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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박 Oct 25. 2021

좀비 시티의 일요일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

/ 길에서 돈 주으면 네가 가질 거? 




 북유럽의 로망을 깨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정직해야지. 노르웨이에 13년째 살고 있는 나는 정직하기로 했다. 노르웨이는 나라 전체가 전원생활에 둘러싸여 있는 곳이고, 13년 전 오슬로에 처음 왓을때 메인 스트릿을 터벅터벅 걸으며 한 말은 이거다, 

엥? 이거 다야? 


서울 어디에 살든 뛰쳐나가면 펼쳐지는 시내를 여기선 기대하면 안 된다. 전원, 늘 전원, 천국의 전원, 여호와의 증인 책자에 나오는 그 정원이 펼쳐진 곳이 이 노르웨이의 베이스다. 한국서는 그렇게 전원생활이 그립더니 여기선 도시가 그리운 건 무슨 조화 속? 


노르웨이는 일요일만 되면 좀비 시티가 된다. 내가 사는 곳은 노르웨이의 남부의 작은 항구 도시 Arendal. 

일요일, 거리에 나서면 지구 종말인가 싶다. 노르웨이 땅덩어린 한국보다 10배 넓다는데  여기 전체 인구는 한국의 10/1이니 좀 심심하지 않겠어. 



여하간 오늘은, 어제 12살이 곧 되는 우리 아들 캐빈과 산책 갔다가 돈 주운 이야기. 

참고로 캐빈의 아빠는 노리지안임에도 불구, 캐빈은 집에서만은 부산 사투리 한국말을 백퍼 고수하는 꿋꿋한 한국인으로 자라고 있다.


 사건은 오후에 발생~ 날씨는 좋은데 산책 가기 싫다는 애를 억지로 일으키니 프로 게이머들은 다들 들이킨다는 에너지 드링크를 사달라는 협상안을 들이 밈. 에잇, 협상 타결! 나는 자전거를 끌고, 애는 전기 킥보드를 타고 씽씽. 종달새처럼 끊임없이 자기 주변 상황을 업데이트하는 애의 이야길 듣으며 둘이 낄낄 대다 주유소서 애의 소원인 에너지 드링크와 간단한 간식을 사들고 근처 벤치에 앉으려는데...

오우 이게 뭐야? 벤치 색깔과 아주 유사한 장지갑이 하나가 벤치 위에 떨어져 있는 것임. 우리는 지갑을 노려보며 조용히 음식물을 흡입. 캐빈의 눈이 지갑에 고정되어 있었고, 산수 문제를 풀 때도 나오지 않던 그 계산적인 눈빛. 드디어 애가 질문을 함. 두뇌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임.


캐빈: 엄마, 만약 저 지갑 안에 돈이 엄청 많으면 어떡하지?

나: (난 엄마임을 인식하며, 일단 교육적인 말투로) 경찰서나 옆에 슈퍼에 갔다 줘야 되겠지.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맘 졸이겠냐?

캐빈: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 쯧쯧, 엄마는 요즘 도통 세상을 모른다니까. 돈 주우면 30 퍼 원래 먹는 거거든. 지갑 돌려주는데 그 정도 보상은 따라야지. 내 친구들도 돈 주우면  다 그냥 가지거든. 

나 : 일단 지갑 열어보자. 신분증 있을지 몰라. 헉, 근데 야! 근데 지갑 열자마자 폭탄 같은 게 터지면 어떻게 하지?

캐빈 : (눈알을 한번 데구루 굴림) 흠... 이런 방법이 있지.

애가 지갑을 폭탄처럼 바닥에 던짐. 아무 일 없이 먼지가 평온히 날림. 캐빈, 급히 주위를 살피더니 지갑을 회수해옴. 그렇게 몸동작이 빠른 건 애가 태어난 후 처음 봄. 우리는 음료수를 마저 흡입한 후, 천천히 지갑을 열어 봄. 카드가 엄청 많고, 현금이 10만 원 정도 있었음. 흠...

캐빈 :엄마, 나 30 퍼 돈만 빼고 지갑은 저기 주유소에 갔다 준다~


내가 개입할 틈도 없이 상황 급히 종료. 요즘 애들의 돈에 대한 인식은 교육이 아닌 터득된다는 알게 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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