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라져도 상관없어?

2025년 9월 19일 금요일 오후

by 노래하는쌤

2025년 9월 19일 금요일 오후 / 광주, 리아네 집


해인은 쓸독모임에 가기 위해 리아와 리오와 저녁을 먹은 뒤 먼저 옷을 챙겨 나섰다.


“리아오, 아빠 쓸독모임 갔다 올 테니까 먼저 자고 있어.”


문 닫히는 소리가 잦아들자 집 안엔 금세 고요가 내려앉았다.

리아는 거실로 나와 앉아 한자검정시험 문제집을 풀고 있던 리오를 불렀다.


“서리오, 나… 결심했어.”


갑작스러운 말에 리오는 펜을 내려놓고 누나를 바라본다.

리아의 눈빛은 이미 작정해 버린 사람의 그것이었다.


“무슨 결심?”


“엄마를… 꼭 살리고 말겠어.”


리오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긴 숨을 들이켠다.


“도대체 어떻게 살리겠다는 건데?”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던 리아는 금세 단단한 눈으로 리오를 바라본다.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우리가… 미래에서 왔다고.”


리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알고 있었든, 나중에 알게 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리아가 조용히 말한다.


“엄마가 믿도록 만들어야지.”


“그래서?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건데?”


리오는 팔짱을 끼며 기어이 묻는다.


“그래서라니! 엄마가 살아야 하니까… 임신을 좀 더 늦게 하라고 말해야지.”


리아가 목소리를 조금 높인다.


“늦게 임신한 거랑 상관없이… 암 때문에 돌아가시면?”


리오는 조심스럽게 던진 말에도 스스로 떨리는 기운을 느낀다.

리아는 바로 얼굴을 찌푸린다.


“너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잠시 정적이 흐른다.

리오는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누나는… 혹시… 우리가 사라져도 상관없어?


그 속엔 분명한 두려움이 있었다.


“사라지지 않아. 혹시라는 건 없어. 우리는 엄마랑 만날 운명이야.”


리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또 운명 타령…”


리오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답답함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리아는 그런 리오를 한 번 째려보더니 가방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정신없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때 리오가 말했다.


“누나, 엄마 핸드폰 좀 줘봐.”


리아가 핸드폰을 건네자, 리오는 작품 목록을 스크롤하며 하나하나 내려본다.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손가락은 더 바쁘게 움직인다.


“누나, 엄마가 올린 글 전체 개수랑 작품 속 개수가 달라.”


리아가 고개를 홱 돌린다.


“그걸 또 세어봤어? 얼마나 다른데?”


“하나. 딱 하나.”


리오는 계속 스크롤을 내렸고, 리아는 옆에서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숨소리마저 팽팽한 순간.


“서리오! 스톱!”


핸드폰 화면에서 한참 동안 스크롤을 내리던 리오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멈춘다.

리아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킨다.


“나… 저 글 처음 봐. 눌러봐.”


‘한세희작가의 꿈.’


리오는 그 제목을 눌렀다.

잠시 후, 화면에 리스트가 펼쳐진다.


리아, 리오와 하고 싶은 일 10가지
만례씨와 하고 싶은 일 2가지


둘은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서리오… 대박이다. 소름 돋아.”


리아의 목소리는 떨렸다.

리오는 천천히 다시 화면을 훑는다.


“누나, 우리가 엄마랑 했던 여덟 개… 벌써 전부 ‘미션 성공’이라고 돼 있어.”


“그럼… 놀이공원 가는 거랑 스티커사진 찍는 거. 그 두 개만 남은 거네.”


리아의 심장은 목 아래까지 차오른 듯 쿵쾅거렸다.


“우리… 과거로 간 이유가… 이거 때문일까?”


리오가 조심스레 말한다.


“그럴 수도… 있지.”


리아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꽃구경 가기는 놀이공원 옆에 상사화공원 있다고 했으니까…”


리아가 중얼거린다.

리오는 뒤이어 말했다.


“그럼 이제 하나 남은 오리탕 끓여드리기. 이거 해야지. 엄마가 증조할머니랑 하고 싶어 했던 일.”


리아의 얼굴이 환해진다.


“서리오! 요리는 나보다 네가 훨씬 잘하잖아? 나도 도울 테니까, 엄마랑 네가 해 봐.”


리오는 잠시 피식 놀란 얼굴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리탕 끓여드리기… 우리가 도와서 같이 해보는 거야.”


“그래.”


리아가 단단히 말한다.


“우리… 해야지.”


잠시 후, 리아는 엄마에게 쓰던 편지를 다시 꺼내 쓰기 시작한다.

리오는 오리탕 레시피를 찾아 외워 나간다.


“서리오, 준비 다 됐어? 엄마한테 가자.”


“나도 준비 끝. 가자!”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켠다.

그리고 그 순간, 같은 마음으로 같은 결심을 했다.


‘엄마를 살린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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