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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엄마의 숫자

두여자의 집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옹다옹 일상 돋보기


“뗄렐렐레레레레-”

 조용한 주말 오후의 정적을 깨는 우렁찬 기계음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소리다. 요즘에는 거의 세상에서 가장 싫을 정도다. 그놈의 집 전화가 울리면 평화는 와장창 깨어진다.

 엄마 말을 전한다면 “까시락(‘까끄라기’의 전라남도 방언, 벼나 보리 등의 낟알 겉껍질에 붙은 수염이나 수염 동강. 그만큼 내가 엄마를 귀찮게 하는 존재라는 엄마의 생각이 반영된 나름의 애칭)한 성격의 나는 벨소리를 들으면 한숨부터 나온다. 앞머리가 팔랑거릴 정도의 숨을 푹푹 쉬며 방을 나선다.

 우리 집 거실 중앙에는 지역번호 02로 시작하는 8자리 숫자의 집전화가 있다. 몇 년을 쓴 건지도 모를 투박한 회색의 전화기는 음량을 조절하는 버튼 따위는 애초에 없었는지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게 운다. 누구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왔는지 설레면서 확인하던 발신자 표시 화면은 먹통이 된 지 오래다. 물론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소음유발 구식 전화기의 교체를 매번 내일로 미룬 '이 집안의 (경제적) 가장'인 내 책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유선전화가 집에 있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새 전화기를 살 생각이 없는 편에 가깝다. 벨이 울린 어느 날도 전화기 관리자에게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요즘 누가 유선전화로 전화해? 이거 빨리 없애자니까.”

 앞으로 이 글을 쓰면서 자주 보게 되겠지만, 나는 밖에서는 소심하면서 엄마 앞에만 서면 용감해진다. 기자질 7년에 배운 건 흠잡는 거요, 따지는 거요, 생각이 다른 남들 설득하기라 이렇게 됐다고 변명하고 싶다. (사실은 내 의견에 동조할 것을 강요하기에 가깝다) 집전화가 없어도 되는 이유에 대해 '따박따박' 근거를 대기 시작했다.

 “엄마도 스마트폰 있잖아. 사람들에게 그 번호 알려드려. 요즘 유치원만 졸업해도 손에 안심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이야. 젊은 사람들은 명함에도 사무실 유선번호 잘 안 적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발달된 통신망을 가진 나라에 사는데 왜 아직도 유선전화를 써. 시대가 달라졌으면 다른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 거야. 어디에 있어도 연락되라고 만든 스마트폰 하나면 되잖아. 요즘은 여론조사도 유선전화는 응답률 떨어진다고 해서 스마트폰으로 해야 신뢰받는데. ”

 논리 있는 척하다 보니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순간적으로 '까시락'의 신경이 예민해졌음을 눈치챈 엄마가 사뿐사뿐 걸어와 전화선을 뽑으며 말했다.

 “아이 참, 누가 그렇게 꼭 휴일에 전화를 해. 성당 그 형님인가? 나만 있을 때는 하지도 않으면서.”

 이것은 내 말은 듣지 않겠다는 엄마만의 오래된 기술이다. 엄마가 ‘파르르’ 골이 난 나를 맞춰주는 것은 일단 내 입부터 막자는 것이고, 서늘해진 공기를 조금 훈훈하게 데운 뒤 다시 전화선을 꽂겠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다툼이 매 주말마다 일어날 리가 없지 않나. 그렇게 현실은 수년째 엄마 뜻대로 계속되고 있다. 나는 항상 엄마한테 짜증을 냈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안고 잠든다.

 문득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우리 모녀는 주로 출근 전 아침을 같이 먹으면서 대화를 몰아하는 편이다)

 “엄마는 집전화를 왜 안 없애려고 해? 전화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어?”

 “너네 어릴 적에 알던 사람들은 다들 이 번호를 아니까 그렇지.”

 엄마가 집 번호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20년 넘게 쓴 번호를 허공으로 날려 보내기 싫어서가 가장 컸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사람들, 나는 기억도 못 하는 나와 오빠 친구의 엄마들, 친가 사람들이 이 번호를 알고 있다는 이유였다. 생각해보니 이 번호는 우리 가족과 함께 한 세월이 꽤 된다. 뒷번호 4자리는 처음 우리 가족이 휴대폰을 샀을 때도 사용했던 번호다. 집 현관 비밀번호의 일부이기도 했고, 엄마가 사용하는 포털의 비밀번호 중 일부이기도 했다. 우리 식구만의 암호 같은 거였다.

 "이렇게 오래 쓴 번호를 다른 사람들이 다시 쓰는 것도 싫어."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나는 앞으로 내가 집전화를 없애자는 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느꼈다.

 물론 여전히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부동산 투자하라거나, 서울시장 선거 관련 여론조사에 응해달라거나, 잘못 걸려온 전화 등이 전부다. 하지만 엄마가 간직하고 싶은 숫자라는데, 실용과 시대를 따질 필요는 없어졌다.

 대신 그동안 쌓인 화를 풀기 위해서 나는 새 전화기를 주문했다. 발신번호가 표시되고 음량 조절 잘 되는 걸로. 그리고 저 회색 요물을 아파트 분리수거함에 집어던져버릴 테다.

새 전화기. 소리가 알맞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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