤 다시 주변을 살폈다. 가끔씩 한두 사람 지나가곤 해서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좀 더 한적해질 때까지는 최대한 자신을 감추는 것이 나을 거란 생각이 들어 다시 마스크와 고글로 무장을 했다. 역시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변장이 완성됐다.
자전거를 끌고 데크로 조성된 물안개공원 물가로 다가섰다. 마침 얼굴을 가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건 부부로 보이는 운동 복장의 젊은 남녀 한 쌍이 물안개공원에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그녀는 사람이 없다면 마스크를 벗고 맨 얼굴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려 했는데 역시 포기하고 말았다. 이별하는 그들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똑딱이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몇 컷 담고 난간에 기대 물안개 가득한 강변의 모습을 감상하며 풍경도 담았다. 물안개가 만들어낸 몽환적인 경관은 그녀의 마음을 잔잔하게 다스리는 듯했다. 멀리 안개 위로 뾰족 뾰족 솟아난 산줄기는 수묵화 같은 우직하고 든든한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었다.
"저기, 사진 좀 부탁해도 될까요?"
그녀의 감상을 깬 건 멀찍이 떨어져 있던 두 사람 중 여자의 목소리였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여자는 벌써 한 발 앞까지 성큼 다가서 있었다.
"죄송한데요. 저희 두 사람 사진 좀 부탁드릴게요. 오늘 풍경을 놓치긴 싫어서요."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부탁하고 있었다.
"네~"
이별하는 신경 써서 목소리를 조절해 대답했다. 누군가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걸 원치 않아서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약간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아~ 또... 가수 이별하씨 말씀하시려는 거죠? 그런 이야기 많이 들어요."
이별하는 순발력을 발휘했지만 여자가 믿어줄지는 의문이었다.
"부러워요. 목소리도 예쁘시고 몸매도 부러울 정도로 예쁘세요. 진짜 이별하 씨라고 해도 믿겠는데요."
"마스크 벗으면 후회하실 말씀을 하시네요. 사진 찍어 드릴게요. 어떻게~"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사진 촬영을 서둘렀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별하는 친절하게 사진 세 컷을 촬영해 준 뒤 고맙다는 인사로 뿌리치며 자전거를 끌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등 뒤로 남자의 작은 목소리가 확성기로 말하는 것처럼 귀에 꽂혔다.
"이별하 맞다니까. 요즘 자전거에 꽂혀서 한강에서 자주 보인다고 그랬어."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시간에 서울에서 여기까지 혼자 어떻게 와?"
"그렇긴 하지만 목소리가 똑같잖아. 다른 목소리 내려고 이상하게 흉내 내는 것도 웃기고 말이야."
"그럼 내가 가서 확인하고 올까?"
이별하는 걸음 속도를 높였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그들의 목소리는 라디오 볼륨을 줄인 것처럼 확 줄어들었지만 그다음 대화는 들리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별하가 맞다니까! 확실해!"
자전거길이 닿자 그녀는 재빨리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음에도 그녀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젊은 남녀는 이미 그녀가 이별하라는 사실을 눈치채고도 남았을 행동이었다.
물안개공원을 벗어났지만 그녀 뒤로 그들의 이야기가 이어져 들려오는 듯했다.
"그런데 혼자 무슨 일이지?"
"여자가 혼자 겁도 없어!"
"애인한테 버림받은 건 아닐까?"
"이별하가 남자 사귄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는데?"
"연예인들 속을 누가 어떻게 알겠어? 숨겨둔 비밀 애인이라도 있을 거야."
"하긴, 이별하도 사람인데 섹스도 안 하고 살기야 하겠어?"
"그렇지? 우리 저기 숲에서 해볼까?"
이별하는 엉뚱한 상상으로 흘러간 자신의 생각을 떨쳐버리려 머리를 흔들었다. 물안개공원을 벗어나 얼마를 달렸는지는 몰라도 자전거길엔 짙은 물안개와 그녀뿐이었다. 배가 슬슬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을 달리자 멀리 벤치 옆에 자전거 한 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노란색 자전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