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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핸드폰이 쓰레기장?

두 여자의 집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웅다웅 일상 돋보기


 지난해 여름 휴가는 일본 삿포로로 다녀왔다. 엄마와의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여행 가기 전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행 때 이야기로만 몇 회의 글은 쓸 수 있을 것같다. 오늘은 여행 가기 전 날의 이야기 중 하나를 꺼내놓으려 한다.

 ‘오늘 밤에는 엄마 핸드폰을 깨끗하게 해드려야지.’

 나는 출국 전날 늦은 밤까지 기사를 마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좀비가 되고 나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는데 밤 10시쯤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에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일본에서 쓸 유심도 미리 시험해볼 겸 내내 숙제처럼 생각해오던 엄마의 핸드폰 청소를 해드리기로 했다.  

 엄마도 나처럼 핸드폰 없이는 살 수 없는 현대인이다. 잠들기 전이나 한낮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에서 노래를 자주 들으신다. 요즘 아이들이 유튜브 없으면 밥도 안 먹고 말도 안 듣는다는데(우리 원이도 그렇다) 엄마도 거의 그렇다. 그러고보면 유튜브가 최고의 자식일 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모바일로 포털에 뜨는 뉴스를 자주 보는 편이고 카카오톡으로 친구들과 노래나 좋은 글귀, 때로는 가짜뉴스까지도 주고 받으신다. 새벽시간 갑자기 카카오톡으로 영상을 보냈길래 왜 그랬냐고 물으면 “친구한테 보내기 전에 잘 가나 너한테 시험해봤다”라고 할 정도이다. 이렇게 핸드폰 없이는 못 살면서, 또 핸드폰 때문에 못 살겠다는 말씀을 시도때도 없이 하신다.

 “이게 이상해. 나는 만지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가.”

 엄마는 나를 보면 꽤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한다. 누가 뭘 깔아놓고 원격으로 작동하는 거 아니냐는 상상까지 하실 때면 그때부턴 내가 너무 피곤해진다. 엄마의 핸드폰은 출시된 지 2년된 내 것보다 최신형이다. 그래서인지 스치기만해도 똑똑하게 잘 작동을 하는데, 엄마는 기계가 항상 엄마 마음보다 앞서간다고 내게 이른다. 조카 원이가 장난치다 잘못 눌러서 그럴 때도 있겠지만, 나는 그게 엄마가 핸드폰 버튼이 눌리지 않도록 마무리를 잘 하지 못했거나 엄마의 서툰 손짓이 원인이라고 열심히 설명한다. 전자기기는 섬세하게 다뤄야 오작동을 안 한다고 조언을 드리지만, 엄마는 60년 성격이나 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없다고만 하신다. 일단 오작동 안 되면 다행이지 싶다.

 문명의 이로움을 누리려면 디지털에 적응해야하는데... 솔직히 젊은 나도 빠르게 변하는 요즘 세상에 적응하기 괴로운데 (나도 알아주는 기계치이다) 엄마도 꾸역꾸역 적응하고 있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캐리어도 다 챙기지 못한 채 엄마 핸드폰을 받아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바탕화면에 어지럽게 깔려있는 온갖 알 수 없는 애플리케이션들과 유저 마음과 상관없이 지정돼있는 애플리케이션의 설정을 바꾸거나 지웠다. 바이러스가 침범할 수 없도록 바이러스 검사 프로그램을 깔고 정밀 검사를 마쳤다. 악성코드가 수두룩 걸려나왔다.

 “엄마, 이거 수시로 누르면 바이러스 검사되니까 이상한 게 많이 깔렸다 싶으면 이거 돌려요.”

 “알았어. 이게 미쳤나 지 혼자 막 켜지고... 오빠가 싸구려 사다준 거 아니냐.”

 나는 엄마 옆에 앉아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해가며 핸드폰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1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엄마는 내 말을 경청하는 것같았지만... 또 내 이야기를 하얗게 잊어버리실 것이란 것도 난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엄마의 핸드폰을 깨끗하게 하니 한 해 최고의 효도를 한 것같이 뿌듯했다.

 “나 이거 하나만 알려줘. 왜 이러니?”

 엄마는 여전히 나를 보면 자주 묻는다. 난 또 엄마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설정을 바꿔놓는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알려드린다.

 그런 엄마를 보면 귀엽기도 하지만, 답답함과 걱정과 죄송함을 함께 느낀다. 나랑 같이 살지 않는 날이 오면 엄마가 혼자 이 작지만 똑똑한 기계와 지내야할텐데, 잘 지내실 수 있을까. 문화센터에 가서 컴퓨터나 핸드폰 사용법을 배우셨으면 좋겠는데 엄마도 공부는 싫으신가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는 나와 달리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도 크게 맘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아 미쳤나. 왜 이러고 XX이야."라고만 하실 뿐.

 엄마한테 음악스트리밍서비스 이용법이나 방송 다시보기, 카카오톡으로 받은 사진 저장하고 다시 보내기, 이모티콘 보내기 등의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말한다.

“아 이거구나. 알았어. 이제 알겠네.”

  하룻밤 자고 나면 또 까먹으시겠지만, 이렇게라도, 엄마가 디지털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손을 붙잡아드릴 수 있으니 다행이다.

네이비색을 좋아하는 엄마의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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