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 엄마는 내 남편

두 여자의 집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옹다옹 일상 돋보기


내 나이가 몇 살이더라.

 자주 까먹는다.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서른두 살이나 세 살 때까지만 나이를 세고 그 이후는 세지 않는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 진행자는 사람들이 그 나이까지의 자신의 모습만 인정하고 싶어서 이후의 나이는 일부러 세지 않는다는 설명을 더했다.

 나도 그 언저리에서 생각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서른세 살의 나는 떠나는 배 위에서 바라보는 부둣가 사람처럼 멀어져만 간다. 한국 나이로 서른다섯 살이 됐다. 반올림하면 불혹.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데 나는 매일 혹하며 산다.

 어쩌다보니 결혼에 대한 기대는 산산이 깨어졌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이별은 잔혹했다. 색을 칠하면 암흑이고 향을 맡으면 썩은 생선 냄새 정도 될까. 서로를 할퀴다 못해 조각내고 해체하며 끝났다. 서로가 닮았다며 운명이라던 두 사람이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를 따지며 함께 한 시간을 잊자고 하는 것. 나는 사랑의 말로가 이것과 다르지 않다고 믿게 됐고 두려워졌다. 소개팅을 해주겠다는 지인에게 대답을 주저하는 첫 번째 이유는 직관적으로 느끼는 '과분한' 나이이고, 두 번째 이유는 사랑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다.

 신은 그런 나에게 잔인하게도 쓸데없는 욕망을 주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이를 여럿 낳고 싶다. 아이 봐주는 이모님께 자신의 월급을 통째로 전해드린다는 친구 1, 아이를 낳았지만 커리어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자신이 죄스럽다는 친구 2, 8개월 된 아들을 두고 힘들게 대학원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는 친구 3이 육아 스트레스를 토로할 때, 미혼인 내가 육아의 기쁨을 강조하는 게 나도 이상하게 들린다. 낳아놓으면 어떻게든 자란다고, 아이들이 커서 보은 할 거니 20년만 고생하라며 친구들을 달랬다. 이렇게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이유는 단지 가족이 더 생긴다는 게 부러워서다.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자신 없는 내가 출산 예찬론자가 된 이유는 가족이 적어서이다. 가족과 관련해 비밀 하나씩 없는 집이 어딨겠냐만은, 내게도 가족은 아픈 손가락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10대 후반의 어느 날, 아빠가 큰 가방을 들고 집을 떠났다. 아빠가 떠나자 할머니, 작은 아빠, 작은 엄마, 사촌 동생도 우리를 떠났다. 때로는 내가 그들을 떠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 오빠, 나만 남아 십수 년을 살다 5년 전 오빠가 결혼한 뒤에는 엄마랑 나만 한 집에 산다.

 덕분에 조숙했고, 인생에서 아픈 순간을 만나면 덮으려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외로움은 덮을 수가 없었다. 명절이 참 싫었고 지금도 싫다. 공부하고 일하고 밥 먹고 누구나 비슷하게 사는 평범한 하루는 쉽게 잊혔지만, 가족들이 모여야만 할 것 같은 명절이면 긴 연휴 내내 무료하고 쓸쓸했다. 그렇게 가족이 많은 사람들이 늘 부러운, 결핍을 느끼는 어른이 되었다. 

 그런 내가 정작 좋은 남자도 못 만나고 가정을 이룰 자신이 없다니, 신도 야박하시지. 

인생이 서글프다 느껴질 때면 입술을 입 안으로 말아 넣고 삐져나오는 슬픔을 다시 아래로 내려보낸다.

 서른다섯의 봄. 앞날은 모르는 것이지만, 혼자 잘 살아볼 생각을 하다보니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 아니 되어야 할 것같다. 더 늦으면 결혼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나와 어울리는 좋은 남자를 못 만나서 안 하는 거뿐이라며 내 선택을 의심하지 않기로 한다.내 삶을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않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기로 했다. 짚신도 짝이 있다지만, 짝 없는 짚신도 있을 수 있다. 또 그 삶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엄마는 나의 하나뿐인 식구이다. 나의 보호자였다가 나의 친구가 되었고 다시 내가 보호할 사람이 되었다. 엄마랑 둘이 산 지가 5년이 되어가니 가끔은 내가 엄마의 남편 같고 엄마가 내 남편 같다. 한때는 한 몸이었지만 지금은 외모도, 성격도, 취향도 전혀 달라진 모녀지간. 종종 다퉈서 더 부부같은 걸까.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나는 엄마를 관찰하는 것이 꽤 중요한 일상이다

 나는 조용히 책 읽고 영화보고 글쓰는 것이 인생의 낙이며(참 재미없다) 이제는 혼자 살고 싶은 7년 차 신문기자다. 엄마는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딸을 부르며 하루 일과를 다 이야기하는 소녀같은 예순다섯 살 젊은 할머니다. 오늘도 머리 큰 딸은 엄마를 해석하려 들고, 엄마는 나를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초등학생처럼 대한다. 하루가 평온할 리가 없다. 그래도 서로가 있어 재밌고 포근하다. 함께 나이드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