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이야기 21
아이들과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또 전학을 왔다.
사실 나는 교실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왔기에 헤어짐이 그리 마음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또다시 낯선 곳으로 간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깊게 눌렀다.
초등학교 4학년 전학 첫날에 나만 교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었다.
개학의 설렘들이 나만 빼고 교실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나는 책상에 멍하니 앉아서 수업종이 울리기만 기다렸다.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갈 용기도 없었고, 먼저 다가오는 아이도 없었다.
개학에 맞춰 전학을 왔기에 나는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인사를 하고 출석을 부른 뒤 자리를 정해 주셨다.
두 책상이 붙어 있었는데 반 아이들 모두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나란히 붙여 주셨다.
내 옆자리 아이의 이름은 성진.
금황에서 나를 따뜻하게 가르쳐주셨던 2학년 담임선생님 이름과 같았다.
그 아이는 정말 몹시 친절했다. 그리고 아주 많이 많이 말했다.
“너 전학 왔어?”
“응.”
내 대답은 거기까지였지만 그 아이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정선초등학교 3년의 역사를 하루동안 전부 들은 것 같다.
인기투표 1위였던 아이, 언제 누가 사귀었는지,
2반 담임선생님은 한자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 반은 아침마다 외워야 하는 한자가 다섯 개.
정문 앞 문방구 세 곳.
첫 번째 문방구의 메달 뽑기는 밖에 있는 기계는 돈만 잃으니깐 피하라는 이야기,
두 번째 문방구에서는 축구 스티커 황금카드가 잘 나온다는 정보,
세 번째 문방구에서 서예 준비물을 사야 하고,
거기서 파는 철판에 구워 먹는 문어발은 꼭 먹어야 한다는 말 등등등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았다.
그 아이에게는 미안했지만 일주일마다 자리를 바꾼다는 담임선생님 말씀이 반가웠다.
집에 빨리 가서 바닥에 등을 대고 눕고 싶었다.
종이 울리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낯선 나의 집이자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 1306호.
문 앞에 섰을 때 열쇠가 없다는 걸 떠올렸다.
만례씨 집에서는 열쇠라는 걸 몰랐다.
아버지가 올 때까지 계단에 앉아 기다렸다.
12층과 13층 사이.
실내자전거가 한 대 놓여 있었다.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돌렸다. 시간이 흘렀다.
한 시간, 두 시간, 네 시간가량 지나서 아버지가 왔다.
미안하다며 내일부터는 문 안쪽 구멍 안에 열쇠를 두고 가겠다고 했다.
“아빠, 할머니는 왜 안 오셔요?”
“이번 주는 못 오신대.”
그날 밤 만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례씨의 목소리가 아팠다.
“할머이, 어디 아픈가?”
“어째 밥은 잘 묵고 있냐?”
“어.”
“차말로 잘 묵고 있는 것이여?”
“할머이가 해준 거 아니믄 잘 묵지도 못한 지 알믄서, 빨리 나사 갖고 오랑께.”
“나가 두 밤 이따가 갈랑께, 밥 잘 묵고 있어라이.”
전화가 끝난 뒤 집은 더 조용해졌다.
만례씨는 일주일이 다 되도록 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말라갔다.
배가 고팠지만 먹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세 번째 문방구 앞을 지나며 성진이가 말하던 문어발이 떠올랐다.
100원을 주고 사서 철판에 구워 천천히 집으로 걸어오며 먹었다.
문 구멍안에 열쇠가 없었다.
다시 실내자전거에 앉았을 때 창 밖으로 소독차 소리가 들렸다.
하얀 연기가 계단을 타고 올라와 내가 있는 12층까지 올라왔다.
기침이 나더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자전거에서 내려와 계단을 기어서 문 앞까지 갔다.
문에 기대서 얼마나 지났을까?
띵동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만례씨였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오메! 먼일이여. 머시 이라고 빼짝 꼴아븟다냐.”
만례씨가 열쇠로 문을 열자마자 화장실로 기어가 우르르 쏫아냈다.
문어발이 그대로 나왔다.
“왐마, 먼 문어발이 나와븐다냐?”
그 뒤 기억은 흐리다.
만례씨는 나를 씻겨서 옷을 갈아입히고 재웠고, 나는 이내 잠이 들었다.
새벽녘 만례씨의 기도 소리에 눈을 떴다.
만례씨는 버스 사고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 오던 날 버스에서 다 내리지 않았는데 매달린 상태로 한 정거장을 끌려갔다고 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울었다.
만례씨는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 서로에게 끝없이 미안해했다.
만례씨는 그날의 사고로 사는 날 평생을 아팠다.
만례씨가 떠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나 또한 아프고 또 아프다.