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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노르웨이 교육의 힘 - 사회정서 교육

by 김노하 Norway

‘노르웨이와 한국 사이, 그 어디쯤에 삽니다.’종종 SNS 프로필에 내가 남겨 놓는 말이다. 내가 노르웨이에서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노르웨이는 내가 살 수 있는 곳, 살아야 하는 곳이 맞을까?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다가도 노르웨이에 계속 살고 싶다는 마음이 큰 물결로 다시 나를 덮친다. 그래서 자는 종종 길을 잃은 강아지처럼 길 한편에 멈춰서 온몸의 물기를 털어낸다.


한국에서 사범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일했던 나는 30대에 접어들면서 ‘휴직’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하고 싶었다. 휴직이 안되면 다른 경험이라도 해 보고 싶었다. 별 필요도 없을 것 같은 공문에 치이고, 교실에서는 대학 입시만을 향해 달리는 아이들을 봐야 하는 현실이 답답했다. 8시 30분 출근해서 9시 퇴근하는 삶이 갑갑했다.


매년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한국 학교들의 리스트를 보면서 어떤 나라에서 근무를 해 보면 좋을지 상상했다. 그렇게 상상만 하다가 서른을 채우고 결혼을 하고 말았다. 신혼의 재미를 느끼다가도 교사로서의 무기력함이 나를 덮칠 때마다 ‘아이가 없으니 일 년만 해외 학교로 나가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이 없었다.


남편이 노르웨이에서 한 4년만 근무해 보고 싶다고 했을 때, 노르웨이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면서 “그래? 인생 한 번뿐인데, 해 봐야지. 오케이!”라고 답했다. 쿨하게 답할 수 있었던 건 분명 내 안에 쌓아두고 있었던 탈출 욕구 때문이었다.


남편의 이직이 결정된 직후 뱃속에 아이가 생겼는데 친구들과 엄마는 여전히 노르웨이행을 고집하는 나의 선택에 놀란듯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했다. 작고 낡았던 신혼집을 정리하고 필요한 짐을 노르웨이로 보냈다. 나는 임신 초기라 친정에 좀 더 머물기로 하고 남편은 노르웨이로 먼저 출국했다. 출산 3개월을 앞두고 노르웨이행 비행기를 탔고 새로운 꿈도 꿨다. (무모에 가까웠지만)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출국과 해외 출산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노르웨이와 관련된 글을 쓰고 싶어졌다. 2013년에는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해외 육아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특히 북유럽 노르웨이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가 사는 나라’라는데 뭐가 다른 거야? 이왕 가는 거 뭐라도 건져봐야겠다!


계속 생각하면 결국 이루어 지는 법이다. 5년 뒤, 나는 노르웨이 육아를 주제로 책을 출간했다. 첫째를 키울 때는 블로그 글도 제대로 못쓰고 임시저장 글만 900개가 넘게 쌓여 있었는데 그 스트레스가 육아 스트레스만큼 컸다. 그래서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출판사에 연락했다. 긍정적인 답변을 받고 출간 기획서를 써서 보내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아이가 어려서 자는 시간이 많을 때 얼른 원고를 쓰기로 했다. (돌이 되기 전 아기의 수면 시간이 몇 시간인지 아는가? 하루 평균 약 14시간이다.) 폭풍처럼 글을 써서 3개월 만에 탈고를 했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보다 글 쓰는 속도가 빨랐다. 한국인 엄마이자 교사의 시각으로 노르웨이 엄마들의 삶을 기록한 것들이 모두 첫 책에 실려있다.


그때는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법과 제도, 문화가 개인에게 닥치는 삶의 어려움을 세심하게 보듬어 준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라 자체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서 나와 남편은 노르웨이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사는 중이다. 한국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상향 그래프를 그린 덕분에, 한국인 가족으로서 노르웨이의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계속 걸리는 것이 있다. 이곳에 사는 동안 개인적으로 뭔가를 더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두 딸이 노르웨이에서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서 느끼는 것들이 많고, 한국에 살고 있는 내 조카들이, 내 친구들의 아이가, 내가 교실에서 만났던 혹은 만나지 못한 아이들의 고단함이 자주 떠오른다. 모든 아이들이 즐겁고 개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있는 교육은 언제쯤 가능할까?


북유럽 복지국가 중 하나인 노르웨이는 인간다운 삶, 인간적인 삶에 관심이 많은 사회다. 한국 교육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입시 위주의 교육, 특히 결과 중심, 주입식/암기식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또 노르웨이에서 교육은 서비스가 아니라 공공재로 다뤄진다. 내 아이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육을 실천한다. 나는 일면의 책임감을 가지고 노르웨이의 교육과 관련된 경험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한 끗의 차이라도 있다면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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