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봐
우리 세 가족은 크리스마스를 그랜드 워커힐에서 보냈다. 호텔에 산타 키즈 빌리지를 만들어 놨다고 해서였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아내는 워커힐 산타 마을에 핀란드 정부 공인 산타클로스를 보고 싶어 했다. 다만 가격이 꽤나 높아서 ‘그 돈이면 씨~’ 이러다가 가지 못했었다. 이상향은 마음에 두는 게 아름다운 거라는 얘기도 했지만 유물론자 이정옥은 두 눈으로 산지에서 직송된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 했다. 원래 성 니콜라우스는 튀르키예 지역 사람인지라 북유럽 애들이 하는 짓은 원산지 위조라고 말을 해봐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실 갈 수 있게 된 것은 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였다. 존경하는 장인어른이 로또 3등에 당첨되신 거였다. 아버님은 현금을 세 딸에게 흰 봉투에 담아주셨다. 아버님은 젊으실 적에는 가정에 좀 무심하셨다고 했는데 40여 년이 지난 후 딸들에게 산타로 돌아오셨다. 결과로 증명한 것은 덤이었다. 당연하게도 아내에게 그 돈은 산타 값이었다.
우리 가족은 호텔에 짐을 풀고 산타 버스를 기다렸다. 아이들이 꽤 많았다. 재하는 나이 많은 축에 속했다. 아마 재하보다 더 머리가 굵은 아이들은 산타 보러 갈 돈으로 아이폰을 사주는 것을 더 선호하겠다란 생각을 했다
“아빠, 산타는 한 명 아니야? 여기 있으면 어떻게 선물을 줘?”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 딸아. 산타가 한 명이면 그 선물을 어떻게 다 나눠주겠어. 모르긴 몰라도 수만명 쯤은 될 거야. 그중에 하나가 여기 와있는 거지”
미취학아동의 상식에도 그 이치가 타당했는지 재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철이 일찍 들은 아이였다면 누군가 자기에게 공짜로 선물을 줄 리 없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재하는 온 가족의 아이돌이었으므로 본인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접수를 하면 카카오톡으로 산타 만남 번호가 온다고 했다. 산타는 자리에서 결혼식 신부 마냥 대기실에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미국, 영국, 아일랜드 등의 성탄절 풍습이라는 카드 쓰기, 왕관 꾸미기 같은 것을 하며 알현을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 장막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산타가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는 꽤 그럴싸해서 네이티브는 다르구나 했다. 딴에 산타에게 친한 척해볼까 하며 ‘she’s been waiting to meet you~’ 같은 걸 생각해왔지만 그런 말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아이돌 팬 사인회 마냥 매니저들이 ‘여기 서실게요, 사진 찍으실게요, 손 흔드실게요’를 외치면 지시에 따라 바로 움직였다.
산타가 주는 미니 텐트를 들고나와서 주최 측에서 주는 코코아를 마셨다. 재하는 재밌었다고 했다. 이따 방에 와서 저 산타가 선물 주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선물 주면 들고 갈 때 손 시려울까 봐 그런가?”
“산타들이 같은 시간대에 선물을 나눠줘야 하니까 정해진 시간이 있을거야”
이 역시 일곱 살 여아의 통념에 맞았다. 재하는 군소리 없이 버스를 타고 산을 내려갔다.
저녁은 워커힐 금룡에서 코스요리를 먹었다. 아버님은 중식을 좋아하는 막내 사위에게도 산타셨다. 이제 금룡도 가봤다고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십 년 전 백수로 쭈뼜쭈뼜 처가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별다른 말씀 없이 인자하게 웃으시며 당신 방으로 로또 하러 들어가셨을 때부터 사실상 나에게는 산타이시기는 했지만 아름답고 축복받은 이날 그의 사랑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산타 앱에서 산타는 이미 출발했다. 스마트폰에서 산타가 음속으로 캄차카반도를 가로지르고 있으니 재하는 어서 자야 했다. 그래야 우리가 몰래 감춰와서 금고에 넣어둔 선물을 꺼내 포장할 수 있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봤다고 다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내년에 가르쳐 주기로 했다. 다리를 열심히 주물렀다. 재하 엄마도 도와주다 자기가 피곤했는지 돌아누워버렸다
“엄마가 다리 주무를 때마다 진짜 내 엄마인가 싶어”
재하는 칭얼거리다 이내 잠이 들었다. 포장에는 자신이 없어서 아내를 깨울까 했는데 너무 잘 자는 것 같아 뒤통수에 일어나라는 텔레파시만 보냈다.
좀 이따 아내는 부스스 일어났다. 선물은 재하가 올해는 자기가 7살이니 7개쯤 받으려나 했던 말에 따라 선물은 7개였다. 비싼 것은 아니고 재하가 좋아하는 시나모롤 캐릭터가 있는 메모지, 그림 그리기 등이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어 스플렌더 보드게임을 하나 사서 넣었다. 개별 포장은 포장지 부족으로 못하고 일괄로 동여맸다. 호텔 문 앞에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재하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선물 수색을 시작했다. 곧 선물을 찾아내 풀었다.
“와~ 다 시나모롤이네”
“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다 아시는구나”
“그런데 난 시나모롤 마이크를 갖고 싶다고 했었는데. 편지도 썼어”
재하 엄마와 나는 서로 눈만 굴렸다. 하지만 받은 것을 가지고 놀고 싶었는지 ‘그건 그냥 아빠가 사주면 되지’라고 하며 시나모롤 스티커를 떼기 시작했다.
“아빠, 우리 내년에도 또 올까?”
“우리 할아버지를 다시 한번 믿어보자”
집에 돌아왔다. 누가 치워주는 방, 누가 빨아준 이불, 누가 차려준 밥을 먹다 돌아오니 현실이었다. 짐을 주섬주섬 풀다 보니 재하가 써놓은 편지가 식탁에 놓여 있었다. 정말로 ‘산타 할아버지, 시나모롤 마이크를 갖고 싶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크게 외쳤다.
“아아~ 편지를 집에다 두고 갔구나. 호텔에 가져갔어야 했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못 보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