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의 생명의 한 형태(문학세계사, 2011)에 대한 서평
평점: 4/5
두줄평: 우리의 몸에는 맥락이 없다. 멋진 맥락과 이유 없이도 우리의 몸은 우리의 인생을 대변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나의 가식을 반성하며 이 글을 내가 사랑하는 두 명의 뚱보에게 바친다.
*스포일러 그 자체인 서평입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읽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생명의 한 형태'는 아멜리 노통브와 바그다드에 주둔 중인 미군 멜빈 메플이 주고받는 편지에 의해 진행된다. 이라크전을 이 좆 같은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미군 멜빈 메플과 편지로 우정을 쌓으며 아멜리 노통브는 그가 앓고 있는 병을 알게 된다. 그는 폭식을 반복했으며 심각한 비만 상태였다. 가난과 배고픔이 싫어 군 입대를 선택했던 멜빈 메플은 터지는 폭탄과 총, 그 소리에 맞춰 터지는 이라크 사람들과 자신의 동료들을 지켜봐야 했다. 돌격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온 뒤면 그는 넋이 빠진 채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또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자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어치웠다. 멜빈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들도 자기 학대 행위에 동참했고 그렇게 부대 내에는 비만증이 퍼졌다. 멜빈은 바그다드에 주둔 이후로 130kg이 늘었다.
멜빈은 자신의 비대한 살 자체가 전쟁을 치르며 겪은 죄책감이라 말한다. 거대한 무게를 짊어짐으로써 자신이 죽인 이라크인들의 무게를 느끼며, 실제로 가끔은 비대해진 몸뚱아리가 자신의 몸이 아닌 타인(이라크인)의 몸처럼 느껴진다 말한다. 몸이 갑자기 변하면 어둠 속에 가만히 떠 있는 뇌는 거울에 비친 급격히 변한 몸을 자신의 몸으로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의 뇌도 바뀐 몸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데, 타인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람은 잔인하게도 타인의 몸을 굉장히 쉽게 재단한다.
전쟁이나 사고로 얻게 된 장애, 너무 빨리 흘러가버린 세월로 인한 노화, 학업이나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 우리는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물질세계를 살고 있다. 그 때문에 몸이 원치 않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하고 살아간다.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타인의 몸을 함부로 평가하고, '자기 관리'와 '자기 계발'이라는 끔찍한 단어를 앞세워 타인이 그 몸을 가지게 된 맥락을 철저히 무시한 채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의 몸을 인성의 결함 혹은 노력 부족으로 취급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100% 통제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진 채 비정상적이라 취급되는 몸을 가진 사람의 인생을 쉽게 무시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비만은 때론 장애보다 더 큰 무시를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평화로운 한국에서는 별 다른 이유 없이 그저 많이 먹고, 덜 움직였기에 비만한 상태가 된다. 즉, 한국의 비만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특별한 이유 없이 대다수가 경험하는 일반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과식 혹은 그저 비만해지기 쉬운 생활 습관 때문에 뚱뚱해진다. 한국에서 비만은 합당한 맥락을 부여받기 어렵다.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비만은 장애나 노화보다 더 큰 무시를 받는다. 한국의 비만인들은 결코 멜빈 메플의 '이라크전' 같은 매력적인 이유를 가질 수 없다. 갑상선 이상이나 당뇨 혹은 출산으로 인한 비만 정도가 이해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그마저도 출산은 요새 잘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멜빈 메플도 한국의 뚱보들처럼 사실 맥락 없는 뚱보였다. 그는 볼티모어 교외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정비소 창고에 박혀 홈페이지 제작으로 벌어먹고사는 아무 이유 없이 비만해진 뚱보였다.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군들 사이에 비만증이 퍼지고 있다는 기사(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7379)와 독자들이 보낸 편지에 다 답장을 한다는 아멜리 노통브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는 '이라크전'이라는 이유를 가진 비만한 군인들이 부러웠고, 동시에 비만한 주인공을 자주 등장시키곤 했던 아멜리 노통브의 관심을 끌고 싶어 이런 일을 벌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반전에 큰 충격을 받았고 나를 속인 아멜리 노통브에게 분노했다. 나는 '이라크전'이라는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멜빈 메플을 이해하며 타인의 몸에 어떤 맥락이 있을지 모르니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좀 더 나은 내가 된 것 같다며 뿌듯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멜빈 메플에게 맥락은 없었다. 이라크전이 그의 히키코모리 생활과 비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의미하는 메타포일 수는 있지만 그저 메타포일 뿐이다.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느끼는 순간 이 역시 기만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하는 잔인한 여자 같으니라고, 이 따위로 깨닫게 하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아멜리 노통브는 나를 마땅한 이유 없이는 타인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편협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를 편협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는 '모든 작가들 안에는 사기꾼이 한 명씩 들어앉아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같은 분야의 동료로서 당신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는 거예요.' 라며 멜빈 메플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재능을 칭찬하는 아멜리 노통브의 편지를 읽을 때는 어질어질했다. 아멜리 노통브라는 사기꾼에 의해 나는 나의 가식과 부족함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재능 있는 사기꾼 같으니라고! 그래도 나는 결국 화를 가라앉혀야 했다. 아멜리 노통브가 자신의 가식과 나약함 또한 솔직히 인정하며 밝혔기 때문이다.
멜빈의 거짓말을 알게 되고 이 모든 사건에 감동받은 그녀는 멜빈 메플에게 전화해 당신을 보러 미국에 가겠다고 말한다. 멜빈 메플도 감동하며 공항으로 마중 나가겠다며 자신이 집 밖으로 나가는 건 일생일대의 사건이라 강조한다.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아멜리 노통브는 문득 두려움을 느낀다. 편지 몇 통 주고받은 친구와 워싱턴에서 볼티모어로 향하는 기차에서 무슨 얘기를 할 것이며, 할 말이 없으니 그 친구의 살을 멀뚱멀뚱 볼 수밖에 없으리란 지극히 현실적인 걱정이 그제서야 들었던 것이다.
편지를 읽는 행위로 서로를 만나는 것과 신체를 직접 대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글을 읽고 쓰는 자아는 육체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자아와 상당히 다르다. 글을 읽고 쓰는 자아는 혼자이기에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보다 쉽게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육체를 가지고 만나는 순간 우리는 물질세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아무리 강한 의지와 결심도 맛있고 따뜻한 음식 한 접시에 무너지곤 한다. 이토록 물질은 강력하다. 아멜리 노통브는 비행기 착륙 직전 나눠주는 입국심사서를 받고는 고민한다. 그녀는 테러 조직 소속 여부와 화학 및 핵무기 소지 여부를 물어보는 질문에 모두 '네'라고 체크한다. 나의 가식과 모자람을 깨닫게 한 아멜리 노통브는 사기꾼 다운 방식으로 자신의 가식과 나약함 또한 나에게 내보였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일상생활을 소화하는 나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다. 방구석에서 만큼은 난 어떠한 편견도 없는 깨어있는 시민이 된다. 방구석이기에 가능한 선민의식이며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나는 물질과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는 그저 그런 대중이 되고 만다. 타인의 몸과 인생을 함부로 평가하고, 멋진 맥락과 이유 없이는 그 무엇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편협한 사람이 된다. 방구석에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타인의 헛소리도 육체를 대면하고 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만다.
나는 그나마 방구석에서 제일 괜찮은 사람인데 이 순간에 나 자신의 모자람을 마주하게 한 아멜리 노통브가 원망스럽다가도 소설 말미의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또 마음을 풀게 된다. 아멜리 노통브 덕에 좀 더 굳게 다짐해 본다. 타인의 몸과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야지. 어차피 모두 시시한 인생을 살고 있으니 멋지지 않은 타인의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물에 대해 어떠한 평가도 하지 말아야지. 그냥 있는 그대로 어떤 맥락도 이유도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지. 이런 다짐이 얼마나 갈련지 자신이 없다. 서평 모임을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또다시 물질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