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생존 영어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이 곳 사람들의 영어 습관을 주의 깊게 보게 된다. 어떤 착한 의도로 주의 깊게 본다기 보다는, 내 영어가 부족하다 보니 그래 너희들은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의도로 약간 시샘 반, 부러움 반으로 경청을 하게 된다.
내가 그들의 영어 패턴에서 가장 부러움을 느끼는 점은 현재완료, 과거완료 등 동사의 완료 시제를 거침없이 써대는 것이다. 그 덕분에 말하는 내용에 깊이가 있어 보이고 고급져 보인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이렇게 과거나 미래의 시간을 딱 구분해서 표현하는 서술어가 영어만큼 발달해 있지 않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완료 표현을 쓰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과거형을 써버리거나, 약간 머리를 굴려가며 시간의 흐름을 구분한 다음 버벅거리면서 현재완료, 대과거, 과거완료 등의 표현을 쓰게 된다.
물론 언어는 세계관의 표현이고, 이 곳 사람들의 언어 세계관과 나의 언어 세계관이 완전 다르니 이해가 된다. 가령 영어는 주어 동사 중심이고 우리말은 서술어가 맨 뒤에 나오는 구조라던지, 영어에 존중 표현은 있어도 높임 표현은 없지만 우리말에는 높임 표현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들의 영어 습관 특히 스피킹 할 때 한 가지 힘을 얻는 게 있다. 바로 완벽한 문장으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이 곳 사람들은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을 그 상황에 맞게 툭툭 한다. 형용사가 필요하면 형용사만, 명사가 필요하면 명사만. 완벽한 문장이 필요하면 완벽한 문장을.그런데 나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하나를 주문할 때도, 친구랑 이야기를 할 때도, 교실에서 발표를 할 때도 그 놈의 완벽한 문장이라는 틀을 깨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표현이 어색해지고, 말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분위기는 어색해지고, 내 머리는 아파오고, 영어가 재미 없어진다. 나 뿐 아니라 외국인 만나는게 두렵다는 사람들도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완벽한 영어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라는 어떤 고정관념에는 2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번째 이유는 여태 한국에서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영어는 대부분 어떤 시험의 형태다. 학교 시험, 수능, 토익, 편입, GRE, 공무원 영어, EBS 등이 대표적이다. 미드, TED, 뉴욕타임즈, 아리랑, CNN도 우리는 하나의 콘텐츠라기 보다는 영어 공부에 필요한 정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나도 하우스 오브 카드를 영어 공부하려고 보진 않았으니)
그래서 우리에게 영어는 일상 생활을 위한 가벼운 대화 수단이라기 보다는 grammar라는 율법을 동반한 부담스러운 시험 문제처럼 느껴지는게 아닐까. 여태 공부해왔던 바이블대로 말해야 마음이 편한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말을 할 때 공손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말은 높임 표현이 발달해 있고 사회 구조도 상하 관계가 뚜렷하다. 예절이 중요하고, 이를 어기면 마음이 불편하다.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반말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내가 이 글에서 우리의 이런 문화가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사상적, 문화적 배경 때문에 영어를 말할 때도 어떤 공손함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유발되서 완벽한 문장 형태를 고집하게 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는 경우다. 내 머릿 속에서는 본능적으로 Can I get a bigmac? 혹은 Could I buy a bigmac? 이라는 문장이 떠오르며 계산대로 접근한다. 가끔 I'd like to buy a bigmac. 이라는 문장도 떠올린다. 그리고 나서 음...그래 시제 안 틀렸고 a 안 빼먹었고. 저 직원도 내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잘 들었겠지라는 생각이 뒤를 잇는다. 그런데 앞뒤 다 자르고 그냥 bigmac please라고 해도 말은 통한다.
친구에게 날씨 좋아서 공원에 놀러가고 싶다는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날씨를 말할 때는 가주어 it을 쓰거나 we를 써야된다고 했지. 그리고 공원'으로' 놀러가는 것이니 전치사는 to를 써야겠지'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It's a good weather today, so why don't we go to park? 라고 말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본능적으로 이런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면 매우 행복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냥 어깨 힘 빼고 good weather, let's go park!라고 해도 된다. 다 통하고 예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어떤 공적인 상황에서까지 이러면 안될 것이다. 우리말도 그렇듯이. 다만 내가 오늘 오답노트에 남기고 싶은 말은 공손해야 한다는 관념과 한국에서 배웠던 시험영어에서 비롯된 일종의 고정관념을 생활 영어에서까지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 영어는 시험이 아니다. 그냥 도구다. 내가 즐겁기 위한 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