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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이도와 춘천

<두 여자의 집>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옹다옹 일상 돋보기

 엄마는 좋은 여행 파트너이다. 5년 전인가 엄마와 부산-고흥을 다녀온 게 둘이 함께 한 첫 여행이었던 것 같다. 고흥은 엄마 고향이다. 내가 우겨서 나로우주센터를 갔고 엄마가 원해서 시내 속옷 가게에서 속옷을 샀다. 엄마는 그 속옷을 아직까지 입으며 '고흥서 산 속옷'이라고 그때를 추억한다. 그리고 지난해 삿포로와 홍콩에 다녀왔다. 북한보다 위도가 높은 홋카이도의 맑은 하늘, 화려한 홍콩의 밤을 함께 봤다. 엄마랑 여행을 갈 때마다 추억이 쌓인다. 

 혼자 여행을 할 때와 둘이 할 때의 차이는 꽤 크다. 나는 아니고 남도 아닌 거리에 엄마가 있다. 내가 아니니 배려를 해야 한다. 계획 단계에서부터 그렇다. 보통은 엄마가 하고 싶은 걸 다 한다. 물론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걸 끼어넣는다. 하지만 가이드인 나는 엄마의 걸음 속도, 엄마의 취향, 엄마의 몸 상태 등을 신경 쓰며 여행 동선과 일정을 짠다. 엄마와의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곤 한다. (사실 난 영화보기, 밥 먹기, 영화보기 등 모든 여가생활을 혼자 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 여행의 목적은 항상 같다. 혼자서도 밖에 잘 돌아다니는 내가 집에만 머무는 엄마에게 효도를 하기 위한 시간이다. 엄마는 차 타고 여기저기 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렇지 못하고 있다. 나는 운전을 아예 못 하고 엄마는 시내운전만 한다. 운전을 못 하는 딸 때문에 우리의 여행은 항상 버스와 기차, 택시를 타고 다녀야 한다. 아무튼 멀리 가서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엄마 사진도 찍어드리는 게 여행의 유일한 목표다. 딸이랑 같이 다니면 아이가 되는 엄마 모습을 보는 게 나도 싫지 않다. 또 하루를 살아야 하는 책임감 같은 게 생긴달까, 내가 돌봐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는달까 암튼 그렇다. 

2018년 9월26일 춘천. 찬란한 가을이 좀 더 오래가길 바란다. 

 추석 연휴의 막바지 엄마와 나도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 첫날 우리는 우선 오이도로 조개를 먹으러 갔다.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외곽으로 가는 길은 여유로웠다. 지하철만 탔을 뿐인데 엄마는 창 너머 아파트 단지며 논밭이며 목을 돌려 창밖을 구경하느라 근육이 뭉쳤다고 했다. 나는 500페이지짜리 정치 관련 책을 읽느라 바빴다.  

 엄마와 조개구이를 먹고 돌아오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오이도로 중국인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점이었다. 식당이며 부두 위며 중국어, 북쪽 사투리가 많이 들렸다. 식당에 물어보니 시흥이나 안산 등 외국인 거주지가 가까워 휴일이면 많이들 찾는다고 한다. 차와 사람으로 뒤엉킨 오이도를 떠나 역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봤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는데 그날 방송 뉴스에서 시흥 시화공단의 한 공장에서 중국인 노동자가 방화를 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이 엄마와 나의 오이도 여행을 잊지 못할 날로 만들었다. 

 다음 날에는 춘천을 다녀왔다. 집 앞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편하게 다녀왔다. 공지천 물 위에 떠있는 풍차에서 닭갈비를 먹고 공지천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며 의암호를 바라봤다. 한국의 가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고작 그거밖에 안 했는데 엄마는 내게 카톡으로 "고마워"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여전히 버스 안에서 정치 책을 읽느라 바빴지만 엄마의 환한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연휴가 끝난 게 믿어지지 않는다. 나 하나 건사하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두려운 것도 많지만 엄마와 여행을 하고 나면 늘 배우는 게 있다.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효녀라는 거다. 이 찬란한 가을이 조금 더 오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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